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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포로수용소’ 를 기억하자윤수지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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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7.12  22: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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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 관광하면 떠오르는 곳 중에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올해 3월 ‘거제관광 모노레일’의 개장으로 모노레일을 타러 온 관광객들이 덤으로 포로수용소를 관람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 곳 매표소에는 포로수용소 이용객 창구와 모노레일과 함께 포로수용소를 관람하는 창구로 나누어져 있는데 60대 이상 어르신을 제외한 대부분의 관람객은 모노레일만 이용하거나 또는 관람하고 모노레일까지 이용하지만 포로수용소만 이용하는 관광객은 모노레일 설치 후 줄어든 것 같이 보였다.

거제도 포로수용소는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비가 내리던 새벽 4시, 북한 인민군은 보병사단과 1개의 탱크 여단 등 20만의 병력으로 38선 전역을 대대적으로 기습공격하며 남한은 낙동강까지 후퇴하며 시작된 전쟁의 산유물이다. 국제연합군은 맥아더 장군의 지휘 아래 그 해 9월 15일 오전 6시 한·미 해병대의 월미도 상륙을 시작으로 2시간 만에 월미도를 점령한 인천상륙작전 후 중공군의 개입으로 다시 38도 선을 중심으로 치열한 국지전이 전개됐다.

전쟁 중에 늘어난 포로를 수용하기 위해 1951년 2월 거제시 고현동 독봉산 아래에 17만 명을 수용하는 포로수용소가 들어섰다. 수천 개의 천막이 세워지면서 당시 거제시의 주민은 10만이었지만, 피난민 약 20만 명과 포로 17만 명이 들어와 시민들은 제대로 된 생활을 하기 어려웠다.

그 후, 1952년 도드 준장 피랍사건으로 인해 남북한의 대결 양상이 극명하게 옮겨진 것은 반공포로와 공산 포로로 갈라진 포로들이 도드 준장을 인질로 삼아 포로 대우 개선, 자유의사에 따른 포로 송환 방침 중지, 포로 대표위원단 인정 등을 요구하며 유엔군과 대치하면서 도드 준장의 구출로 일단락되는듯 했다. 1953년 7월 27일 휴전 협정조인 후 전투는 종료됐다. 현재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은 식품 ‘피복’ 약품 등 보급물자와 유엔군 경비부대의 보급품을 보관하던 창고 등 잔해 등이 남아있다. 경북 포항에서 온 김병학(58)씨는 “역사를 다시 되돌아보러 거제도 포로수용소를 먼저 방문했다”며 “모노레일이 유명하지만 아픈 역사를 다시 가슴에 새기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이런 역사가 다시는 생기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은 3월~10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운영되며 5월~8월 성수기 야간개장으로 저녁 8시까지, 11월에서 2월까지 동절기에는 오후 4시까지 운영되고 있다.

윤수지시민기자

※본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사진
포항에서 여행을 온 관광객들이 거제포로수용소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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