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의 명승 한신계곡
지리산의 명승 한신계곡
  • 경남일보
  • 승인 2018.05.30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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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석
산이 높으면 골이 깊어,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지리산에는 깊은 골이 많다. 흔히 지리산 3대 계곡을 칠선계곡, 뱀사골, 피아골로 치는데 이는 경남, 전북, 전남을 고루 배려한 결과일 것이다. 다른 계곡들이 모두 서운해 하겠지만 그 중에서도 한신계곡이 “유일하게 명승(名勝)으로 지정된 나를 빼놓을 수 있느냐?”고 으름장을 놓으면 위의 3대 계곡들이 고개를 돌려 못 들은 척할듯하다. 한신계곡은 부드럽고 펑퍼짐한 지리산에서 거칠고 와일드한 야성미를 갖고 있어 ‘뛰어난 경치’인 명승이라는 훈장을 받았다. 이름의 한자를 사람이 연상되는 한신(韓信)이라 쓰지만, 계곡이 차고 서늘하다는 뜻도 있으니 한신(寒身)이라 써야하지 않을까?

세석평전 대피소 상단의 백두대간 마루금을 가로질러 북쪽으로 내려서면 깎아지른 듯한 급경사 돌길과 물길이 구불거리며 내리꽂히는 한신계곡 상류이다. 경사가 급하고 돌계단 낙차가 높아 내려서는 사람도 올라서는 사람도 낑낑 끙끙 대야 하는 곳이다. 한신계곡은 지리산 남사면의 잔설이 다 사라진 완연한 봄 날씨에도 여전히 얼음제국을 유지하고 있어 봄철 산행을 조심해야 한다. 경사 45도의 돌계단에 눈이 쌓이면 미끄럼틀이 되고, 눈이 녹아 다시 얼면 걷기 어려운 빙판이 되는데, 얼음이 두껍고 반질반질해서 스틱과 아이젠이 박히지 않을 정도이다. 이 급경사 얼음길에서 미끄러지면 ‘골(谷)’로 가기 때문에 체면을 접고 네다리로 더듬더듬 내려서야 한다.

등산로가 급한 만큼 물길도 급해 한신계곡은 폭포의 제국이다. 이름도 예쁜 첫나들이폭포, “나 이제 가네~”라는 뜻의 가내소폭포, 다섯 폭포가 이어진 오층폭포를 비롯해 수십개의 무명폭포가 우렁차고, 이런 힘찬 물길이 깎아놓은 기암과 소(沼)가 백무동까지 10km 이어져 절경을 빚어 놓았다. 급류와 꺾임이 많은 상류를 성격이 급한 미녀에 비유한다면, 폭이 넓고 굴곡이 완만한 하류는 품 넓은 남성과 같다. 특히 근육질 몸을 확 드러낸 것 같은 장쾌하고 뻥 뚫린 이미지가 시원시원하다.

한신계곡 좌우로 많은 갈래계곡이 있고, 그 갈래마다 숨은 비경이 있지 않을지 유혹 당하기 쉽다. 그러나 그곳으로 들어서선 안 된다. 험하고 미끄럽고 길도 없지만, 무엇보다 그곳은 사람의 발길에 방해받지 않는 야생의 세계여야 한다. 사람의 배려가 야생의 자유를 보장하는 곳, 사람의 공간과 야생의 공간이 확실하게 구분되어 지켜지는 곳, 그런 최고의 야생 그대로를 다음 세대와 다음 생물들에게 물려주어야 하는 곳, 그곳이 국립공원이다.

신용석(지리산국립공원사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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