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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일포럼]중원로터리 옆에 숨어 있는 유신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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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7.15  20:3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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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이 확정된 지 불과 4개월 지난 1973년 3월에 ‘10월 유신’을 기념하기 위한 탑이 관문교차로(육대입구에 있는 삼거리)에 높이 9m로 세워졌다. 탑의 높이 때문에 모두들 우러러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급하게 유신탑을 세운 것은 숨가쁘게 진행되었던 당시의 정치일정을 위해서였다. 폭력적인 국민투표에 의해 확정된 유신헌법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연이어 진행되는 대의원 선거,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선거의 와중에서 더욱 유신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해 유신탑을 시내 한복판에 세웠던 것이다.

유신탑을 세운지 3년이 지난 뒤에 교통체증을 야기한다는 이유로 철거하여 1976년 8월, 중원로터리 옆에 있는 시립도서관 정원에 옮겨 놓았다. 크기가 처음의 절반도 되지 않는 높이 3.5m, 넓이 2m로 축소하였다. 박정희 대통령이 궁정동 안가에서 저격당하기 3년 전이었다. 이제는 중원로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눈에도 잘 띄지 않는다. ‘十月維新’이라는 글자는 나무에 가려져 아예 보이지 않고 유신헌법책을 들고 있는 4명에게는 온통 검은 색 페인트를 칠해놓았다. 얼굴도 검고, 옷도 검고, 손발도 검다. 지금은 시립도서관이 이전하여 장난감도서관과 진해문화원 입구가 되었다.

이 기념탑은 5·18 광주항쟁이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난 뒤인 1980년 6월, 전두환 정권에 의해 박정희의 군사독재가 이어지는데 대해 의분을 참지 못한 20살의 열혈청년 박영주에 의해 인분(人糞)을 상징하는 노란색 페인트 1통을 덮어쓰는 수모를 당했다. 벌써 40여년 전의 일이다.

박영주는 진해에 살고 있는 친구를 통해서 뒤늦게 유신탑이 있는 걸 알게 되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 박영주는 처음에는 ‘유신탑’ 동판을 떼 낼려는 계획을 하고 사전답사를 했다. 실제 탑을 확인해보니 동판을 떼 내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그래서 똥물을 뒤집어 쓴 것처럼 페인트를 칠하기로 마음먹었다. 박영주는 마산 부림시장에서 흰색 유성페인트 한통을 구입해서 적당량의 노란색을 섞어 똥색으로 만들었다. 비닐봉지에 사서 가방에 넣었다. 혼자서 씩씩하게 버스를 타고 창원까지 가서 다시 기차로 바꾸어 탔다.

진해역에서 내려서 밤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 당시에는 중원로터리 옆에 진해경찰서가 있었다. 입구에는 전경이 서 있었다. 유신탑이 바로 보이는 위치였다. 로터리를 회전하는 차들의 헤드라이트가 수시로 유신탑을 비추고 있어서 전투경찰의 눈을 피하는 게 쉽지 않았다. 밤 11시경이었다. 지문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 장갑을 끼고 페인트 통을 들었다. 탑 뒤편에 숨어서 기회를 엿보다가 몇 차례 페인트를 탑에 쏟아 부었다. 건너편 경찰서 입구의 전경이 뭔가 눈치를 채고 뛰어왔다. 박영주는 곧바로 탑산으로 가서 365계단을 넘었다. 만약 붙잡히면 최소한 삼청교육대로 끌려갈 판이었다.

진해 향토사학자 황정덕에 의하면 유신탑은 유신헌법을 상징하는 책, 군인을 상징하는 수병, 시민을 상징하는 신사복, 공무원을 상징하는 재건복, 산업역군을 상징하는 노동복 차림의 군상이라고 한다. 60여년의 역사를 가진 황해당인판사 정기원 사장에 의하면 조형물을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오경호 선생이 만들었다고 한다. 1987년판 진해시사에는 유신탑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데 1991년판에는 아무런 내용이 없다. 1999년에 마산희망연대는 이 탑의 철거 혹은 부끄러운 역사를 설명하는 안내판 설치를 진해시에 요구하였다.

이제 유신탑은 낡은 유물이다. 비극의 현대사를 보여주는 희극이기도 하다. 이를 통하여 생생하게 독재정권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교육자료이다. 탑 앞에 잘 정리된 설명판을 세우는 것이 필요한 일이다.

 
전점석 (창원 YMCA 명예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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