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석평전 철쭉을 바라보며
세석평전 철쭉을 바라보며
  • 경남일보
  • 승인 2018.05.22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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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석(국립공원지리산사무소)
신용석

‘어머니 산’ 지리산에서 세석평전은 어머니의 손바닥처럼 안락하고 따듯한 곳이다. ‘잔돌(細石)이 많은 평지’라는 뜻의 이곳은 촛대봉과 영신봉 사이에 걸쳐 있는 약 30만평 넓이의 해발 1500-1700m 고원지대이다. 선인들의 유람록에서 ‘흙이 검고 두툼한 습지평원’이라 했을 만큼 물이 많고 토양이 비옥하며, 동식물이 풍부하여 농사와 수렵·채취생활이 가능했으므로 여기를 전쟁과 가난을 피할 청학동으로 여겨 작은 마을이 들어서기도 했다.

그러나 현대역사에서는 빨치산 활동지와 화전민 터로 사용되어 전쟁과 방화의 화를 입었고, 무분별한 야영과 수목채취, 참호 설치 등으로 아름다운 경관이 크게 황폐화되었다. 이에 대하여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자연훼손과 환경오염의 원인이었던 취사·야영을 고산지대에서 금지시키고, 대피소에서만 취사와 숙박을 허용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또한 수십 갈래의 등산로를 한두 곳으로 정비하고, 여러 갈래의 자연배수로를 내어 지표수를 분산시키며, 황량했던 훼손지에 비옥한 토양을 보충하고, 원래 자생하던 식물의 종자를 파종하거나 풀포기를 이식하는 등의 훼손지복구사업을 대대적으로 전개하여 이십년이 지난 현재 아름다운 자연풍경이 거의 되살아났다.

5월말 요즘의 세석평전은 연분홍 철쭉이 수놓아진 한복 치마와 같다. 바래봉의 철쭉이 마치 사람이 다듬어놓은 듯한 ‘철쭉만의 정원’이라면, 세석평전의 철쭉은 구상나무, 털진달래, 붉은병꽃나무 등과 경합하는 야생의 군락이다. 철쭉의 한자이름은 척촉(
躑躅)인데, “꽃이 아름다워 사람이 머뭇거린다” 또는 “잎과 꽃에 있는 독을 먹은 사람이 머뭇거리며 비틀거린다”의 두 가지 뜻이 있다. 철쭉과 산철쭉을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철쭉보다 꽃색이 진분홍이고 잎이 좁은 것이 산철쭉인데, 도시에 심는 것은 대부분 산철쭉이거나 교배종이다. 계곡물가에 자라는 산철쭉을 흔히 수달래 라고 부른다.

세석평전의 볼그스레한 철쭉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기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의 역사가 아름다운 자연에 상처를 냈듯이, 그 자연을 바라보면 사람의 역사가 아른거린다. 마지막 피난처였던 이곳에서 모진 생명을 이어간 사람도 있었고, 가장 높은 땅끝까지 쫓겨 생명을 내놓은 사람도 많았으리라. 지리산에서 생을 마감한 고정희 시인이 다음과 같은 구절을 남겼다. 눈물겨워라/ 세석고원 구릉에 파도치는 철쭉꽃/ 선혈이 반짝이듯 흘러가는/ 분홍강물 어지러워라.

신용석(국립공원지리산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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