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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치산 잡던 지리산의 타잔 강삼수 경위산청署 사찰 유격대장 활약…지난해 뒤늦게 재조명
임명진  |  sunpower@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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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6.06  23:3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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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당시 지리산에 준동하던 무장공비 토벌에 혁혁한 공을 세운 호국영웅이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다.

빨치산 잡는 지리산의 귀신, 강삼수 경위가 그 주인공이다. 강 경위는 당시 산청경찰서 사찰 유격대장으로 불과 10여 명의 부대원을 이끌고 지리산 일대서 항거하던 빨치산과 무려 62번의 격전을 치르며 322명을 사살하고, 67명을 포로로 잡는 빼어난 전과를 올렸다.

영화 남부군의 소재가 될 정도로 악착같았던 무장공비들도 강 경위의 부대를 만나며 꼬리를 내렸다.

특히 덕유산 공비 사령관 노영호 등을 사살한 사건은 당시 토벌에 나선 국군도 하지 못한 공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리산 곳곳을 누비며 빨치산 토벌에 나선 그에게 사람들은 ‘지리산의 귀신’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무엇보다 강 경위는 뛰어난 통솔력과 지휘력으로 주목을 받았다.

매번 자신의 부대원보다 훨씬 많은 적과 조우하면서도 단 한 명의 부대원 피해도 없어 전투의 달인으로 통했다.

강 경위가 참여한 주요 전투를 보면 1951년 11월 8일 오후, 국수봉에 북한군 57사단 150여 명이 집결중이라는 제보를 받고 유격대원 10명과 함께 새벽 1시께 적진을 기습 공격해 23명의 적을 사살하고 총기 6정을 노획하는 등 이해 겨울부터 이듬해 봄까지 60여 차례의 격전을 벌여 공비를 소탕했다.

1954년 6월에는 덕유산 공비 사령관 노영호 등 7명이 산청군 삼장면 서당부락에 출현한 것을 발견하고, 노영호 등 3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이 공로로 서남지구전투사령부 사령관의 표창을 수상했다.

하지만 강 경위의 공적은 전쟁 이후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1972년 사망한 강 경위는 1993년 6월이 돼서야 국가유공자 인정을 받고 2014년 5월 현충원에 안장됐다.

그의 고향 산청군도 강 경위의 충정을 기리는 작업에 나섰다. 산청군과 산청경찰서는 지난 2017년 12월 18일 산청경찰서 둘레 392m 구간을 ‘강삼수 경위길’ 명예도로명 표지석 제막식을 가졌다.

산청경찰서는 지난 2016년 6월 24일 청사 2층 회의실은 권영도 실, 4층 회의실은 강삼수 실로 이름을 바꿨다. 산청출신 권영도 경위도 1952년 지리산 토벌작전에 공훈을 세웠으며 그해 7월 웅석봉 공비 소탕 중 전사했다.


임명진기자 sunpower@gnnews.co.kr

 
강삼수 경위 (1)
강삼수 경위.

지서장 시절 직원 일동
지서장 시절 직원 일동.
토벌작전을 위한 초막
토벌작전을 위한 초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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