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 뽑기
잡초 뽑기
  • 경남일보
  • 승인 2018.07.18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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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탁(창원예총회장)
김시탁

잡초를 뽑으려면 잡초가 흙을 느슨하게 쥐고 있을 때가 좋다. 단숨에 뽑으면 경직된 흙이 뭉텅이로 딸려오므로 미리 잡초를 잡고 사방으로 살살 흔들어 긴장이 풀린 상태에서 아랫도리와 흙을 분리시켜야 한다. 비 그치고 난 뒤 하루 이틀 지나 흙 속이 완전히 마르지 않은 조석이 잡초 뽑기에 가장 좋다. 잡초를 뽑은 뒤 움푹 파인 땅은 바로 메워야 한다. 이빨 뺀 잇몸에서 자꾸 피가 나며 상처가 도지듯 땅의 상처도 빨리 메워주지 않으면 빗물에 쓸려 더 커진다. 잡초는 생명력이 강하다. 곡식의 근처에 빌붙어 살지만 언제 뽑혀나갈지 제 운명을 스스로 잘 알기에 종족 보존의 본능 또한 강하다. 먼지에도 씨를 묻고 싹을 틔운다. 애초부터 기구한 운명으로 정해져 태어난 것도 아닌데 곡식의 영양분을 공유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뿌리째 뽑혀진다. 비명을 지르며 아무리 흙을 잡고 버티어도 소용없다. 집단으로 항거하여 무리를 이루면 단번에 제초제로 전멸된다. 며칠 계속된 장마로 잡초를 뽑지 못했다. 무성한 바랭이는 고구마 밭고랑을 채우고도 모자라 참깨 밭까지 침범했다. 상추는 개쑥갓이 쌈을 쌌고 도라지꽃은 엉겅퀴가 휘감았다. 맨땅에 엉덩이를 붙인 애호박 옆구리를 간질이는 강아지풀사이로 달개비가 발꿈치를 들어올렸다. 쑥, 씀바귀, 애기수염, 미나리아재비, 닭의장풀, 꿩의 밥, 망초, 쇠비듬까지 기를 쓰고 올라와 곡식의 영역을 장악했다. 규모로 보면 잡초를 재배하기위해 곡식을 제거해야할 판이다. 씨 뿌리지 않아도 절로 자라는 풀들이지만 싸잡아 잡초라고 부르기엔 아까운 이름들이다. 양식이 못된다고 마구 뽑혀져야할 빈약한 명분에 항거하듯 때 맞춰 꽃도 피고 향기도 뿜고 스스로 날아가 어떤 환경에서도 자리를 잡고 씩씩하게 자라는 생명들이다. 이광석 시인이 그 근성을 알고 잡초가 낫을 두려워하랴 하셨다. 그 기개로 고개를 쳐들고 저리도 당당하고 빳빳하게 일어서는 꼿꼿한 의지를 뽑는 일에 사람들은 일거의 망설임이나 쥐새끼 눈곱만큼의 미안함도 없다. 콩, 팥, 상추가 아니고 잡초이기 때문이다. 일개의 양식이 되지 못하는 잡것들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비 내린 뒤 흙이 느슨할 때 멱살을 잡고 단번에 뿌리째 뽑아 버리면 속까지 후련해지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 아무리 자수성가한 놈도 사람의 손아귀를 벗어 날수는 없다. 젖은 흙이 뚝뚝 눈물처럼 떨어져도 눈 한 번 깜짝 안한다. 잡초의 입장에서 보면 낫보다 고라니의 이빨보다 더 무서운 게 사람이다. 그 잡초가 사람을 치유하는 약재로도 쓰인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김시탁(창원예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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