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비움의 역설
마음 비움의 역설
  • 경남일보
  • 승인 2018.07.03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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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곤
살면서 가끔 스스로 작심했던 일이 잘 안 풀릴 때면 한번쯤 ‘마음을 비웠다’는 말을 해보았을 것이다. 듣기에 따라 마치 성인군자의 말 같기도 하고 스스로 들어 찾던 욕심을 버렸다는 말로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필자는 이 말을 보다 냉정하게 새기고 이해하며 듣는 편이다.

이유인즉 과연 나나 당신이 마음을 비운 사람이 맞는지 찬찬히 생각해 보면 대체로 아니다라는 결론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목표한 일에 대해선 성취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유명한 맥클랜드의 성취동기 이론에 의하면 성취욕구는 남 보다 뛰어나고 표준에 맞게 무언가 이루어 내어 성공하고자 하는 욕구라고 정의된다. 이처럼 성취욕구가 강한 사람일수록 목표에 대한 집착 또한 강하기 마련이다. 집착엔 목표물의 대상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반드시 강한 욕심이 뒤따른다. 물론 선의의 욕심이라면 탓할 바 아니지만 나쁜 욕심이라면 버리는 것이 좋다. 그러나 목표를 달성함에 있어 스스로의 노력에 대응해 오는 유.무형의 경쟁 상대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이럴 경우 만약 그 경쟁 상대에게 지거나 질 것이 예상대면 자기 방어용으로 비운다는 말을 쉽게 해버린다. 그것도 자신이 설정했던 목표에 대한 집착의 끈을 놓지 않은 채 말이다. 이럴 경우엔 마음을 비웠다는 말은 비움이 아니라 포기와 가까운 말이 된다. 그냥 포기했다고 하면 될 것을 알량한 자존심을 앞세워 거창하게 마음을 비웠다는 말을 내세운 것에 불과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비웠다는 말은 아주 단순한 것 같지만 역설적으로 위험한 말이 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비움 뒤에 내재된 집착이 더 강해져 상대방을 해칠 나쁜 욕심에 근접해 가기 때문이다. 또한 주지되듯 비우려 하면 할수록 자꾸만 들어차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마음이다. 그만큼 비운다는 것은 보편적인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마음수양 없이 이루기엔 참으로 어려운 공부다.

사람이 태어날 때 주먹을 불끈 쥐고 울었던 것이 채우려는 욕심이었다면 세상을 떠날 때 두 손을 쫙 펴는 것이 비움이라고 말하면 필자의 비약일까. 이유야 어떠하든 자신의 능력 부족으로 포기한 마음을 섣불리 비웠다고 말한 스스로의 오류에서 더 큰 집착을 갖고 있진 않는지 살펴 볼 일이다. 왜냐하면 스스로 역부족임을 알고 포기했던 마음을 그냥 비웠다는 말로 앞세운 포장된 욕심이 끝내 집착에 의한 나쁜 욕심으로 번지진 않을지 우려된다. 아무튼 비움을 빙자한 포기를 앞세운 욕심은 우리 사회의 해악이 될 가능성이 짙기 때문이다.
 
김영곤(시인·행정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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