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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음악가 이봉조, 정훈희 그리고 꽃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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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6.13  20:3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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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밭에 앉아서 꽃잎을 보네, 고운 빛은 어디에서 왔을까, 아름다운 꽃이여 꽃이여~~” 가창력의 대명사 정훈희가 대마초 파동의 충격으로 방송출연을 정지당한 후 6년 만에 화려하게 재기한 컴백곡 ‘꽃밭에서(1981년)’다. 조관우 버전도 호소력이 매우 짙을 뿐 아니라 소향, 조수미 버전도 대단히 매력적이다. 이종택 작사로 되어 있지만 실제는 세종 때 이조참의를 지낸 최한경의 사모시(思慕詩) ‘화원(花園)’을 개작한 것이다.

최한경은 젊은 시절 성균관에서 공부할 때 고향 이웃집에 살던 박소저를 그리워하며 이 시를 지었다. ‘坐中花園 膽彼夭葉 兮兮美色 云何來矣(좌중하원 담피요엽 혜혜미색 운하래의) 꽃밭에 앉아서 꽃잎을 보네, 아! 아름다운 색은 어디에서 왔을까’로 시작된다.

정훈희는 1952년 한국전쟁 중 부산에서 피아니스트였던 아버지 정근수의 딸로 태어나 1967년 15세 앳된 소녀가수로 ‘안개’를 불러 데뷔했다. 1970년 도쿄가요제에서 이 곡으로 우리나라 최초로 국제가요제 입선기록을 세웠다. 이 가요제에서 스웨덴 그룹 아바(ABBA)가 탈락한 것은 흥미롭다. 이후 1971년 아테네가요제, 1975년 칠레가요제 등 국제대회에서 잇따라 수상하며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특히 외국무대에서 예쁜 한복을 입고 열창해 국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인기가도를 달릴 때 하루에 30~50곡씩 부르고 성인이 되기 전에 많은 돈을 벌었다. 1979년 결혼 이후 활동을 접었으나 2007년 데뷔 40년 앨범을 발표하고 활동을 재개했다.

‘가수 정훈희’는 위대한 작곡가 이봉조(李鳳祚, 1931~1987)의 작품이다. 귀여운 부산 소녀가 방학 때 서울 어느 나이트클럽에서 맑고 고운 목소리로 팝송을 부르는 것을 본 이봉조가 바로 발탁해 ‘안개’를 작곡해 준 것이다. 이때부터 ‘무인도’ 등으로 국제가요제에 같이 참석하고 ‘좋아서 만났지요’, ‘꽃밭에서’ 등을 작곡해 주어 화려한 전성기를 이끈다.

이봉조는 정훈희 뿐 아니라 가수 현미도 발굴해 ‘밤안개’, ‘보고싶은 얼굴’, ‘떠날 때는 말없이’ 등 명곡을 안겨준다. 현미 역시 이봉조 작품 ‘나의 별’로 1973년 아테네가요제에 입상했다. 세계를 돌아다니던 뮤지컬 가수 윤복희에게 1967년 ‘웃는 얼굴 다정해도’를 작곡해 주어 대중가수로 발탁한다. 윤복희는 1960년대말 미니스커트를 유행시킨 주인공이고 가수 유주용, 남진과 결혼했으나 모두 이혼하고 지금은 홀로 노년을 보내고 있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엘리트 가수 최희준에게 ‘팔도강산’, ‘맨발의 청춘’, ‘종점’, ‘나는 곰이다’, ‘잃어버린 태양’, ‘뜨거운 침묵’, ‘인생 10년’ 등을 작곡해 준다. ‘맨발의 청춘’과 ‘종점’은 각각 김기덕 감독, 신성일 주연의 동명 영화 주제가로 히트했다. 매혹의 저음가수 최희준은 간장약, 라면 등 광고에도 출연하고 1996년 국회의원 총선에서 새정치국민회의 공천으로 안양에서 당선, 제15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요절가수 차중락에게는 ‘철없는 아내’를 작곡해줬다.

평생 약 300여곡을 작곡한 이봉조는 사실 색소폰 연주자로 더 알려져 있다. 한양대 공대 건축과 재학시절 테너색소폰 연주자 엄토미(嚴吐美)에게 연주법을 사사받은 그는 KBS악단장을 지낼 때 색소폰을 직접 연주하며 팬들의 심금을 울렸다. 뛰어난 연주실력으로 ‘한국의 스탠 게츠(Stan Getz)’라는 별명을 얻었다. 길옥윤, 박춘석, 이봉조, 김희갑 등을 길러낸 재즈음악가 엄토미는 영화배우 엄앵란의 삼촌이다.

이봉조는 일제강점기 천재 작곡가 이재호를 고교 스승으로 두었지만 트로트로 점철된 당시 대중음악계에 재즈를 바탕으로 새로운 음악세계를 개척했다는 평을 받는다. 1972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을 받은 그는 1987년 아까운 나이에 심장마비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 충남 천안시 광덕면 천안공원묘원에서 영면하고 있다. 서울 대학로 문화회관 앞길에서 열린 영결식에는 ‘떠날때는 말없이’가 색소폰에 담겨 흐느끼고 있었다. 지금은 먼 하늘나라에서, 태어난 고향 남해군 창선면 거리, 음악가의 꿈을 키운 진주중,고등학교 운동장을 누비고 있을 것이다.

정훈희는 스스로 ‘꽃밭에서’를 불러 인생이 꽃길을 걸어왔다고 했다. 부부가수 김태화,정훈희가 부산 기장군 임량해수욕장에서 운영하는 라이브 카페 이름도 ‘꽃밭에서’다. 준수한 외모와 걸걸한 목소리 그리고 멋진 붓글씨로 주위를 감동시키고 많은 가수들에게 ‘꽃밭’을 선사하고 떠난 천재 음악가 이봉조, 우리 진주가 꼭 기억해야 할 인물이다.

최임식(LH 지역발전협력단장)

최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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