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반달가슴곰의 ‘바깥 여행’
지리산 반달가슴곰의 ‘바깥 여행’
  • 경남일보
  • 승인 2018.06.04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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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가슴곰은 단독생활을 하다가 여름에 상대를 만나 짝짓기를 한 후 헤어진다. 암컷 곰은 가을에 먹이를 충분히 먹은 후 몸 상태가 좋으면 착상(着床/임신이 됨)을 하고, 겨울잠을 자는 도중에 새끼를 낳는다. 임신기간이 짧고, 아무것도 먹지 않는 상태에서 출산하기 때문에 새끼 곰은 아주 작게 태어나지만, 지방질이 풍부한 젖을 먹고 빠른 속도로 성장한다. 어미 곰은 다음해 여름이 다가와 짝짓기 계절이 되면 이제 ‘청소년’으로 성장한 자식을 냉정하게 뿌리치고 어른 수컷곰과의 만남을 대비한다.

어미곰과 헤어진 ‘청소년 곰’은 다른 곰들이 많아 서식지가 비좁을 경우 새로운 영역을 찾아서 여행을 떠나는데 이 행동을 분산이라고 한다. 이는 경쟁을 피해 더 좋은 서식처와 배우자를 찾기 위한 본능적인 행동이다. 그러나 청소년기에 충분한 야생학습이 덜 된 상태에서 호기심과 모험심이 넘쳐 돌아다니다가 사고를 당하거나 마을에 접근하는 경우가 있어 이 때 사망률이 높아질 수 있다.

지난해에 두 번이나 지리산을 벗어나 산 넘고 물 건너, 차량과 사람을 피해 약 90km 떨어진 경북 김천의 수도산을 찾아간 반달가슴곰 KM53의 행동은 바로 ‘청소년 곰’의 분산 활동이었다. 수도산이 곰에게 안전한 환경인지, 곰이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지 염려되어 이 곰을 회수했지만, 수도산 주변 마을사람들은 곰을 환영한다는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KM53의 행동은 결국 사람들의 행동을 이끌어냈다. 환경부와 국립공원관리공단은 곰 개체수를 50마리까지 늘리는 1단계 목표를 달성한 현재, 2단계 목표를 ‘서식지 관리’로 정했다. 이를 위해 정부, 지자체, 시민단체, 지역주민 등이 망라된 ‘반달가슴곰 공존협의회’를 결성하고, 곰이 분산 활동을 할 가능성이 있는 지역에서의 서식지 안정성 강화에 나섰다.

금년에 다시 김천을 향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한 KM53의 경우처럼, 곰의 생명은 결국 사람에게 달려있다. 단절된 자연을 이어 사람에 의해 차단된 야생동물의 길을 다시 내주어야 한다. 밀렵도구 설치와 샛길출입을 하지 말고, 산림경계의 경작지나 거주지에는 전기펜스를 설치하고, 음식냄새를 밀폐하는 등 곰도 사람도 안전한 서식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지리산을 벗어나 섬진강 남쪽으로, 백두대간 북쪽으로 내달리는 곰이 한반도의 생태계를 풍성하게 하는 것이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의 목표이다. 민족 신화에 우리의 조상으로 나오는 곰을 복원하고, 함께 산다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신용석(지리산국립공원사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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