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진의 귀농인 편지 [4]텃세
조동진의 귀농인 편지 [4]텃세
  • 경남일보
  • 승인 2018.07.09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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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이웃 맞이하고픈 작은 울타리
▲ 사물놀이패 등으로 작은 음악회를 여는 모습

몸이 아파 치료를 받으려면 먼저 진단이 정확하게 나와야 한다. 진단이 제대로 나오면 처방도 나오게 마련이다. 따라서 텃세가 생기는 원인부터 알아야 한다. 복합적인 현상이라고 두루뭉술하게 얘기하는 건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본인이 생각하는 텃세의 원인은 지역민과 귀농귀촌인 간의 문화적 충돌, 즉 공동체 문화와 개인주의 문화의 충돌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시골 마을은 집성촌의 잔재가 남아 있어 조카, 아재, 사촌 등으로 연결돼 있고 산 너머 마을은 사돈지간으로 연결되고 고을의 나머지 사람은 동창에다 친구의 형 동생 누나로 빼곡히 연결되다 보니 지·혈·학연으로 연결된 동일한 공동체 문화가 형성돼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사람의 행동은 금방 알려지게 되니 자연히 주변을 의식하게 되고 남이 아니니까 나누고 함께하는 생활이 어릴 적부터 몸에 배어 있다.

 


이에 반해 도시는 산업화에 따라 일자리를 찾아 모인 사람들이다 보니 이익집단의 특성을 나타내게 되어 합리적이고 개인적인 문화가 형성되어 있다. 더구나 귀농귀촌을 한 사람들은 그 중에서도 개인의 독립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짙은 사람들이다.

따라서 개인보다는 전체를 의식하는 지역민들과 전체보다는 나의 세계를 중시하는 두 집단 간에는 상당한 시각 차이가 존재하게 된다. 지역민들은 인사도 않고 차를 몰고 휭하니 지나가는 이방인이 이해가 안 될 것이요, 약속이나 기척도 없이 불쑥불쑥 집으로 들어오는 지역민들이 귀농귀촌인들에게는 부담스러울 것이다. 특히 유교적 문화가 남아있던 시대엔 파문에 해당하는 ‘덕석말이’라는 게 있어서 동네에서 범죄나 물의를 일으킨 사람은 몰매를 때리고 추방했다. 때문에 흘러 들어오는 사람에 대해서는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문화가 연세 드신 시골 사람들의 정서에는 앙금처럼 남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진단을 바탕으로 처방을 생각해 보자. 수산물 가공공장을 지었는데 주민들의 반대로 가동을 못해서 소송을 제기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어촌마을 사람들이 적폐 같은 텃세나 기득권을 고집스럽게 주장한다고 도시인들은 온라인 댓글로 비난을 퍼붓는다. 기자마저도 젊은 사람이다 보니 지역민의 입장을 도외시한 채 보도를 하는 경향이다. 저간의 사정을 속속들이 듣지 못해서 알 수는 없지만 내가 생각기엔 귀어인의 접근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고 본다. 공동체 문화에 접근할 때는 일부터 들이대지 말고 먼저 사람부터 사귀고 그 문화에 젖어들어야 한다. 그래서 공동체의 일원이 되고 난 후에 일을 상의하고 시작했다면 동네 사람들이 그렇게 반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마을의 일원이 되면 안되는 것도 되게 해줄 것이지만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되지 않으면 될 것도 안 되게 만드는 게 시골의 정서이다

지역민들은 도시에서 온 사람들의 개인주의 사고를 인정하고 그이들이 시골의 문화를 받아들일 수 있게 시간을 두고 천천히 접근해야 한다.

귀농귀촌인들은 어차피 내가 평생 살려고 들어온 시골이기에 이웃사촌임을 인정하고 그 공동체에 들어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과수원 등 일터에서도 이웃들과 음식을 같이 나누며 정겨운 한때를 보내는 모습.


어릴 적 내가 자랐던 고향에 가보면 사람도 풍광도 바뀌어 있다. 내가 태어난 고향은 대부분 사라졌다. 이제는 고향의 정의를 다시 설정해야 한다. 고향은 내가 태어난 곳이 아니라 내가 뿌리를 내리고 평생 살 곳이 인제부터는 고향이다. 내가 귀농귀촌한 마을의 어르신들이 나의 고향 부모님인 것이고 거기서 만난 친구는 고향친구가 되는 것이다. 제일 소중한 사람은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이다. 멀리 떨어진 사람은 소용이 없다. 급한 사고를 당했을 때 나를 도와줄 사람이 누구이겠는가. 가까이 있는 이웃에게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다. 지금 내 이웃이 최고로 소중한 사람인 것이다. 사람이 평생을 살면서 다양한 친구를 만난다. 어릴적 고향친구, 학교친구, 직장 친구 등이 있지만 나이 들어 평생을 정착하여 살고 있는 지금 이곳에는 그 친구들은 없다. 과거의 친구들은 멀리 있다. 내 얼굴 표정을 살펴주고 내가 힘들 때 하소연이라도 할 사람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의 이웃이다. 그 이웃은 평생 동안 나와 같이 할 것이고 결국에는 내가 죽음에 이르렀을 때도 내 손을 잡아줄 사람이다.

나의 저승길에 손을 잡아주는 사람, 저승길 친구인 것이다. 마지막이 중요하다. 인생을 어떻게 살았던 내 인생을 마감하는 시점에 내 손을 잡아줄 마지막 사람이 가장 소중한 친구가 아니겠는가. 귀농귀촌인은 부초같이 떠돌던 도시생활을 접고 마지막 정착지에 들어간 만큼 주변 사람들을 소중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지역민들은 신생아가 태어나지 않는 시골마을이다 보면 내 소중한 마을이 사라지지 않도록 들어오는 사람들을 반겨주어야 한다. 인구가 줄어들면 내가 사는 마을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 먼저 학교가 사라지고 마트가 사라지고 농협이 사라지고 보건소, 면사무소까지 사라질 것이다. 결국엔 마을이 폐허가 되고 잡초 무성한 폐가들이 괴괴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일본의 예를 보면 남의 일이 아닌 것이다.

텃세는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식물이나 동물은 목숨을 걸고 자기 영역을 지킨다. 종족보전이나 자기 생명을 지키기 위한 자연스런 행동이다. 하지만 텃세의 관문을 통과해서 공동체의 일원이 되면 텃세는 나를 쳐내는 방어막이 아니라 나를 보호해주는 울타리가 될 것이다. 시골사람들도 한 살이라도 젊은 사람들이 마을에 들어오는 걸 반긴다. 단지 지역 정서에 반하는 사람을 경계하는 것이다. 텃세를 극복하는 방법은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 땅을 계약하기 전 마을 이장에게 먼저 상의를 하면 이장이 중재자나 멘토가 되어 줄 것이다. 또한 집을 짓기 전엔 가까이 있는 집들에 찾아가 공사로 인한 소음이나 불편에 대해 양해를 구해야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마을의 찻길은 주민들의 기부체납으로 조성된 길이다. 마을의 관정이며 마을회관 등 마을 공동시설들은 정부보조를 일부 받았겠지만 십시일반 모금을 하고 노역을 동원하여 조성된 것들이다. 귀농귀촌인은 이미 조성된 마을에 무임승차하는 입장인 만큼 고마움을 가지고 들어가야 한다. 명절이면 마을마다 공동구역 청소를 한다. 이때는 빠지지 말고 참가하여 명절인사를 한다. 청소보다 명절인사에 방점을 두는 행사이다. 어버이날엔 마을마다 식사를 한다. 굳이 참석할 필요는 없지만 5만원 정도의 기부금은 빼먹지 않는 게 좋다.


일 년에 한번 부모님께 식사 대접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개인이 관정을 파면 1000만원은 들어간다. 이미 조성된 마을 식수를 먹으려면 부담금을 내는 게 당연하다. 소위 발전기금인 셈이다. 기존의 분들이 노력하여 조성된 시설물을 이용하는 것이니 분담금을 내는 게 당연하다. 지역민들이나 귀농귀촌인들을 사귀려면 평생교육 프로그램이나 농업기술센터의 교육에 적극 참여하는 게 좋다. 같이 수업을 받을 땐 같은 도반이 되니 텃세에서 자유로워져 쉽게 친구가 될 수 있다. 특히 취미활동에 관련된 수업이면 끈끈한 관계가 형성되어 든든한 후원자를 만날 수 있다.

현금보다 좋은 금은 지금이고 내가 만나는 사람 중에 제일 소중한 사람은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이라 했다. 나와 함께 평생을 살아갈 내 마을 사람이 나의 가장 소중한 동반자이다.

지역민과 귀농귀촌인들이 함께 잘 어우러진다면 시골도 살고 도시도 살고 모두가 행복한 나라가 되지 않겠는가.


마을 이웃들과 식사를 같이하며 즐거운 시간을 갖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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