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양동산성서 6~7세기 목간·생활목기 발굴
김해 양동산성서 6~7세기 목간·생활목기 발굴
  • 박준언
  • 승인 2018.07.03 14: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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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양동산성 집수지(集水地)에서 나뭇조각에 글을 적은 목간 등 6~7세기 유물이 대량 출토됐다. 특히 목간에 적힌 글은 고대 김해와 주변 국가 등과의 관계를 풀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김해시는 3일 경남도 기념물 제91호인 주촌면 양동산성 집수지 내부에서 보존상태가 양호한 철화살촉 2점과 철도끼 1점를 비롯해 바가지, 국자, 소쿠리 등 생활도구가 발굴됐다고 밝혔다.

‘집수지’란 산성 등에서 물을 확보하기 위해 만든 인공 못이다. 직사각형 모양인 양동산성 집수지는 길이 15.5m, 너비 22.8m, 최대깊이 3.4m로 영남지역 최대 규모로 확인됐다.

집수지에서는 김해지역 매장문화재 중 출토 사례가 매우 적은 목간 3점도 함께 발견됐다. 목간은 길이 26.8㎝, 너비 2.5㎝, 두께 0.7㎝로 이중 1점은 양동산성으로 운송한 곡물 꾸러미에 부착된 짐꼬리표로 확인됐다. 짐꼬리표에는 ‘마을이름+사람이름+곡물이름’ 순으로 글이 적혀 있었다. 이는 함안 성산산성 부엽층에서 나온 목간과 동일한 기재방식이다. 특히 율촌(栗村)이라는 마을이름이 적혀 있어 당시 김해와 함안, 신라 등과의 관계를 추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시는 적외서 촬영 등을 통해 목간에 적힌 글을 정밀 판독하고 학계와 공동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양동산성은 주촌면 양동리와 내삼리의 경계에 위치한 산봉우리를 두른 800m, 성벽 높이와 폭은 2.5m인 테뫼식 산성이다. 양동산성 집수지는 금관가야가 멸망한 532년 이후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성의 축조 시기도 이 시기와 동일할 것으로 조사단은 판단하고 있다.

시는 발굴지가 가야 멸망 이후 김해를 식읍으로 받은 구형왕과 신라와의 정치적 이해관계, 당시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추정하고 추가 발굴과 국가 사적지 승격을 검토하기로 했다.

박준언기자

 
김해 양동산성 집수지에서 출토된 유물들. 왼쪽부터 집수지, 목간, 도끼와 화살촉, 토기 병. /사진제공=김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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