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 경일춘추
신사도(紳士道)와 선비 정신
경남일보  |  gnnews@gnnews.co.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8.07.16  20:15:43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임영주

신사와 선비는 서양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교양인으로 그 사회의 사상과 정신을 대표하는 사람이다. 신사는 양복을 차려 입은 점잖은 사람을 일컫는다. 신사의 나라 영국이 안정된 국가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신사가 중심세력으로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신사의 조상은 중세의 기사(騎士)로 봉건 영주에게는 절대 복종했지만 평민에게는 불편한 존재였다. 기사들의 횡포가 심해 사회가 불안하자 로마 교황청에서 도덕적 목표를 세웠다. 기사는 약자를 보호하고 명예를 중시하는 용감한 병사가 될 것을 서약케하고 기사도가 확립 된 것이다. 한때 유럽 전역으로 전파되었던 기사도는 중세사회의 해체와 함께 신사도로 거듭나게됐다.

선비의 풍모도 도포를 입고 관을 쓴 모습을 보면 근엄한 모습이 주변을 압도한다. 선비는 학문을 닦으면서 재물을 탐하지 않고 의리와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다. 우리에게 선비는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성리학 중심의 사상체계를 신봉하면서 신분차별, 예송논쟁, 당쟁 등으로 많은 문제를 야기한 사실은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선비들은 학문을 숭상하면서도 임진왜란이나 일제강점기 국가의 위기에는 의병활동, 독립운동을 하며 분연히 일어나 붓 대신 칼을 잡았다.

양복을 입은 신사와 의관을 갖춘 선비 모습을 보면 복식이 다를 뿐 외형적으로는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정신세계를 비교해보면 비슷한 부분도 있지만 차이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현재의 신사도는 품행과 예의가 바르며 점잖은 사람의 도리를 말하지만, 전쟁이 없을 때 기사들이 평민에게 약탈을 자행했던 사실은 자랑할 일이 못되는 것이다. 선비정신도 끊임없이 학문과 덕성을 키우며 대의와 의리를 위해 목숨까지 버리는 정신을 말하지만, 좁은 시야를 넓히지 못하고 기술과 과학을 거부하면서 신문물 도입을 막은 일은 반성해야할 문제이다.

신사도와 선비정신은 우국충정으로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면서 명예를 목숨처럼 여겼다. 기사는 영주에게 충성만이 강조됐지만 선비는 국왕의 잘못을 상소하면서 올곧은 자세로 끊임없이 신권을 부르짖었던 것이다.

우리나라는 급속한 경제 발전과 함께 민주화 성장속도 또한 빠르게 진행됐다. 이러한 배경에는 오직 정의를 위하여 항거한 선비정신을 가진 지식인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사도가 시대에 따라 신사도로 변하여 정착하듯 선비 정신도 새로운 시대에 걸맞게 재정립이 필요한 시기이다.


임영주(마산문화원장·(사)고운최치원기념사업회장)


경남일보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