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 기네스 흑맥주와 참공약
[경일포럼] 기네스 흑맥주와 참공약
  • 경남일보
  • 승인 2018.06.06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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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 지방선거일이 성큼 다가왔다. 지난 대선 당시의 약속대로라면 6·13 지방선거와 동시에 지방분권개헌 국민투표도 실시되어야 하지만 국회 파행으로 결국 무산되었다. 문재인 정부는 저출산과 고령화, 청년실업, 저성장, 지방소멸 등 우리 사회가 직면한 심각한 숙제를 해결하는데 기존의 중앙 집권적 국정 운영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분석한다. 이에 ‘연방제 수준에 준하는 지방자치’라는 슬로건 하에 지역 권한을 확대하기 위해 지난 1년 동안 자치재정권 확대, 주민자치권 강화, 중앙과 지방간의 대등한 관계 확립, 자치입법권 강화 등의 내용을 담은 지방분권형 개헌안을 마련해 왔었다. 최근의 지방분권개헌 무산에도 다행스러운 건 행정안전부가 당초 개헌안에 담겼던 자치 분권 철학을 관계 법령의 제·개정을 통해 구현할 수 있을지 적극 검토하는 등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에 대한 강한 의지를 계속 표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번 6·13 지방선거 역시 지방분권이 실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게다가 정당공천제도 폐지되지 않은 상태에서 치러지기에 지방정부의 풀뿌리 민주주의 실현은 애초부터 힘든 구조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대통령의 지지도를 바탕으로 하는 중앙정치의 논리가 스며들 수밖에 없다. 공약의 수립과 실행 여부 역시 결국 중앙정부의 재정지원과 관련 법규 등이 밑받침 되어야 하므로 이번에도 정부여당에 유리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다만 헛공약은 곤란하므로 제대로 된 공약이 제시되어야 한다. 필자는 헛공약을 2012년 말의 생맥주잔 속임 사태와 비교하곤 한다. 맥주업체가 무상으로 제공하는 생맥주잔 용량이 실제보다 작아 생맥주 피처잔 크기 자체에 거품이 끼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버젓이 소비자를 속인 것이다. 더구나 생맥주를 급하게 잘못 따르면 거품만 가득하게 되고 잠시 후 거품이 빠지고 나면 진짜 맥주는 반도 안 채워진 것을 알고 허탈해 한다. 그러다 보니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맥주업체에 비유될 수 있는 정당은 생맥주 잔을, 호프집인 후보자는 생맥주 양을 속일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런 현실에서 헛공약이 쏟아지고 검증되지 않은 정책들이 앞으로 펼쳐지지나 않을 건지, 그래서 엉터리 생맥주 마냥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이에 반해 아일랜드의 대표 흑맥주인 기네스 전문판매점인 아이리쉬 펍(Irish Pub)에서는 생맥주 1잔을 만들 때 무려 몇 분이 소요된다고 한다. 완벽한 기네스 한 잔을 의미하는 용어인 ‘퍼팩트 파인트’를 위해서다. 이를 위해 먼저 기네스 전용잔을 사용하여 잔의 하프 상단에 올 때까지만 따른 후 90초에서 120초가량 기다린다. 거품이 다 내려가 맥주가 검은 색이 되면 다시 반복해서 맥주를 따르고 거품이 잔 위로 2센티 정도 올라갔을 때 따르는 것을 멈춘다. 그리고 기네스의 거품에 커다란 기포가 생기기 않았는지 또 흑맥주가 잔을 넘치지 않았는지를 확인한다. 그야말로 미리 거품을 없애고 그러면서 넘치지도 않는 제대로 된 흑맥주를 제공하는 것이다.

기네스 펍을 찾은 고객들이 꽉 찬 흑맥주가 나오기까지 그 몇 분을 충분히 기다려 주듯이 우리도 그럴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기네스 흑맥주와 같은 양질의 정책으로 실현될 수 있는 참공약을 유도하는 건 결국 유권자의 몫이다. 민주화 이후 이 정도 선거를 치러봤으면 유권자들도 기존의 고정된 시각에서 탈피해 날카로운 매의 눈으로 지혜를 발휘할 때도 되었다. 그래서 엉터리 생맥주보다 제대로 된 기네스 흑맥주를 선택해 서부경남 주민의 삶이 보다 윤택해지도록 모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정성스럽게 따른 기네스 흑맥주를 입에 그득 머금다가 꿀꺽 삼킨 뒤에 코로 숨을 내뱉으면서 흑맥주의 맛과 향을 기분 좋게 향유하듯이 말이다.

윤창술 (경남과학기술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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