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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일시론] 김종필정승재(객원논설위원·한국인권사회복지학회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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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7.04  23:3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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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국립 사범대학과 육사를 졸업하고 국비유학생으로 미국 육군보병학교에 공부한 중령 김종필(JP)은 1961년 5월에 군대를 동원한 혁명을 기획, 주도하였다. 거사 당일 새벽, 그는 ‘한번, 단 한번, 오직 한 사람’ 으로 프로포즈하여 결혼생활 하던 아내에게 “뱃속의 아이는 유복자가 될 것이니, 부디 잘 키우시오” 고 당부하고 집을 나섰다. 단 한명의 사상자도 발생하지 않았지만 516은 탱크와 총이 그 수단이었기에 쿠데타(coup)라 할 것이며, 정치학 스팩트럼로 살피면 혁명(revolution) 범주로 구분될 만하다. 통치체제와 양원제에서 단원제로 변경된 국회제도가 바뀐 연유다. 정작 JP는 극심했던 사회혼란 수습과 나라의 질서가 잡히면 어떤 평가든 상관없다고 했다.

그는 곧장 정보기관인 중앙정보부를 창설했다. 일제침탈에 대한 6억불 정도의 보상금으로 받고 한일국교를 맺었다. 70년대에는 5년여 국무총리로 일했다. 신군부가 등장한 1980년에는 216억원 부정축재자로 몰려 구금되었다. 이른바 세상이 바뀐 1987년에 대통령후보로 나섰지만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에 이어 4위에 그쳤다. 이후 김영삼과 김대중의 필요에 따라 그들과 협력하여 정권을 창출하였고, 특히 ‘DJP’ 정권에서는 공동지분을 확보하였다. 일생의 꿈, 내각제개헌을 매개로 문서에 엄중히 서명하였지만 산산조각이 났다. 각각의 상대가 파기함에 따름이다. 2004년, 10선 의원 도전에 실패하고 완전한 정계은퇴를 고하고 야인으로 14년을 지냈다. 공(功)만 있는 업적 없고, 과(過)없는 인생 드물다. 그는 열흘 전 별세했다.

516 당시, 한사람이 한 달에 5000원 정도 버는, 극빈과 곤궁에 빠져있었다. 그야말로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사회와 정치는 혼란과 혼동, 무질서 그 자체였다. 언감생심, 국가의 어떠한 ‘성장아젠다’도 없었다. 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 못 벌면 생각이 없다. 살기 위해 오직 먹는 것, 도둑질로도 안들키면 식솔을 먹여 살리고 싶은게 인간욕망이다. 부패를 없애고 절망과 기아에 허덕이는 민생고를 해결한다는 혁명공약이 있었다. 무력의 집권계획이 정당화될 순 없다. 평가에 숙고는 있을 만 하다.

미국의 CIA와 FBI, 러시아의 KGB, 중국의 국가안전부의 첩보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악명높은 북한의 국가안전보위부나 정찰총국은 우리 정보기관의 존재가치를 있게한다. 일본으로부터 받은 보상금은 당시 일본 전체 외화보유액의 절반이 넘었다. 그 돈으로 포항제철을 만들고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는 등 SOC를 구축했다.

박정희서거 후 JP는 대통령 보궐선거를 스스로 걷어찼다. 당시의 체육관 선거가 아닌, 개헌을 통한 직선 대통령을 갈망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조직이나 자금 등 채비를 갖추지 못한 YS나 DJ보다는 월등히 유리한 국면에 있었다. 여전히 여당에 준한 위상으로 제 1당인 민주공화당 총재가 JP였다. 당연히 ‘신군부’세력이 공고화되기 전이다. 역사에 가정이 있겠는가. 우선 간선제로 집권하고 차후 직선제에 출마했다면 어땠을까. 여러 상상을 남긴다. 개인재산이 될 수 없는 서산농장과 제주 감귤농장 등 공익법인의 대표라는 이유로, 그 자산을 추산하여 200억원대 부정축재자로 낙인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혹자는 대통령이 될 수 없어 내각제하의 총리를 꿈꿨다는 허무맹랑한 의심까지 했다. 내각제하의 집권은 의회 다수당이 취한다. JP가 제 1당을 구축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홀연히 국립묘지가 아닌 가족묘원에 묻혔다. JP가 생전에 미리 쓴 묘비명 말미는 이렇다. ‘내조의 덕을 베풀어준 영세반려와 함께 이곳에 누웠노라’. 죽음을 전제한, 그토록 사랑한 아내를 미망인으로 만들 혁명을 왜 감행했는지. 그 묘비엔 ‘국리민복과 국태민안 구현에 진력하였거늘 소이부답(笑而不答), 그저 미소만 지은 사람’이었다고 적혀있다. 추모의 예를 다하고 싶다. 


정승재(객원논설위원·한국인권사회복지학회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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