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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산플러스 <197> 남원 풍악산남녘 땅 금강이라 불린 '단풍나무 산'
최창민  |  cchangmin@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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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6.08  00:0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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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록의 정결(淨潔)속으로

금강산의 가을 이름이 풍악산이다. 북한에 가지 않고도 금강의 가을을 즐길 수 있는 곳이 남녘 땅, 우리 가까운 곳에 있다면 믿을까. 남원 풍악산(楓嶽山·높이 600m)이 금강산의 가을만큼 아름답다고 해서 그렇게 부른다. 그래서일까. 단풍나무 산이라는 서정적인 예명도 갖고 있다.

남원 동쪽 교룡산에서 본 풍악산의 붉은 석양을 남원 팔경 중 하나로 꼽는데 금강 풍악이라는 명성을 갖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전북 남원시 대산면 운교리에 위치한다. 백두대간 영취산에서 갈라져 수분치를 지나고, 고달산과 노적봉을 세운 뒤, 풍악산에서 일어선다. 대동지지 남원에 ‘풍악은 북쪽 5리에 있다’는 기록이 있다.

신촌마을 상부 산허리에 유명한 신계리 마애여래좌상(보물 제423호)이 있다. 고스락엔 시원한 전망과 함께 기암괴석, 울창한 송림이 우거져 경관이 빼어나다. 정상석 바로 뒤에 한자 뫼산(山)자 형상이 선명한 큰 삼각형 바위가 자리 잡고 있다. 그 앞에서 촬영한 등산객들의 사진이 포털 블로그에 많이 보인다.

 

   
등산로:남원 대산면 신계리 신촌마을→순천∼완주고속도로 아래 굴다리→마애여래좌상→용봉·풍악산 능선갈림길→풍악산→노적봉→마애불→고속도로 굴다리→혼불문학관(12㎞, 휴식포함 5시간 45분 소요).


오전 10시 15분, 신촌마을을 관통해 모내기가 끝난 논길 사이 신계저수지 옆을 걸어서 고속도로 아래 굴다리를 통과한다. 신계리 마애여래좌상 안내판을 따라 오르면 갈림길, 이곳에서 왼쪽으로 틀어서 임도를 따라 올라가면 가로지르는 또 다른 임도 건너 곧 여래좌상이다. 길 찾기에 주의해야 한다.

술숲 속에 위치한 여래좌상은 자연석의 한 면을 다듬어 부처의 앉은 모습을 돋을새김 했다. 안내판엔 고려 초 도선스님이 하룻밤 만에 제작했다는 전설이 있다고 기록해 놓았다.

높이 3.4m로 보물 제423호이다. 여느 마애불과는 달리 특이한 수인(手印)을 하고 있다. 배에 올린 두손 중 왼손바닥은 위로 향하고 오른손은 등을 보이게 했는데 검지와 새끼손까락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으나 지나치게 길게 표현돼 있다. 또 하나는 줄에 꿴 구슬로 둥글게 감싸 몸 주변에 서린 빛을 표현한 것은 희귀한 것이라고 한다.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마애불로 꼽힌다.

 

   
검지와 새끼손가락이 지나칠 정도로 크게 표현된 수인을 가진 고려시대 작품 마애여래좌상.
   
고인돌바위


본격적인 산행, 솔향기가 코끝을 자극하는 고불고불한 된비알을 한시간여동안 올라간다. 머리의 땀이 등골을 타고 흐르는 게 느껴진다. 고인돌과 같은 바위들도 등산로 상에서 볼 수 있다.

오전 11시 50분께 이 산줄기의 주능선 신촌갈림길에 올라선다. 왼쪽이 용봉과 사리재 비홍재로 가는 길이며 오른쪽이 풍악산 가는 길이다. 능선 너머는 전북 임실이다.

울창한 숲이 그늘을 만들어 주는데도 급격히 기온이 오른 탓에 한낮 무더위를 식혀주는데는 한계가 있다. 이곳에 활엽목이 많아 시절을 지나 가을 단풍을 볼 수 있는 구간이다.

지금은 하루가 다르게 짙어지는 초록의 신비만이 여울진다. 그야말로 청록의 정결(淨潔)속으로 빠져든다. 한동안 편안한 능선을 타는 여유로운 산행을 이어갈 수 있다. 중간에 풍악산 600m 못 미쳐 오른쪽 운교리에서 올라오는 등산로가 보인다.

 

   
한자 뫼산(山)자가 선명한 바위


낮 12시 20분께 풍악산 정상에 닿는다. 혼불문학관 6.2㎞를 가리키는 이정표 뒤에 이 산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뫼산(山)자 바위가 서 있다. 앙증맞은 크기에 산 꾼들의 사진배경이 돼주는 멋진 바위이다. 산 아래 신계리, 운교리 들 벼논에 철철 넘치는 물논만 봐도 마음이 풍성해진다.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시원스러운 고속도로도 태양에 반사돼 빛을 낸다. 동쪽에 교룡산, 남쪽에 곡성군 동악산, 통명산, 서쪽에 책여산 북쪽에 팔공산이다.

정상을 떠나 고도를 낮춘다. 바람에 쓰러진 아름드리 소나무가 등산로를 가로막거나 방치돼 허리를 굽혀서 기어가거나 넘어서 가거나 돌아가야 하는 길이 네댓 곳이나 된다.

점심 겸 휴식 후 오후 1시 30분, 이날 산행의 마지막 봉우리 노적봉으로 발길을 돌린다. 어느 시점부터 이 구간은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이다. 휴식 출발 후 1시간이 지났을 때 주변 풍경은 잡목이 별로 없고 소나무와 암석들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며 자라고 있다. 능선을 따라 자생하는 소나무는 둥치가 크지만 만고풍상을 겪은 탓에 고르게 자라지 못했다. 험한 지형 때문에 소나무 사이로 계단을 만들어 등산로를 정비해놓아 주행은 한결 수월하다. 갖가지 수목에다 피라미드를 닮은 바위, 빌라를 닮은 바위들이 나타났다 사라지는데 무슨 아이쇼핑이라도 하는 것같다.

 

   
숲 산행길


오후 2시 50분께 요절(夭折)한 소설가 최명희의 흔적들이 보인다. 그의 소설 ‘혼불’에 등장하는 명대사 명언을 적은 팻말을 나무들이 이름표인양 달고 있다. “나라가 왕이나 귀족 혹은 부자 몇 사람의 것일 때 가장 위태로운 것이지, 백성과 무관한 나라, 백성이 떠나버린 나라는 무너진다. 백성들이 사랑하는 나라가 실한 것이야”(혼불 10권 155쪽)

“이 세상에 정 없이 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네. 예(禮)도 상대방을 생각하는 지극한 정에서 먼저 우러나왔다고 하데”(혼불 10권 39쪽)

오후 3시께 노적봉에 닿는다. 목적지 혼불 문학관까지 3.4㎞를 남긴 지점이다. 사매산악회가 세운 정상석엔 해발 567m로 기록돼 있다. 이곳에서 길은 왼쪽으로 꺾인다. 다시 고도를 낮춘다.

오후 3시 20분, 갈림길은 임도로 바로 내려가는 길, 이 길을 스쳐 지나고 마지막 산등성이 하나를 더 넘어서 혼불문학관 방향으로 산행을 이어간다.

산허리쯤 전망 바위에선 청호지와 혼불문학관이 내려다보인다. 조금 더 내려가면 또 다른 마애상이 버티고 선다. 우뚝한 바위에다 미래의 불 미륵부처를 새겼다. 만개한 연꽃을 양손으로 받들고 명상에 잠겨 있는 모습이다.

옷의 사실적인 표현, 긴 눈, 도톰한 코, 작은 입모양으로 미뤄 고려시대불상의 특징을 보인다고. 서 있는 바위에 조각을 한 신계리 불상과는 달리 선의 강약으로 불상을 표현했다. 예전에 이곳에 호성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한다.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얘기로, 어느 스님이 호랑이에게 물려간 한 아이를 구해줬는데 그의 부모가 시주를 해서 세운 절이어서 호성사란다. 바위 아래 샘물이 있다.

산을 벗어나면 혼불 임도를 만나게 되고 자동차 ‘씽씽’ 달리는 순천∼완주 고속도로 아래 굴다리를 통과해 혼불문학관에 당도한다.

   
혼불문학관


오후 4시, 도착한 혼불문학관은 최명희의 소설 ‘혼불’ 배경인 남원시 사매면 서도리 노봉마을에 자리잡고 있다. 2004년 10월 개관했다. 최명희(1948~1998)는 우리 역사와 정신을 심도있게 표현한 대하소설 혼불을 남겼다. 1930년대 일제 강점기 남원을 배경으로 몰락해가는 종가와 종부 3대가 겪는 삶의 역정을 그린 소설이다. 세시풍속 무속신앙 관혼상제 신분제도를 사실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내부에는 생전 작가가 사용하던 집필실을 그대로 꾸며놓았다. 그 자신 암 투병 소식을 세상에 알리지 않고 소설 5부(10권)을 낸 뒤 2년만인 1998년 12월 51세에 세상을 떠났다. 죽음을 앞두고 “혼불 하나면 된다. 아름다운 세상이다. 참으로 잘 살고 갑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한다.

최창민기자 cchangmin@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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