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칼럼] 정명가도
[경일칼럼] 정명가도
  • 경남일보
  • 승인 2018.06.06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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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명나라를 치러 가는데 조선은 길을 빌려 달라! 과연 수십만 군인이 무탈하게 지나갈 수 있을까.

옛날 옛날에 어머니가 남매를 집에 두고 산 너머 품팔이를 갔다가 떡을 이고 돌아오는 길에 호랑이를 만난다. 호랑이는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하는데 굶주린 자녀 얼굴이 아른거려 서둘러 떡을 주자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 팔·다리 등을 요구하다 잡아먹고, 어머니로 변장하여 집에 도착하였다. “애들아 엄마 왔다. 문 열어라!” 엄마 목소리가 아니라고 하자. 일을 많이 해 목이 쉬어 그렇다고 한다. 손을 보여 달라고 하여 엄마 손이 아니라고 하자. 풀칠을 많이 해서 그렇다고 한다. 배가 고파 문을 열어 주고, 남매는 기회를 보아 살며시 집 뒤로 가서 우물가 큰 나무 위로 올라 위기를 피한다.

풍신수길(도요토미 히데요시)은 하급무사 출신이다가 다쳐 백성이 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바늘 장사를 시작으로 신분 상승을 노린다. 일본을 통일하고 관백의 자리에 올라 태양의 아들이라 자칭하며 대륙 진출의 야욕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

대마도주에게 조선 국왕을 불러와 자신을 알현케 하라고 명령하고, 도주는 조선으로부터 거부당할 것이 뻔해 선조의 입조 대신 인질과 곡물을 요구하자고 제안하지만, 풍신수길은 고집한다. 도주 종의지는 풍신수길의 거듭된 독촉과 조·일 양국 충돌 시 겪게 될 고통을 우려하여, 1589년 6월 조선으로 건너오고, 조총을 선물로 바치며, 바닷길을 안내하겠다고 한다.

조선은 사을화동이라는 인물을 잡아 보내면 통신사 파견을 고려하겠다하니, 종의지는 사화화동은 물론 왜구에게 잡혀갔던 조선인까지 송환했다. 마침내 조선은 일본의 통일을 축하한다는 명분과 변화된 정세를 탐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정사 황윤길, 부사 김성일, 서장관에 허성으로 파견하기로 한다.

떡을 주면 안 잡아먹겠다는 호랑이의 말을 믿을 수 있겠는가. 여럿이 모여 고개를 넘는다든지, 울타리를 높이고 비상식량과 피신처를 마련, 이웃집과 연락체제를 마련했어야 했다. 과연 눈을 감고 남의 집 안마당을 지나는 사람이 있겠는가. 정명가도(征明假道)는 조선을 정벌하겠다는 것이다. 풍신수길의 야욕을 파악하고, 명나라와 공동 대응 전략을 세워야 했다.

임진왜란으로 조선은 150만결의 토지가 50만결로 줄어들 정도로 황폐해졌고, 죽은 백성들의 숫자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며, 왜군에게 잡혀간 9만 명의 포로 중에 송환된 이는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예나 지금이나 전쟁이 나면 작전상 후퇴가 허용되지 않는 백성이 가장 큰 피해자이다. 위정자는 백성 안위를 최우선으로 하는 만반의 대비를 하여야겠다.

한반도를 전쟁 소용돌이에 빠뜨린 풍신수길 가족은 안녕했을까. 히데요시는 이에야스를 포함한 원로들에게 아들 풍신수뢰를 부탁한다고 유언을 하지만, 이에야스는 오사카성을 지키고 있는 풍신수뢰에게 평화롭게 지내자고 제안하고, 지루한 전쟁에 지친 풍신수뢰는 넓고 깊은 해자까지 메우며 수용한다. 결국 꾐에 넘어가 어머니와 자결하는데, 천수각 뒤쪽으로 내려가면 성을 축조할 때 돌을 바쳤던 다이묘들의 문장이 새겨진 돌이 널려 있고, 뒤쪽에 초라한 비석이 있는데 ‘풍신수뢰·淀殿ら自刃の地’로 새겼다. 모자가 할복자살한 장소이다.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 된다고 한다. 전쟁은 피아간에 아물지 않는 상처를 남기는 파괴행위이다. 예방이 최선이며 철저한 대비만이 전쟁 억제력이다. 예고되었던 임진왜란 같은 국제 전쟁이 한반도에서 재발되지 않도록 지혜를 모아야겠다.
 
안명영(수필가·전 명신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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