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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5.29  21: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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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태조 이성계(李成桂)는 한양의 궁이 완공되자 성균관에서 함께 공부했지만 벼슬을 버린 조열을 낙성연에 불러 거문고를 청하는데 그는 타기를 거부한다.

태조가 “예전 송악에서 그대는 거문고 타고, 나는 장고 치고, 정몽주는 휘파람 불고, 이색은 노래하고, 황희는 춤추고 했다”며 종용하지만 세상이 달라졌다며 끝내 타지 않는다.

그는 태조의 초상화를 그리라는 정종의 명까지 거부해 옥에 갇히기도 했다. 호가 금은이니 함안 군북면 원북리 원북재(院北齋)에 금은유풍(琴隱遺風)이란 현판이 있다.

우왕의 요동 정벌 때 중군을 맡았던 조순은 위화도 회군을 반대했으며 이후 태조가 불러도 두문불출했는데 유허비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이오는 두문동에 들어갔다가 밀양으로 옮겼지만 백일홍이 좋아서 함안에 정착했다. 8842㎡(2674평)의 터에 담을 쌓고 밖은 조선이라도 담 안은 고려라며 고려동이란 비석을 세우고 안에서 난 곡식만 먹었다.

아들은 벼슬하지 말고 조선시대에 태어난 손자부터 벼슬하라고 했으며, 죽으면 어쩔 수 없이 조선 땅에 묻히지만 고려를 위해 한 일이 없으니 이름도 없는 백비(白碑)를 세우라고 명했다.

고려동은 아직도 존재하면서 대한민국이 아닌 고려 땅으로 남아있고 백일홍도 고목의 형태를 확인할 수 있다. 백비는 가야읍에 있다.

면면을 보면 이들이 살아간 행적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변화무쌍한 오늘날엔 그런 옹고집이 쓸모없다고 느낄 수 있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두 발을 굳건히 해야 되지 않을까? 명나라에 원나라가 망하고 뒤이어 고려가 지고 조선이 서는 그때는 변화무쌍하지 않았을까?

다른 고려를 만나보자. 이방실(李芳實)은 수차례에 걸친 홍건적의 침입을 막아내어 공민왕(恭愍王)이 자신의 옥대와 옥영을 하사했고 고려 16공신에 올랐다.

도적이 쏜 화살을 손으로 잡고 나뭇가지를 휘어서 대머리로 만든 용맹이 용재총화에 실려 있고 현재 남강서원에서 향사하고 있으며 함주공원 옆에 동상이 서 있다.

충숙왕부터 우왕까지 다섯 임금 동안 세 번이나 정승에 오른 윤환은 격동의 시기에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는데 가뭄이 들자 최초로 관개수로를 만들어 다른 논에도 물을 대주고, 빈민의 차용증서를 불살라 칭송이 끊이지 않았다.

현재 묘역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고 홍포서원에서 향사하고 있다.
 
조정래(함안군 환경위생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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