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우리 사회에서 존 로크의 ‘정의한 무엇인가’에 대한 화두로 들썩거린 때가 있었다. 옳고 그름의 판단에 대한 한바탕 논쟁거리였다. 하지만 개인의 인지력이 다르고 판단 능력에도 차이가 있기 때문에 딱히 무엇이 옳다고 단정 짓긴 여전히 어렵다. 물론 약속된 법적 문제라면 법리를 따르면 되겠지만 도덕적 판단의 경우엔 더욱 모호하다. 필자가 십수년 의령군 공직에 머물면서 흔히 들었던 말 중 하나가 ‘바른 말 잘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언필칭 뒷담론으로 상사의 부당성을 그냥 수용하여 나쁜 정책 결과를 만들었다는 뜻과 통한다. 이유야 어떠하든 조직이 존재하는 곳엔 상사의 입맛에 길들어진 ‘예스맨’이 있기 마련이다. 물론 리더가 늘 올바른 판단만 내린다면 다르겠지만 그렇지 않음에도 리더의 의견만 좇는다면 그 조직은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필자의 경우 언젠가 스스로에게 닥칠 불이익을 무릅쓰고 대뜸 바른 말이랍시고 내뱉다 상사와 부딪혀 손해를 본 일이 있었다. 그때 어떤 후배가 ‘내 입만 조심하면 승승장구 할 텐데 왜 그랬냐?’ 라는 충언 같은 말을 들려주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땐 당장 손해를 볼지언정 크게 굽히지 않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옳고 그름엔 판단의 차이가 있어 당시엔 그것이 바른 말이었는지 그냥 지기 싫어하는 아집이었는지 잘 모르지만 그렇다고 크게 후회하지도 않는다. 주관적이지만 그 땐 나름 내 업무에 대한 분명한 철학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더욱이 당장은 손해 본 듯해도 우선 관료로서 나 자신에게 떳떳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바꾸어 장편 역사소설 ‘정관정요’에 의하면 당나라신하 위징이 군주인 당 태종 이세민에게 유향이 지은 ‘설원’을 예로 들며 섬기는 사람의 행동에 육정과 육사를 들어 간청하는 구절이 나온다. 그러면서 ‘육사’ 중 ‘유신’이란 주군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좋고 행위는 선하다고 말하는 것이고 ‘육정’ 중 군주에게 좋은 점은 살려 간하고 결점을 바로잡게 하는 것이 ‘양신’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은 충신 보다 양신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이렇듯 바른 말을 하면 개인은 당장 손해 볼 것 같지만 끝내 조직이 살아나고 나도 살게 된다. 물론 옳고 그름의 정책적 판단을 올바르게 진언하는 경우에 국한됨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오늘은 지방선거일! 저마다 나랏일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나선 후보 중 누군가 한 사람이 선택된다. 격전이 끝나면 당선된 지역의 위정자께서 바른 말에 대해 한번쯤 새겨봄직 할 문제다.
김영곤(시인·행정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