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70>금강변 마실길
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70>금강변 마실길
  • 경남일보
  • 승인 2018.05.20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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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과 강 사이 아스아슬 펼쳐진 벼룻길.


◇강줄기 따라 굽이진 마실길

나는 구부러진 길이 좋다
구부러진 길을 가면
나비의 밥그릇 같은 민들레를 만날 수 있고
감자를 심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날이 저물면
울타리 너머로 밥 먹으라고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이준관 시인의 ‘구부러진 길’ 중에서


인생도 하나의 길이고, 나를 숨 쉬게 하는 콧구멍도 길이다. 내 가슴의 뜨거운 열정을 온몸에 전해주는 실핏줄 또한 길이다. 길은 어쩌면 살아있는 생명체의 전유물인지도 모른다. 수많은 생명체가 살아가는 강과 산, 들과 마을이 길을 낳았다면 그 길은 사랑을 낳고, 그리움을 키우고, 꿈을 영글게 한다. 강과 산, 그리고 들과 마을이 낳은 구부러진 길, 그 길이 키운 꿈과 행복을 만나기 위해 국민체력센터(원장 이준기) 명품 걷기 클럽인 건강 하나 행복 둘 회원들과 함께 무주 예향천리 금강변 마실길을 찾았다.

금강변 마실길 중에서 필자가 탐방한 곳은 벼룻길 3.5㎞와 잠두길 2㎞이다. 강기슭과 벼랑 사이로 난 벼룻길은 무주군 부남면 소재지가 있는 부남천문대에서 출발했다. 벼룻길 초입에서 금강 상류에 닿기까지는 새로 만든 구름다리와 나무데크길이 탐방객들의 발걸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길옆으로는 논밭과 과수원이 있고, 좀 떨어진 곳에는 집들이 모여 정겹게 강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강줄기를 따라 조성한 과수원에는 사과나무와 복숭아나무들이 활짝 꽃을 피운 채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강과 벼랑 사이, 비경을 이룬 벼룻길

과수원길이 끝나자, 금강과 벼랑 사이로 난 벼룻길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아직 오염되지 않은 금강 상류의 맑은 물줄기와 깎아지른 듯한 벼랑 사이로 난 벼룻길 초입엔 야생 복숭아꽃들이 지천으로 피어있었다. 아, 이곳이 바로 무릉도원으로 가는 들머리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강과 벼랑 사이의 길을 걸어가는 탐방객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발걸음을 멈추고 비경 속으로 빠져든다. 뒤 따라 오는 사람들은 빨리 가자고 외치지만, 앞선 이들은 아름다운 풍경 하나하나를 놓칠까봐 연신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다. 그러니 좁다란 벼룻길이 탐방객들로 정체될 수밖에 없었다.

▲ 다소곳하게 앉은 각시를 닮은 각시바위.
▲ 바위를 뚫어 만든 각시바위 동굴.


모두들 벼룻길 모퉁이를 돌 때마다 감탄을 금하질 못했다. 감동과 감격을 받았을 때 행복호르몬인 다이돌핀이 분비된다고 한다. 윤슬로 반짝이는 강물 위에다 크고 작은 근심걱정들을 퍼다 버린 상태에서 멋진 풍경을 만날 때마다 터져 나오는 감탄사와 감동이 행복감을 더욱 충만하게 하는 것 같았다. 강을 따라 한참 걸어가니 벼룻길의 명소인 각시바위가 나타났다. 시집와서 아이를 낳지 못해 구박받던 며느리가 강 건너 벼랑에서 기도하다 벼랑과 함께 솟아올라 ‘각시바위’가 되었다는 이야기와 목욕하러 내려온 선녀가 천의(天衣)를 잃어버려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고 천상의 세계를 그리워하다가 ‘각시바위’로 굳었다는 전설을 가진 바위다. 필자는 선녀가 목욕했다는 각시소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선녀는 보이질 않고, 함께 트레킹을 온 여성들의 화사한 표정이 선녀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수면에 비쳤다. 선녀와 신선이 따로 있겠는가, 이처럼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자연과 풍류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선녀요, 신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벼룻길에 우뚝 솟아 있는 각시바위로 인해 길이 막히자, 탐방객들이 편안하게 다닐 수 있도록 정으로 쪼아 바위를 뚫어놓은 각시바위동굴이 있었다.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사는 사람들의 마음 또한 선하고 아름다운가 보다. 10여 m나 되는 바위동굴을 지나오면서 자신의 이름 하나 남기지 않고 적선(積善)을 하신 분께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꼈다. 동굴을 지나 조금 더 벼랑길을 걸어오자 포장된 도로가 나타났다. 강변 포장도로를 한참 걸어서 대기해 있는 버스를 타고 잠두길로 향했다.

◇세상 모두가 꽃이 되는 잠두길

점심 식사를 마친 뒤 곧바로 잠두길을 걸었다. 금강변 옛날길에서 내려다보는 지세가 마치 누에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이름을 잠두(蠶頭)라고 했고, 그 마을 옆으로 난 2㎞의 옛길이 잠두길이다. 벚꽃철이 좀 지났기는 했지만 우리를 반기기 위해 늦게까지 남은 벚꽃과 복사꽃이 어우러져 피어있는 잠두길 또한 벼룻길 못지않게 명품길이었다. 비포장도로인 잠두길은 길이 넓어서 일반 승용차도 다닐 수 있게 해 놓았다. 넓어진 강폭에 맞추어 길도 함께 넓어진 것 같았다. 봄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꽃비가 쏟아져 내렸다. 그야말로 꽃길이다. 나무에서 떨어진 꽃잎이 탐방객들의 얼굴에 닿자, 나무의 꽃은 지고 사람의 꽃이 피어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강과 산 사이 꽃길을 이룬 잠두길.
▲ 잠두길에서 4륜 바이크를 즐기는 탐방객들.

꽃은 주로 봄철에 핀다. 그러면 사람은 언제 꽃을 피울까? 사람의 꽃은 사랑할 때 핀다고 한다. 멋진 풍경이 펼쳐진 벼룻길과 잠두길을 걸으며 감탄과 행복감에 젖어있는 자신을 보면서 자기에 대한 감동과 사랑이 충만해지는 이 순간, 탐방객들 모두 이 세상 가장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벼룻길의 시작도 복사꽃이 열었고, 잠두길의 마지막도 복사꽃이 닫았다. 오늘 함께 한 탐방객들 모두 마음속으로 그리워하며 살아온 무릉도원에서 하루를 즐겼다. 모두가 꽃이 되어 꽃길을 걸은 하루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창으로 복사빛 노을이 비쳤다. 어느 곳에 살든 마음먹기에 따라 그곳이 무릉도원이 될 수도 있고 아귀지옥이 될 수도 있다. 강과 산, 들과 마을이 길을 낳았다면 무릉도원으로 가는 길은 사람의 마음이 만든다. 그 구부러진 길 위를 걸으면서 사랑을 낳고, 꿈을 키우고, 행복을 영글게 하는 것 또한 사람의 일이다. 구부러진 길의 지느러미가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내리는 꽃비, 걷는 사람에게 건네는 자연의 축복이다.
/박종현(시인·경남과기대 청담사상연구소 연구원)



벼룻길 초입에 놓인 구름다리.
일반인들이 천문관측을 할 수 있는 부남 천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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