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일러스 박물관(Teylers Museum)
세계 어느 도시를 가더라도 강이 흐르는 도시는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어서 유서 깊은 곳들이 많다. 강 위를 오가며 활발히 행해졌던 교역으로 인해 화려한 번영기 맞을 수 있었고 그 덕분에 발전된 문화와 예술은 오늘날까지도 빛나고 있다.
스파른 강으로 둘러쌓인 네덜란드 하를렘(Haarlem)은 내 고향 진주와 분위기가 비슷해서 더욱 정이 가는 도시다. 강가의 풍경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끄집어 내는걸 보니 자연이 가지고 있는 힘은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임에 틀림없는 듯하다.
하를렘을 둘러쌓고 있는 스파른 강은 1572년 스페인 군대가 하를렘을 포위했을 당시 많은 시련을 겪었다.
부녀자들까지 거들어 하를렘 주위에 성벽을 쌓아 스페인의 공격에 대항했지만 7개월간의 포위 공격은 심각한 기아문제를 일으켰다. 많은 시민들은 굶주림에 시달리다가 목숨을 잃거나 강에서 익사했다. 그 후, 스파른 강 근처에서 일어난 대화재로 인해 도로와 500여 채에 이르는 건물이 불에 타는 등 전쟁의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한 차례 재앙을 겪어야 했다.
두 차례나 고난의 시간을 견딘 하를렘은 파괴 된 도시를 복구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시민들의 도움으로 도시가 빠르게 복구 되었고, 경제를 부흥시키기 위해 다양한 문화를 추구하며 종교의 다양성을 인정한 덕분에 플랑드르, 프랑스로부터 수많은 이민자가 유입됐다.
그 결과 하를렘의 인구 수가 급격히 늘어나게 되어 네덜란드에서 가장 바쁘고 활기찬 도시가 됐다. 린넨과 실크제조 및 무역에 대해 상당한 전문성을 가지고 있었던 새로운 시민들은 직물업이 번성 하는데에 큰 역할을 했다.
하를렘역에서 걸어 나와 스파른 강가를 따라 쭉 걷다보면 멋들어진 외관을 뽐내는 건물을 만날 수 있다. 간판대신 펄럭이는 깃발에는 ‘Teylers Museum’이라고 쓰여 있어서 이 건물이 박물관임을 쉽게 알아차린다.
박물관(博物館)의 한자를 풀어서 해석하면 ‘온갖 사물을 모아 놓은 곳’을 의미하며 영어로는 뮤지엄(museum)이라고 한다. ‘뮤지엄’은 그리스어 ‘무세이온’(Mouseion)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는데 무세이온이라는 단어는 학문과 예술의 여신들을 의미하는 ‘무사이’에서 비롯되었다.
고대 무세이온을 처음 건립한 사람은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를 개창한 프톨레마이오스 1세였다. 그는 제국의 권위와 문명의 발전을 위해 세계적인 학자들을 초빙하여 학술원 역할을 하는 무세이온을 세웠고, 이것이 오늘날 박물관의 전신이 되었다.
테일러스 박물관은 미술, 자연, 역사, 과학 까지 아우르는 종합 박물관으로써 고대 무세이온의 건립정신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건립자인 피터 테일러의 이름을 내걸고 1778년 문을 연 박물관은 회화, 조각에만 집중되어진 대부분의 박물관과는 달리 다양한 분야의 소장품을 보유하고 있다.
피터 테일러(Pieter Teyler,1702-1778)는 네덜란드 하를렘에서 태어나 직물업 및 은행업으로 많은 부를 축척했던 자산가다. 그는 부유한 스코틀랜드 상인 가문의 후손으로 스코틀랜드 계몽주의를 지지했다.
테일러가 지지 했던 스코틀랜드 계몽주의는 현실의 경험 속에서 쌓은 상식과 지식을 통해 개인과 사회 모두 발전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테일러는 자신의 유언장에 재산 중 일부를 예술의 발전과 학문연구를 위해서 사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테일러의 사후 그의 유언에 따라 두 가지 기구가 만들어 졌는데 그것은 신학발전을 위한 기구와 역사, 문학, 미술, 자연과학 등의 학문 발전을 위한 기구였다. 이 기구들을 바탕으로 테일러의 열망이 박물관 건립으로 실현됐다.
테일러스 박물관은 세상의 온갖 만물이 모여 있는 정통 박물관답게 옛 고서, 발명품, 그림, 화석, 광물 등 다양한 분야의 소장품이 주를 이룬다. 특히 발명품, 화석 등은 계몽주의가 확산 되었던 18세기에는 과학도 예술의 한 맥락으로 간주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박물관은 수차례에 걸쳐 확장공사를 반복하며 현재는 12개의 다양한 전시실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두 개의 미술 전시실은 네덜란드에서 활동했던 화가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하여 헤이그, 암스테르담 미술 학교 출신 화가들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어서 네덜란드 회화의 이해를 돕는다.
그 중 박물관에서 가장 처음 만들어진 타원형 전시실(Oval Room)은 신고전주의 건축양식을 반영한 곳으로 박물관을 찾는 관람객들이 가장 오랜 시간동안 머무는 곳이다. 이 곳은 건축당시 미술작품과 책을 위한 전시실로써 테일러의 집 뒤편에 만들어 졌다.
백과사전이 꽂혀있는 책장이 2층 벽면을 이루고 1층 가운데 놓여있는 진열대에는 다양한 광물을 전시하고 있다. 이러한 소장품들은 단순히 전시품으로써의 역할뿐만 아니라 연구, 증명, 강의 등의 자료로 사용되어져 다양한 학문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2011년 박물관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며 소장품들의 오랜 역사와 가치를 인정받았으나, 2013년에 지정 목록에서 제외되며 아쉬움을 남긴 바 있다. 그러나 테일러스 박물관은 네덜란드 최초의 박물관이자 가장 오래된 박물관으로 여전히 그 역사적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테일러스 박물관을 관람하고 나오면 과거로 여행을 다녀온 느낌을 받는다. 오늘날 우리는 눈부신 과학 기술의 발전 속에 살고 있지만 살아보지 못했던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박물관은 이 같은 인간의 한계를 위로하며 시공간을 이어주는 공간으로써 옛 것을 고스란히 지키고 있다.
이러한 소통의 공간이 오늘날 까지도 우리 곁에 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의 재산을 아낌없이 미래에 투자했던 선각자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주소: Spaarne 16, 2011 CH Haarlem, 네덜란드
운영시간: 화~일요일 오전 10시~오후 5시(월요일 휴관)
홈페이지: https://www.teylersmuseum.nl/
입장료: 성인 13.5유로, 6~17세 2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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