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기와 차 마시기
밥 먹기와 차 마시기
  • 경남일보
  • 승인 2018.07.05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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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헌식

우리는 때마다 “밥 먹었나?” 한다. 우리는 늘 밥을 먹는다. 그런데 차는 늘 마시는 사람도 있고, 가끔 마시는 사람도 있으며, 마시지 않는 사람도 있다. 밥 먹기와 차 마시기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밥은 ‘먹는다’고 하고 차는 ‘마신다’고 한다. 밥은 생존음식이지만 차는 기호음료이다. 일상생활에서 일하고 밥 먹는 것은 기본적인 일이다. 밥은 씹어 삼킨다. 반면에 차나 커피 그리고 술은 그냥 마실 수 있다. 마신다는 것은 씹어 먹는 수고로움 없이 ‘맛보기-삼키기’의 단조로운 과정을 거친다. 그 안에서 여유로움이 생겨난다. 여유로움 안에서 심신이 쉴 수도 있고 서로의 이야기에 집중할 수도 있다. 마시는 일은 그렇게 정신을 가다듬는 일이 된다. 술은 벗들과 어울려 같이 마시기에 좋기에 마음을 밖으로 향하게 하는 힘이 있다. 반면 차는 휴식과 각성의 효과로 자신의 마음 안으로 끌어들여 절제하는 힘이 있다.

중국의 육우(陸羽)라는 차인은 “괴로워서 갈증을 구할때는 장을 마시고, 울분에는 술을 마시며, 혼미한 것을 씻는 데는 차를 마신다”고 했다. 육우는 마시는 운동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씹는 것이 물량적이라면, 마시는 것은 정신적인 것과 관계있음을 암시한다. 어느 국어학자는 ‘사람’을 어원으로 풀이해 ‘삶’과 ‘앎’의 합성어로 보고 ‘삶을 아는 것이 사람’이라고 했다. 누구나 살아가지만 그 삶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인생은 재미있게 살아야하나 생각할 만한 게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허무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유한하니 집착에서 벗어나 변화를 받아들여야 하지만, 이를 넘어 영원한 것을 추구하며 사람노릇하려고 한다. 일상적인 습관은 변화를 외면하려는 경향이 있어 매몰로부터 탈출하기 어렵다. 차의 정신성은 우리가 일상에 매몰되지 않게 해준다.

차는 술이나 커피와 같은 기호품이다. 한 잔의 차는 관계의 집합체이다. 서로 이야기 하고, 그 안에서 세계관을 가늠해 본다. 관계를 만들기 위해 힘보다는 대화한다. 관계 안에서는 서로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기도 한다. 그 안에는 낭만성과 긴장성이 함께 녹아 있기 마련이다. 동서양의 역사에서 개인 기호생활 속의 긴장과 낭만적 행동이 평화와 화해의 계기를 만들었다는 사실들을 찾을 수 있다.

자신과 가족을 지켜주는 것이 밥 먹기라면 우리를 무한한 상상력으로 이끌어주는 것은 차 마시기이다. 우리는 행동과 사유를 정제하고 절제함으로써 비로소 자유를 얻게 된다. 인생의 잔을 남김없이 털어 마신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바닥에 남은 찌꺼기를 보게 돼 있다.

정헌식(한국차문화역사관 백로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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