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용복의 세계여행[5] 시에라리온
도용복의 세계여행[5] 시에라리온
  • 경남일보
  • 승인 2018.07.08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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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라리온 재리시장 모습. 

아프리카는 해외여행이 일상화된 지금도 쉽게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나마 남아프리카공화국이나 케냐 등 일부 남부아프리카만 관광 상품이 개발돼 있다. 관광인프라가 구축되어 있지 않고 비자발급이나 항공편, 숙박 등 모든 것에 제약이 많고 필요한 정보도 부족하다.

나이지리아로 떠날 예정이던 일정은 현지에서 합류하기로 한 일행이 시에라리온으로 출장을 가면서 덩달아 내 목적지도 변경됐다. 시에라리온 비자를 부랴부랴 신청했지만 결과를 알 수 없어 자칫 발급이 거절되면 공항에서 나이지리아 입국 때까지 머물러야할 판이었다.

최근 중동지역 항공사들의 공격적인 저가 마케팅으로 유럽이나 아프리카를 갈 때 항공요금이 많이 저렴해졌지만, 갑자기 일정을 변경한 탓에 런던을 경유하게 되는 비싼 항공편을 이용했다. 런던에 도착해서도 아직 시에라리온 비자 발급이 확인되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으로 기다리던 중 출발 2시간 전에야 비자가 나왔다는 소식을 접했다.

시에라리온(Sierra Leon)의 시에라는 ‘산’을, 리온은 ‘사자’를 뜻한다. 현재 시에라리온에는 18개의 원주민 종족이 있는데 동부와 남부를 차지하고 있는 멘데족이 제일 큰 집단으로, 전체인구의 약 절반을 차지한다. 그리고 북부의 템네족과 림바족이 전체인구의 약 2/5를 차지한다.

포르투갈을 비롯해 네덜란드와 프랑스로 인해 시에라리온은 대서양 횡단무역의 중심지가 되었고 이후 대영제국의 등장으로 노예무역이 시작됐다. 16~17세기에 영국이 200만의 흑인들을 미국에 노예로 팔아넘겨 큰 수입을 벌게된다. 그 이후로 노예폐지론자와 박애주의자들이 해방노예들의 이주와 정착을 도와주며 현재 프리타운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프리타운 룽기국제공항에 도착한 것이 새벽 5시30분. 다시 배를 타고 40분 정도 이동해야 시내에 도착한다. 프리타운은 시에라리온의 수도이자 대서양에 면한 항구도시로 아프리카에서 가장 크고 세계에서는 세 번째로 큰 자연항구다.

대기 중인 버스를 타고 보트승강장으로 향하는 길은 달리는 내내 심하게 요동칠 정도로 정비되어 있지 않았다. 보트는 20~30명 정원의 작은 배로 거친 파도를 헤치고 나아간다. 선착장에서 가까운 워털루 시장은 아침을 시작하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재래시장은 우리네 옛 모습처럼 온통 진창길이다. 차를 타고 가는 길에 나무를 해서 쌓아놓은 게 보여 물으니 땔감용이라고 하고 우리 돈 450원이면 어른 허리통만한 크기 네 묶음 값이다.


 
공항과 시내를 연결하는 보트


벽돌담에 초가지붕을 올린 원주민 마을에 들어가니 웃통을 벗고 가슴을 내놓은 채 부끄러움이 없이 빨래를 하는 여인과 딸로 보이는 십대소녀가 절구통에 쌀을 찧고 있다. 줄에 묶여있는 염소 몇 마리도 보이고 닭과 오리는 풀어놓고 키우고 있다.

바닥에 돌덩이 세 개로 만들어진 아궁이엔 냄비가 얹혀 있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모습에 어릴 적 ‘나’를 발견하고는 반가운 마음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바다가 가까운 이곳은 어부들이 사는 마을이다. 우기라서 비가 수시로 내리기는 하지만 물이 부족한 탓에 사람들이 비를 반긴다. 물이 없을 땐 며칠씩 씻지도 못하다가 비 내릴 때 샤워도하고 빨래도 한다.

프리타운 시내가 가까워지면서 차들이 많아졌다. 명색이 주유소에 주유기가 한 대뿐이다. 젊은 남자 서넛이 둘러서서 기름을 넣고 있는데 기름 넣는 방법이 특이하다. 옛날에 지하수를 손으로 펌프질해서 끌어올린 것처럼 땅속 기름을 펌프로 올리는 수동식이다. 다른 점이라면 여기선 펌프질을 좌우로 하는 것뿐이다. 그렇게 펌프질을 해서 펌프 위에 부착된 말통으로 기름을 끌어 올리고 그 통이 차면 옆 통으로 옮겨가 호스를 통해 차에 주유를 하는 방식이다. 별다른 용량법이나 계량기도 없이 그냥 한 통에 얼마씩 파는 모양이다.

재래시장이 언제나 정겨운 것은 이들 삶의 모습이 가장 잘 묻어나는 곳이기 때문일 게다. 우기라서 노상 진창인 땅바닥에서 흙탕물에 찌든 낡은 돗자리 한 장 펴놓고 고구마와 당근 같은 작물을 흙도 털지 않은 채 더미 째 팔고 있다. 그나마 지붕이랍시고 함석이나 비닐이라도 씌운 점포는 나름 상점의 모습을 갖춘 셈이지만 그마저도 없는 곳은 진창 위가 바로 가게다. 세계에서 못 살기로 5위 안에 들어간다는 말이 실감난다.

낡은 재봉틀이 전 재산인 옷가게도 있고, 핸드폰 충전을 해주는 가게도 보인다. 한쪽에선 머리카락을 땋아주고 돈을 버는 사람도 있다. 흑인들 특유의 엄청난 곱슬머리는 조금만 길어도 두피를 파고드는 탓에 꼬지 않으면 참기가 힘들다고 한다. 그런데 머리를 꼬아놓으면 마음대로 감지를 못하니 냄새가 나면 열흘이나 보름마다 풀고 다시 머리를 만져야 한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늘어섰다. 버스정류장도 없었는데 코로마 대통령정부가 승강장도 만들고 버스노선도 정비했다고 한다. 큰 트레일러에 짐과 함께 사람들이 가득 차서 물어보니 같은 방향이면 돈을 받지 않고 태우고 간다고 한다. 50명쯤 되는 사람들을 안정창치 없이 트레일러 뒷칸에 싣고 달리는 것이 위험해 보이기도 하지만 정감이 가기도 했다.


 
내전으로 인해 장애를 갖고 사는 사람들
재래시장에 휴대폰을 충전하는 곳.


시청 앞 공터에는 한 무리의 장애인들이 모여 있다. 대부분 다리에 장애가 있고 간혹 팔다리가 절단된 사람도 보인다. 장애인이라서 카메라를 많이 꺼릴 것 같았으나 오히려 일반이보다 우호적이다. 몸은 힘들겠지만 마음은 더 여유로워 보인다. 이들의 대부분이 내전으로 장애를 입게 된 사람들인 것이다. 시에라리온 내전은 ‘살육과 광기’의 전쟁으로 세계적인 악명을 얻었다. 아직도 도심 곳곳에는 팔목과 다리가 잘린 사람들이 구걸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아프리카에서 내전을 겪은 나라가 시에라리온 하나뿐이 아니건만 이곳의 참상은 유독 잔혹하다. 유난히 손목이나 발목을 ‘잘린’ 사람들이 많다. 더구나 그 끔찍한 짓을 행한 자들이 12~18세에 이르는 소년들이었다는 사실을 접하면 절로 모골이 송연해질 수밖에 없다. 시에라리온 반군은 마을을 약탈하면서 남자들의 손발을 잘랐는데 그 이유가 그 발로 걸어가 그 손으로 현 정부에 투표를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들은 이웃 라이베리아를 거점삼아 1991년 시에라리온 동부를 공격하여 한 달 만에 다이아몬드 광산지역인 이스턴 주를 장악했다. 다이아몬드는 이들에게 무기구입과 정보를 위한 외부지원을 얻는 수단이었지만 곧 다이아몬드 자체가 목적으로 변질되어 피의 내전에 돌입하게 된다.

91년부터 11년간 지속된 내전은 ‘살육과 광기’의 전쟁으로 기록되었는데 그중 가장 끔찍한 것이 바로 소년병문제였다. 소년병은 보통 12~17세 정도인데 반군에게 부모를 살해 당하고 끌려가거나 혹은 납치 당한 경우, 또는 정부군에 징집 당하는 것이 보통이다. 두 진영 모두 소년들에게 서로를 죽여야 할 철천지원수로 각인시키고 마약을 먹여 전쟁터로 내몰았다.

전쟁이 끝난 후 시에라리온에 남은 것은 가난과 갈등, 공포뿐. 내전종료 십 수년이 지난 지금도 혼란과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프리타운 근처 난민수용소는 집과 가족을 잃은 사람들로 넘쳐나고 전쟁으로 깊이 상처받은 사람들이 정신병원에 그득하다. 특히 소년병으로 활동했던 아이들은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떠도는 신세가 되었다.

현재 시에라리온은 내전의 상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노력중이다. 시에라리온이 전쟁의 상처를 딛고 도약할 수 있을 때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리고, 갈 길이 아직 멀긴 하겠지만 이들에게도 새로운 희망이 찾아올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마을의 구멍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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