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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의 박물관 편지[11]크뢸러 뮐러 미술관(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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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6.01  02:4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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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헤 벨루베 국립공원에 자리한 크뢸러 뮐러 미술관. /사진제공=호헤 벨루베 국립공원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에게 자연을 소재로 한 주제가 금기시 되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음미할 수 있는 작품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화가들은 자연과 때려야 땔 수 없는 사이에 놓여 있었고, 몇몇 화가들은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 생을 마쳤다.

반 고흐의 삶이 그 대표적인 예로 프랑스 출신의 인상주의 화가 클로드 모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어디 자연에 매료되었던 화가가 이들 뿐이겠는가. 각자 표현기법과 추구하는 이상이 달랐을 뿐, 자연은 그 자체만으로도 화가들의 아이디어와 표현력에 가장 중요한 원천이었다.

자연을 사랑했던 화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전시할 미술관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었다면, 대부분의 화가들이 이 미술관을 지목 했을 것이다. 대자연의 품에 둘러 쌓여 세상 그 어떤 미술관보다도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그림이 살아 숨 쉬게 만드는 크뢸러 뮐러 미술관. 호헤 벨루베 국립 공원(De Hoge Veluwe) 입구에서부터 자전거를 타고 미술관으로 향하는 숲속으로의 질주는 바쁜 일상 속에 죽어 있던 우리의 영혼을 깨우는 시간과도 같다.

크뢸러 뮐러 미술관은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반 고흐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는 명성과 함께 또 하나의 수식어를 가지고 있다.

 

   
유럽에서 가장 큰 조각공원을 가지고 있는 크뢸러 뮐러 미술관. 7만 5천 평의 대지위에 160여점의 조각 작품이 자리하고 있다.


유럽에서 가장 큰 조각공원을 보유한 이 미술관은 7만 5000평의 정원 위에 160여 점의 조각을 전시하며 자연과 예술은 공존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준다. 실내전시가 조금 지루해 진다거나 따사로운 햇살과 상쾌한 공기로 관람을 잠시 쉬어 가고 싶을 때에는 미술관 바깥으로 펼쳐진 조각공원으로 나가보자. 단, 끝이 보이지 않는 이 조각공원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미술관에서 제공하는 지도를 반드시 챙겨야 한다.

1961년에 추가적으로 조성된 공원은 근대 조각의 거장 아우구스트 로댕의 작품을 비롯하여 100여명이 넘는 조각가들의 작품을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전시해놓았다.

크뢸러 뮐러 미술관은 설립자인 헬렌 크뢸러 뮐러가 남편 안톤 크뢸러와 함께 일생동안 모은 미술품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으로 헬렌의 미술품 수집에 대한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녀는 1907년부터 1922년까지 집중적으로 작품을 사 모으기 시작했는데, 그 작품의 수가 무려 1만 1500여 점에 이른다. 헬렌은 작품 수집을 조언하던 브래머(H.P. Bremmer)와 함께 반 고흐의 천재성에 처음 주목한 사람으로써, 고흐의 작품 구입에 열중해 오늘날 반 고흐 미술관에 버금갈 만큼의 작품을 보유 하게 됐다.

 

   
조르주 쇠라(Georges Seurat, 1859~1891)의 ‘그랑드자트섬의 일요일 오후(A Sunday on La Grande Jatte)’ . 1884년 작, 캔버스에 유채, 미국 시카고 미술관 소장


그러나 그림에 대한 안목이 남달랐던 헬렌도 미처 살피지 못한 명화가 한 점 있었으니 그 작품은 바로 신인상주의의 시작점으로 알려져 있는 조르주 쇠라의 ‘그랑드 자트 섬에서의 일요일 오후’였다. 헬렌은 작품구입을 망설이다가 브래머의 의견을 받아들여 결국 이 그림을 구입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그 대신 헬렌은 쇠라의 또 다른 걸작 ‘샤위 춤’ 을 구입했다.

프랑스 신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조르주 쇠라(Georges-Pierre Seurat, 1859~1891)는 파리의 부유한 법조계 집안 출신으로 부유하게 자랐다. 그는 타고난 천재성을 가진 화가들과는 달리 이론과 작품에 대한 고집스러운 연구를 기반으로 다져진 학구파 화가였다. 쇠라의 이러한 노력은 선으로 형태를 그리는 방법 대신 점을 찍어 표현하는 점묘주의 화법을 창시했다. 이 화법은 당시 여러 화가들에게 귀감이 되었으며 20세기 현대미술의 방향을 제시한 혁신으로 평가되고 있다.

19세기 동안 많은 과학자들이 색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고 쇠라를 비롯한 여러 예술가들은 이러한 이론에 큰 관심을 가졌다. 특히 프랑스의 화학자 슈브뢸의 (M.E.Chevreul, 1786~1889)의 이론은 당시 예술가들의 작품 활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슈브뢸은 서로 겹쳐져 있거나 아주 가깝게 놓인 두 개의 색상이 거리를 두고 보면 다른 색상처럼 보인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미술가들에게 그림에서 색의 조화를 얻기 위해서는 한 가지 색상을 사용하기 보다는 여러 색상을 사용라고 권했다. 쇠라는 슈브뢸이 언급한 색의 조화를 하나의 정서로 바라보면서 음악가가 화성을 위해 박자와 소리에서 변화를 주듯이 화가도 그림의 조화와 정서를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색채를 사용해야 한다고 믿었다.

 

   
조르주 쇠라 ‘샤위 춤(Le Chahut)’. 1890년 작, 캔버스에 유채.


쇠라는 자신의 작품 철학을 ‘샤위 춤’에서도 유감없이 발휘했다. 이 그림에서는 여성과 남성이 열정적으로 샤위 춤(또는 캉캉)을 추고 있는데 그 동작이 워낙 커서 여자 무용수들의 치마가 다 올라갈 지경이다. 샤위 춤은 1830년대에 파리에서 처음 등장한 춤으로 높이 들어 올리는 발과 다리의 동작으로 인해 우아한 세련미보다는 유흥을 위한 도발적인 춤으로 인식됐다. 이후 이 춤은 몽마르트 번화가에 위치한 물랑루즈에서 공연되기 시작했다.

쇠라는 ‘샤위 춤’의 역동적인 움직임과 경쾌한 동작에 큰 감흥을 느꼈다. 연주자들을 왼쪽 아래에 그려 넣으면서 더블 베이스 연주자의 등을 관람객 쪽으로 향하게 했는데 이것은 그림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실제 공연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쇠라는 물랑루즈의 흥겨운 밤 풍경 뿐만 아니라 공연장 배경에 화려한 조명 기구들을 표현해 빛과 색의 주는 효과를 극대화 시켰다. 그림을 조금 먼발치에서 바라보면 연주자, 무용수, 관객들의 시선이 모두 위를 향하고 있고 무용수들의 발과 손 끝 모두 위쪽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쇠라는 즐거움을 표현하고자 할 때 모든 선을 위로 향하게 하고 따뜻한 색상을 사용했으며, 슬픔의 감정을 표현할 때에는 차가운 색상과 아래를 향하는 선을 사용했다. 글이나 음표로 감정을 나타내는 대신 색채와 선을 이용한 또 다른 언어로 감정을 나타내어 색채가 가진 힘을 증명하려 한 것이다.

조그마한 점들을 하나하나 찍어가며 색채의 신비와 아름다움을 표현하려 했던 쇠라의 작품은 다른 화가들의 작품보다 더욱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미술관 한 켠에 자리한 쇠라의 전시실에 들어서면 그림을 그리는 일이 단순히 캔버스에 색만 입히는 작업이 아니라는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그림 속은 인간의 눈에 포착 되는 자연그대로의 색채를 표현하기 위해 수 만개의 점을 찍어가며 고군분투 한 그의 노력으로 가득 차있다.

그는 31세의 나이에 원인모를 병으로 요절했고 그의 야심작이었던 ‘서커스(Circus)’는 미완성의 상태로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작품 활동을 조금 더 오래 했었다면 하는 아쉬움은 감정이 한껏 묻어나있는 그의 그림에서 더욱 진하게 느껴진다.



주소: Houtkampweg 6,6731 AW Otterlo, 네덜란드
운영시간: 화~일요일 오전 10시~오후 5시(월요일 휴관)
홈페이지: https://krollermuller.nl/
입장료: 성인 19유로(국립공원 입장료 포함), 청소년 12유로, 6세 이하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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