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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용복의 세계 오지 탐험 <4>파미르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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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6.17  22:3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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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색과 백색 설경의 조화가 아름답다.

드디어 출발이다. 파미르 고원에서의 숙박은 모두 텐트에서 하는 탓에 베이스캠프에 머무는 동안 식량과 침구, 옷가지 따위로 짐이 많을 수밖에 없다. 사실 이번 여행은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세계의 지붕. 그 장엄한 위엄을 지키기 위함인 듯 사람의 발길을 허락하는 시간이 일 년 중 7∼8월 겨우 두 달. 우리가 가고자 했던 서파미르는 미리 키르기스스탄이나 타지키스탄의 비자와 파미르 입산신고서를 발급받아야 통행이 가능하고, 그마저도 현지 여행사의 대행을 통하지 않으면 쉽지 않은 터라 네 번의 시도 끝에 4년 만에 출발하게 된 것이다.

파미르는 옛 페르시아어로 ‘평평한 지붕’이라는 뜻이다. 유목민의 문화가 강한 파미르인들은 온 가족이 한 방에 모여 생활하는 전통이 있는데 이는 추운 날씨 탓이라고 한다. 이들은 산골짜기마다 마을을 형성하고 농업과 목축을 주산업으로 살아가고 있다.

△레닌봉 등반 전초기지인 캠프1까지만 오르기로

나를 포함한 일행은 전문산악인이 아닌지라 고도 6000m에 이르는 파미르 트레킹은 아무래도 고소증과 체력적인 부담 때문에 포기하고, 베이스캠프에 머물면서 옛 소련에서 세 번째로 높은 레닌봉을 오르는 전초기지인 캠프 1(4200m)까지만 가기로 했다.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차로 8시간을 달려 키르기스스탄 국경도시 오시에 도착했다. 7월의 뜨거운 태양과 사막기후의 건조함에다 에어컨 없는 우즈벡 차량을 이용해 장시간 이동하다보니 일행은 어느새 녹초가 돼버렸다.

오시는 파미르고원 등반 출발점이 되는 도시로 매년 이맘 때면 레닌봉을 오르려는 산악인들이 몰리는 곳이다. 1박한 후 고물승합차는 파미르로 출발했다. 가장 걱정되는 것은 고소증. 이미 나는 쿠스코(3600m)와 티티카카(3812m)호수, 그리고 네팔 히말라야에서 고소증을 경험해본 적이 있어 불안감이 더했다. 히말라야에서는 5200m에서 쓰러지기도 했었다.

이것은 고도가 높아질수록 산소가 부족해지면서 뇌와 혈액에 공급되는 산소량이 부족해서 나타나는 증상이다. 심한 두통과 구토, 심하면 피를 쏟거나 실신을 하기도 한다. 처방은 내려가거나 몸이 적응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 유목민의 거주지 유르트, 산 아래 계곡 옆 민가가 평화로워보인다.
   
▲ 유목민의 아이들


완만한 경사로를 계속 오르자 넓은 초원이 펼쳐지고 강줄기가 있는 곳엔 유르트라고 부르는 유목민의 텐트가 드문드문 보였다. 유목민들의 살림살이는 궁색했다. 소와 양들은 풀을 찾아 초원으로 나가고 주위에는 닭과 당나귀가 유르트를 지키고 있다. 해발 2000m를 넘어서면서부터는 나무는 아예 한 그루도 보이지 않았다. 기압차 때문에 진공포장한 식재료들이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다.

도시를 출발한지 6시간 만에 입산 허가소에 도착했다. 협곡을 타고 들어가는 차량을 따라 튤립과 에델바이스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고물차는 진창길, 물길을 가리지 않고 달렸다. 베이스캠프가 가까워오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날씨도 추워져서 너도나도 두꺼운 옷을 꺼내 입었다.

 

   
▲ 베이스캠프에 도착
   
▲ 어스름한 저녁의 베이스캠프


저녁 6시가 돼서야 해발 3800m,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미리 예약해둔 텐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파미르에 도착했구나’ 하는 안도와 함께 자연이 만드는 장관을 감상하는 것도 잠시, 어지럼증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고소증세가 왔다. 두통이 갑자기 심해졌다. 어둠 속 눈바람에 오한까지 들기 시작했다. 텐트로 들어가 챙겨온 겨울옷을 몽땅 껴입고 침낭 속으로 들어갔다. 바닥의 찬 기운을 막기 위해 깔개와 이불까지 깔았지만 으스스한 한기는 어쩔 수 없었다. 숨을 쉬기 어려우니 몇 발짝 걷기도 쉽지 않았다. 추위에 고소증, 그리고 배탈까지. 결국에는 탈진해서 쓰러지고 말았다.

내가 파미르를 너무 만만하게 봤구나. 전 세계를 돌아다녔어도 이만큼 힘든 곳이 없었는데, 자만했던 내 마음을 파미르가 벌하는구나. 날이 밝으면 도시로 내려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저히 추위를 털어내지 못해 결국 해가 뜨기엔 아직 이른 시간인데도 텐트 밖으로 나섰다.

웅크렸던 몸을 풀기 위해 크게 기지개를 켜는 순간, 파미르가 내게 큰 선물을 안겨주었다. 수많은 별들이 내 시야로 쏟아져 들어왔던 것이다. 까만 도화지에 점점이 흰 소금을 흩뿌린 듯 밤하늘은 반짝이는 별들로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마친 후 우리일행을 인솔하는 박 대장에게 하산의사를 타진했다. 나 말고는 아직 고산증을 겪고 있는 사람은 없는 듯 다들 주변풍경을 구경하며 장비를 챙기고 있었다.

오후가 되자 몸 상태가 현저히 좋아졌다. 반대로 팔팔하던 일행들이 쓰러지고 말았다. 고소증은 나이나 체력과 무관하다더니 내가 좋아진 반면 한 템포 늦게 증세가 나타나고 있었다.

4일간의 고산적응을 마치고 캠프1로 출발하는 아침. 비록 레닌봉 정상을 밟는 산행은 아니지만 4200m고지까지 8시간의 산행이 이어지는 코스이기에 모두들 나름 마음다짐을 하고 있었다.

1박을 하는 데 필요한 텐트와 식량은 포터에게 맡기고 비교적 편한 발걸음으로 나섰다. 넓은 초원길에서는 어릴 적 뒷동산 소풍을 가는 어린아이 마냥 신나는 기분이 들었다. 평지가 끝나자 가파른 능선이 이어졌다. 한국의 산처럼 수목이 우거진 상쾌한 오솔길을 생각하면 오산이다. 눈으로 덮였다 녹기를 반복한 산세는 풀 한 포기 찾을 수 없는 자갈과 진흙길이라 자칫 잘못 발을 디뎠다간 미끄러지기 십상. 45도를 넘는 경사도여서 떨어질까 봐 신경은 곤두섰다.

   
▲ 자갈과 진흙길이라 자칫 잘못해 미끄러지면 사고가 날수 있다.
   
▲ 갈지자 모양으로 말이 먼저 오른 길을 따른다.


게다가 길이랄 것도 따로 없다. 높은 경사면을 타고 바로 가기 어려우니 갈지(之)자 모양으로 말이 먼저 오른 길이 유일하다.

쉬다 가기를 반복하며 능선 서너 개를 넘어가니 또 다른 절경이 펼쳐졌다. 지나온 쪽은 푸릇한 갈색과 흰색이 어우러진 천연의 모습이요, 앞으로 갈 길은 눈 덮인 백색의 설경이다. 협곡 사이로 눈이 쌓이고 쌓여 얼음처럼 굳고 그 층이 또 갈라져 만들어진 얼음 협곡, 크레바스가 저 멀리 보이기 시작했다. 그곳을 가로질러 가는 길이 캠프1로 가는 빠른 길이긴 하지만, 워낙 사고가 많이 나는 탓에 몇 년 전부터 크레바스 길은 폐쇄됐다. 얼음나라로 들어선 탓인지 고도는 몇 백m차이도 나지 않는데 눈보라가 치기 시작하고 공기도 차가워졌다.

△나를 더욱 겸손하게 만든 레닌봉

산머리로 해가 넘어가면 금새 어두워지는 탓에 서둘러 캠프1로 이동했다. 능선을 몇 개나 넘었을까. 레닌봉을 밟기 위해 캠프를 차린 등반가들의 텐트무리가 보이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가 하루를 머물 캠프1에 도착했다.

 

   
▲ 해발 4200m베이스캠프


레닌봉 정상이 바로 바라다 보이는 자리, 몇 개의 능선으로 둘러싸인 움푹 파인 분지에 우리가 머물 캠프가 있다. 4200m고지. 고작 400m위로 올라왔을 뿐인데 또 다시 고산증세가 나타났다. 등반이 고되기도 하고 증상이 심해지기도 해서 저녁을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추위에 어느 정도 단련된 탓인지 밤이 그렇게 괴롭지는 않았다. 동 트는 것이 느껴저 텐트 밖으로 나오니 간밤에 눈이 내려 온 세상이 하얗게 변했다. 우리가 잤던 텐트도 눈으로 덮여 형체만 겨우 알아볼 정도다. 캠프1이 이정도인데 레닌봉을 오르는 캠프 2·3은 어느 정도일지 가보지 않아도 짐작됐다.

밤새 폭설이 내려 우리가 머문 캠프로 눈사태가 나지 말란 법도 없지 않은가. 하산하기 위해 배낭을 메고 레닌봉을 올려다보고 작별인사를 했다. 비록 오르지는 못했지만 그 장엄함을 가슴에 담으며 나를 더욱 겸손하게 만든 레닌봉, 너를 이렇게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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