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진해만을 본 통감 이등박문(伊藤博文)
[경일포럼]진해만을 본 통감 이등박문(伊藤博文)
  • 경남일보
  • 승인 2018.06.14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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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늑약의 원흉인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109년전, 진해만을 방문하여 기쁜 마음으로 한시를 지었다.



卽是東洋鎭海灣(즉시동양진해만)

水軍潛影擁重關(수군잠영옹중관)

想曾激戰沈樓艦(상증격전침루함)

成敗分來反掌間(성패분래반장간)



여기가 바로 동양의 이름난 바다 진해만인데

수군이 그림자를 숨기고 여러겹 관문을 에워싸고 있네.

생각해보니 일찍이 격전으로 누함들이 가라앉았었는데

이기고 지는 성패 나뉜 것이 손바닥 뒤집는 사이로구나!



이토는 이 시의 1, 2구에서 진해만이 군항으로서 동양 최고라고 찬양하고 있다. 그림자까지 숨길 수 있을 만큼 여러 겹으로 감싸여있는 진해만의 특징을 이토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러일전쟁 때, 발틱해에서 출발한 러시아 태평양함대를 진해만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일본 연합함대는 이곳에서 외부에 노출시키지 않으면서 은밀하게 훈련을 진행할 수 있었다. 3구에 등장하는 루함(樓艦)은 루선(樓船)과 같은 말인데 양면에 두꺼운 판을 대고 무기를 배열한 3층 높이의 누각이 있는 군함을 의미한다. 루함에는 총대장이 탄다. 이백(李白)이 지은 「영왕동순가(永王東巡歌)」에는 ‘아왕루함경진한’(我王樓艦輕秦漢)이라는 구절이 있다. 우리 왕의 군함이 진시황, 한무제보다 재빠르다는 뜻이다. 이토는 진해만을 읊은 시에서 이 용어를 사용하였다. 4구에 있는 반장(反掌)은 손바닥을 뒤집다, 일이 매우 쉽다라는 뜻이다. 임진왜란에서는 패배했지만 러일전쟁에서는 이겼으니 손바닥을 뒤집은 셈이다. 이토는 진해만을 보면서 러일전쟁의 승리를 자축하였던 것이다.

이토가 죽은 지 6개월이 지난 1910년 4월, 진해에서는 그가 쓴 한시를 돌에 새겨서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시가지 중심인 로터리에 세워 그의 공로에 감사하였다. 이토는 군항도시 진해와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1909년 6월 30일부터 군항건설이 본격화되었다. 건설 초기의 방비대사령관은 해군소장 미야오카 나오키(宮岡直記)였다. 미야오카는 마산 철도관사를 빌려서 임시해군건축지부 가청사로 사용하다가 1910년 4월 진해 현동으로 옮겼다. 이때부터 건축부가 진해에서 개청되었다. 미야오카는 진해군항 건설을 기념하기 위해 중원로터리의 개오동나무(榎木) 아래에 길이 5척, 폭 4촌의 돌로 된 기념비를 세웠다. 이 기념비의 전면에는 대마해전의 일본 연합함대사령관이었던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 대장의 친필로 된 「鎭海軍港設置記念」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뒷면에는 하나의 긴 문장으로 군항설치가 있기까지의 경과를 자세히 적어 놓았는데 그 전문이 전해져오고 있다. 비문에 의하면 1906년 8월, 통감 이토가 박제순 한국참정(參政)대신과 군항건설협약을 체결할 때 미야오카는 무관으로 통감부에 근무하고 있었다. 그런데 1909년 7월, 이토가 초대 통감(統監)에서 물러나서 러시아로 가기 전에 진해만을 지나가게 되었다. 이때 미야오카는 이토에게 시 한수를 청하였고, 이토가 진해만에 대한 소감을 칠언절구로 즉음(卽吟)한 것을 비문에 기록하였던 것이다. 군항설치 기념비라기 보다 이토의 시비(詩碑)라고 볼 정도이다. 미야오카는 군항건설을 위한 이토의 토지협상을 가까이서 지켜보았기 때문에 군항설치 시작이 자신에게 각별한 의미로 다가왔던 것이다.

1920년대에는 북원로터리에도 있었다고 한다. 이토와 도고의 글씨가 얼마나 오랫동안 로터리를 차지하고 있었을까? 지금은 중원과 북원로터리에 있던 그의 시비를 기억하는 사람도 없다. 그 시비가 언제 없어졌는지도 모른다. 과연 진해만을 찬양한 이토는 오늘의 군항도시 진해를 만든 원흉인가? 공로자인가.

전점석(창원YMCA 명예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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