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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주석의 최치원 선생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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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7.02  10: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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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주
우리나라 오천년 역사 속의 많은 인물 중에서 업적이 다양한 인물을 간추려 보면 신라 말기 최치원(857~?) 선생을 빼 놓을 수 없다. 그는 문신으로 유불선 3교를 넘나드는 사상가이며 유학자, 문장가이다.

본관은 경주, 자는 고운(孤雲), 해운(海運)이며 시호는 문창(文昌)이다. 열두 살에 당에 유학한 선생은 6년 만에 빈공과 장원으로 급제했다. 벼슬길로 나아가 절도사 고변(高騈)의 막하에 있을 때 황소의 난이 일어났다. 선생은 종사관으로 반란의 수장 황소를 꾸짖는 글, ‘토황소격문’을 지어 문장가로 이름을 떨쳤다.

스물아홉 살에 귀국해서는 선종 승려 및 사찰 비문을 짓거나 외교 문서 작성을 맡기도 했다. 그 후 개혁정책인 시무(時務) 10여 조를 상소했고 벼슬이 아찬까지 올랐다. 그러나 육두품 출신으로 진골 귀족들 속에서 자신의 이상을 펼쳐 볼 수도 없었다. 그러자 관직을 버리고 전국을 떠돌다가 마지막으로 가야산 해인사로 들어갔다고 한다.

한때 민족주의 사학자들은 그를 사대모화주의자로 분류했으나 최근 깊이 있는 연구로 새롭게 조명 되고 있다. 선생에 관하여는 2013년 한중정상회담에서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이 범해(泛海)라는 한시를 인용하면서 높게 평하며 한·중 역사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또한 이듬해 한국을 방문한 시 주석은 서울대 특강에서도 최치원을 한·중 상징인물로 언급했다. 그 외에도 시진핑은 ‘2015 중국 방문의 해’ 개막식 축하메시지에서 선생의 시 ‘호중별천(壺中別天)’을 직접 소개했다. 시 주석은 ‘동쪽 나라 화개동은 호리병 속 별천지(東國花開洞 壺中別有天)’란 시구에서 화개동은 지리산 쌍계사, 칠불사 일대로 그곳의 아름다움을 칭송했다고 강조했다. 중국 국가주석이 공식 자리에서 최치원 선생을 세 번이나 언급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중국 장쑤성 양저우에는 최치원기념관이 있으며 매년 10월 15일에 선생의 제향을 올리고 있다. 중국에서는 한중문화교류의 대표인물로 최치원 선생이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징표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15년 최치원 유적이 있는 지방자치단체가 연합체를 결성하고 21세기 새로운 한류문화콘텐츠를 공동 개발하기로 했다. 늦은 감이 있지만 환영할 일이다. 우리도 선생의 정신을 받들고 여러 곳에 산재한 유적을 집대성해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문화국가의 자존심을 지키는 길이다.


임영주(마산문화원장,(사)고운 최치원기념사업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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