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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성이 뿌린 예술의 씨앗강현숙(진주미술협회 문화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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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5.28  20:4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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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숙

개천예술제는 1948년 정부수립 1주년을 기념해서 만든 종합예술제로서 지방 문화예술 제전의 효시로 기록되고 있다. 파성 설창수선생의 제1회 개천예술제 취지문은 민족혼과 예술을 접목했다. 40년간의 일제압정에서 해방된 독립민족으로서의 기쁨을 예술로 승화시킨 것이다. 우리나라 최고, 최대의 종합예술제의 탄생은 민족혼 정립과 진주 문화예술 발전의 기초가 되었다. 이후 개천예술제는 전국 각 지역 문화예술제의 촉매제가 되기도 했다.

개천예술제 하면 남강유등축제가 먼저 떠오른다. 거슬러 올라가보면 제6회 개천예술제(1955년)때 외곽행사로 유등축제가 추가되었기 때문에 그렇다. 당시의 유등축제는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시내의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각자 만든 등을 들고 와 직접 강에 띄우는 행사로 치러졌다. 학교에서부터 촉석루 앞 강변까지 이르는 길을 따라 저마다 유등을 밝혀들고 모여들었다. 유등행렬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임진왜란 때 남강에서 병사들이 가족에게 안부를 전하는 신호로 유등을 사용한 바, 그런 유래를 지닌 유등의 행렬이 밤에 남강과 어우러져 일대 장관의 밤풍경을 연출했다. 지금처럼 큰 등은 아니었지만 작은 등불이 강물을 따라 흐르는 모습도 빼놓을 수 없는 개천예술제 풍경이었다. 다시 재현되었으면 하는 개천예술제 행사 중의 하나다. 6·13지방선거를 앞두고 개천예술제에 대한 예비후보들의 언급되는 관심이 문화예술인의 한사람으로서 더 없이 반갑다. 남강 푸른 물에 오색찬란한 예술의 씨앗을 뿌린 파성 선생, 전국 문화예술축제의 태동격인 개천예술제를 창안하고 개천제단에 예술을 봉헌하던 그 에 대해 정작 진주시민인 우리는 얼마만큼 기억하고 있을까? 개천예술제라는 큰 자산을 진주에 남겼지만 진주는 그를 잊은 듯하다. 축제라는 거대한 그림자에 가려져 그의 흔적은 찾을 길 없다. 남강변 선생의 흉상은 방치되고 훼손된 채 말없이 서 있지만 남강물엔 아직도 그 분의 정신이 깃들어 녹아있다. 올해는 유등축제에 가려졌던 개천예술제가 제대로 명분을 찾고 개천예술제를 창제하신 선각자 파성 설창수선생이 남강변에 뿌려놓은 진주문화예술의 꽃이 만개하기를 바란다. 개천예술제의 미래상을 설계하면서 그 노정에 진주 예술인들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에 대한 성찰도 함께 따라야 한다. 또한 후진들이 현 시대의 그릇에 맞는 개천예술제를 어떻게 수용하고 그 위상을 정립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끝으로 자랑스러운 진주의 문화유산을 잘 보존하고, 더 활성화시켜 문화예술의 고장으로 거듭나길 바라면서 개천예술제가 진주문화예술 발전의 튼튼한 뿌리가 됐으면 한다.

 

강현숙(진주미술협회 문화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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