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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일시론]재일동포의 조국사랑(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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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6.20  23: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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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해방 후 일본에서 거주하던 한국인은 대부분 한국으로 귀국하고 귀국하지 못한 한국인은 언젠가는 한국에 돌아갈 것을 예상하고 자녀들에게 민족의 혼인 한국어 교육을 시키기 위해서 일본 전국에 500여개 민족학교를 설립하여 5만여명(1948년 4월 27일자 아시히신문)의 학생들에게 한국어와 한국의 역사, 문화를 지도했다.

일본정부의 조선인학교 폐교령에 대항하여 1948년 4월에 오사카와 효고에서 폐교령에 반대해서 조선인과 일부 일본인 7,000여명이 참가해서 격렬하게 저항한 한신교육투쟁으로 발전했다. 결국 일본정부는 정식학교 신청을 받기로 했으며, 일본 전국에서 신청한 16개 학교 중에서 많은 어려운 난간을 거처서 1곳만 일본정부가 정식학교로 인가했다. 1946년 4월에 제주도 출신 재일동포 1세인 조규훈 선생이 설립한 오사카에 있는 백두학원 건국학교이다.

조규헌 선생의 건학이념은 백두학원 창립 취지문의 “조국부흥의 주춧돌이 되자” 창립 취지문의 핵심 부분을 원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재건하는 우리나라를 민주적 평화적 문화국가로 건설하고, 세계평화와 인류사회에 기여한 민족교육을 위하여 재일동포 자제에게 필요한 교육을 할 수 있는 교육기관의 설치야말로 급무중의 급무임을 통감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업은 그 기초인 초·중·고의 기초교육 기관이 없고서는 도저히 소기의 목적 달성이 불가능하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견지에서 유지 일동과 상의하여 본 법인을 설립하여 재일동포의 자녀교육을 실시함으로써 조국 문화건설의 목적에 기여하려 한다.”

본인이 2014년 4월에 교장으로 부임하여 근무하면서 설립자 조규훈 선생의 조국에 대한 마음과 민족교육에 대한 정신을 조금이라도 소개하는 것이 오늘에 사는 우리가 해야할 도리라고 생각하여 그 많은 조국사랑 중에서 한 가지를 소개 하고자 한다.

1945년 해방이 되고 한·일국교가 성립되고 1949년 1월에 주일대한민국대표부가 설치되었다. 1948년 후반기에 미국에서 이 승만 초대 대통령, 안창호 선생등과 함께 “대한민국국민회”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했던 정한경 초대공사가 조규헌 선생의 자택이 있는 고베의 마이코(舞子)에 찾아와 한국정부의 재정이 어려워 찾아왔다며 도움을 청하기를 대표부설립에 필요한 자금 500만엔만 있으면 최소한의 준비는 될 것 같다는 말을 듣고 1000만엔을 지원하여 주일대표부는 세이코(SEIKO)시계 본사 건물로 유명한 도쿄 긴자의 핫토리빌딩 4층을 통째로 빌려 썼고 대표부 관저를 구입 할 때도 300만엔을 지원했다고 기록에 남아 있다.

한국정부가 해방 후 처음으로 일본에 공관을 세우는데 그것도 도쿄의 최고중심지인 긴자에 태극기를 꽂는데 조규헌 선생의 공헌이 있었다. 조규헌 선생의 4남인 조명현씨는 그 당시 교사의 1개월치 월급은 150엔이었고, 히로시마에서 부산 까지오는 연락선 뱃삯이 50엔으로, 1948년에 1300만엔은 지금환산하면 20억엔(200억원)을 조국을 위해서 기부하면서 어머님이 그렇게 입고 싶어 하던 스커트를 사치스럽다고 단호하게 거절하던 아버지에게 항의했더니 “우리만 잘 살아서 뭐하느냐, 모두가 좋아져야 한다”고 하셨다며, 그때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할 수 없었는데 지금 아버지의 나이가 되고 보니 그 신념이 “옳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이광형 (서울대학교 재외동포교육 자문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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