김수현의 박물관 편지[10]
김수현의 박물관 편지[10]
  • 경남일보
  • 승인 2018.05.17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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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뢸러 뮐러 미술관(上)
크뢸러 뮐러 미술관 입구.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술관이나 박물관들은 대부분 도시 중앙이나 교통이 편리한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접근성이 좋다. 관람이 끝나면 근처의 이름난 식당에 방문하거나, 다른 명소로의 이동이 용이하다보니 박물관 주위는 매일 관광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네덜란드에는 이와 정반대로 암스테르담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위치 때문에 관광객의 방문을 망설이게 하는 미술관이 하나 있다. 도심에서 만날 수 있는 박물관과 비교하면 왕복 소요시간만으로도 여행일정 중 하루를 몽땅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단기간 네덜란드 여행을 계획한 사람들은 미술관의 방문이 망설여 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곳은 반고흐 미술관에 이어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고흐 작품을 보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자연과 어우러진 예술작품의 참 다운 모습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곳으로 미술작품을 좋아하는 사람이나 네덜란드 자연의 참모습을 느끼고 싶다면 반드시 방문해야 하는 곳으로 손꼽힌다.

크뢸러 뮐러 미술관. 잘 차려입은 옷과 구두 보다는 편한 옷과 운동화를 신고 방문해야 하는 자연 속 미술관을 만나보자.

◇자연과 함께하는 미술관으로의 여정

크뢸러 뮐러 미술관은 네덜란드 서쪽 마을 오테를로에 위치하고 있다. 오테를로는 암스테르담에서 기차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오다가 다른 기차로 한 차례 갈아탄 후 마을버스를 타고 들어와야 비로소 도착할 수 있는 작은 시골마을이다.

이 작은 마을이 사람들의 발길을 사로잡는 이유는 네덜란드에서 가장 큰 규모의 국립공원 ‘호헤 벨루베(De Hoge Veluwe)’에서 크뢸러 뮐러 미술관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을에서 버스를 타고 국립공원 입구에 도착하면 미술관 관람료와 국립공원 입장료가 포함된 콤비 티켓을 구입해야 한다. 미술관에 방문하려면 필히 공원에 입장해야 한다.

국립공원 내 비치된 자전거를 이용하여 미술관으로 향하는 사람들.


1600만평이 넘는 광활한 대자연 속에 위치한 미술관에 가기 위해서는 공원에서 무료로 대여해주는 자전거를 타고 20여분을 넘게 달려야 한다. 미술관 입구를 구경도 전에 긴 여정을 마주해 지칠 법도 하지만 거대한 숲속에서 마시는 상쾌한 공기와 드넓은 초원을 바라보면 피곤함이 이내 달아난다.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미술관으로 향하는 여정은 이것 역시 감상의 일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 미술관 방문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들어 준다.

◇한 재력가 부부의 원대한 꿈이 이뤄낸 미술관

미술관의 이름 크뢸러 뮐러는 화가의 이름도 아니고 지명도 아니다. 크뢸러 뮐러는 미술 수집가였던 헬렌 크뢸러 뮐러의 이름을 따서 만든 것으로, 1935년 헬렌이 수집한 모든 미술품과 그녀의 남편 안톤 크뢸러의 개인 사냥터였던 호헤 벨루베 국립공원 땅을 전부 네덜란드에 기증함으로써 1938년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크뢸러 뮐러 미술관의 창립자 ‘헬렌 크뢸러 뮐러’와 그녀의 남편 ‘안톤 크뢸러’.


헬렌은 독일의 부유한 사업가 집안 출신으로 태어났다. 1888년이 되던 해, 네덜란드를 기반으로 선박산업 및 광산업을 통해 부호가 된 안톤 크뢸러와 결혼했다.

그녀는 네덜란드로 생활터전을 옮겨와 아이를 키우며 취미생활을 하곤 했지만 항상 무언가 놓치고 있다는 마음을 가지고 살았다. 헬렌은 다른 취미생활을 갖기 위해 네덜란드 출신 화가 브레머(H.P. Bremmer)의 미술수업에 참여 하게 되었으나 몇 번의 레슨만으로는 그녀의 공허한 마음을 충족시킬 수 없었다.

그러자 브레머는 헬렌에게 화가들의 작품을 수집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고, 헬렌은 브래머의 충고를 바탕으로 미술 작품 수집을 시작했다.


당시 반 고흐는 죽은 지 15년이 넘어가도록 사람들에게 많은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겨우 몇몇의 예술가들과 수집가들에게만 이름이 알려져 있었고, 그림을 구입하려는 사람도 극히 드물었다. 이런 고흐의 천재성을 처음 알아본 사람은 다름 아닌 헬렌 크뢸러 뮐러였다. 헬렌은 고흐의 작품을 대량으로 구입하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사람들은 고흐의 작품에 조금씩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후 헬렌 부부는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경매에 참여해 고흐의 작품을 사들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고, 고흐와 동생 테오가 주고받은 편지가 책으로 출판되자 그의 인기와 작품 가격이 눈에 띄게 급등했다.

고흐의 작품을 전시하던 헬렌은 전시 공간의 한계를 느끼고 소유하고 있던 지금의 호헤 벨루베 국립공원 대지에 박물관건립을 추진했다. 현대에 들어와 헬렌은 유럽에서 여성 최초로 수집 미술품을 한 곳에 모아 놓은 아트컬렉션을 창조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천재가 만들어낸 검정색이 없는 밤의 정경

20여분을 달린 끝에 도착한 미술관 앞은 먼저 도착한 수 백대의 흰 색 자전거들로 가득했다. 울창한 숲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작은 미술관은 90여점에 이르는 반 고흐 작품들을 시작으로 클라우드 모네, 조르주 쇠라, 파블로 피카소, 피에트 몬드리안 등 여러 시대의 작품들을 아우르고 있어 긴 여정의 노곤함을 달래주기 충분했다.

게다가 고흐의 작품 중에서도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명화 ‘밤의 카페 테라스’도 이 곳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밤의 카페 테라스(Terrace of a cafe at night)’, 1888년, 캔버스에 유화.


‘밤의 카페 테라스’는 네덜란드 출신 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의 1888년 작품으로 그림이 처음 전시 되었던 당시에는 ‘저녁의 커피 하우스’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이 그림은 고흐가 프랑스 아를(Arles)에 머물던 시절 자주 다녔던 카페의 야경을 표현한 것으로 이 시기 즈음부터 밤중에 그림그리기를 즐겼던 고흐의 걸작 중 하나로 평가 된다. 어둠을 표현하는 전통적인 방식은 검정색과 회색을 쓰는 방법인데, 고흐는 이 그림에서 보다 더 풍부한 색상으로 야경을 그려냈다. 가스불이 비추는 테라스의 밤 풍경을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 낮과 밤 모두 같은 자리에서 변화하는 색상들을 표현하고자 했다. 환하게 밝혀진 테라스와 별이 반짝이고 있는 밤하늘은 배경에 나타난 짙은 건물들 때문에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검정색 물감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완벽한 밤의 풍경을 묘사 한 것이다.

고흐는 이 그림을 완성하며 별을 그려넣은 밤하늘의 배경이 꽤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이 작품 이후 고흐는 더욱 광활한 어둠속의 빛을 표현한 ‘별이 빛나는 밤’(뉴욕 현대미술관 소장)을 완성하며 또 하나의 걸작을 그려냈다.

고흐에게 밤은 어떤 의미였을까? 세상 그 무엇도 어둠이 지배하는 그 시간만큼은 제 색을 지닐 수 없지만, 어둠이 만들어낸 특별한 색을 거침없이 표현하며 사물에 또 다른 색을 선물 했던 고흐. 누군가에게는 지독히 고독한 밤일 수 있지만, 고흐에게는 비로소 아무런 고정관념 없이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 볼 수 있던 시간이 아니었을까?

짙은 어둠이 내리면 크뢸러 뮐러 미술관의 밤하늘에서도 고흐의 그림에서 빛나던 반짝이는 별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주소: Houtkampweg 6,6731 AW Otterlo, 네덜란드
운영시간: 화~일요일 10:00~17:00(월요일 휴관)
홈페이지: https://krollermuller.nl/
입장료: 성인 19유로(국립공원 입장료 포함), 청소년 12유로, 6세 이하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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