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 아침논단
[아침논단]태권동자 마루치, 그리고 정민섭
경남일보  |  gnnews@gnnews.co.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8.07.22  17:38:36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최임식
 
“달려라 마루치, 날아라 아라치~~~정의의 주먹에 파란 해골 13호 납작코가 되었네.” 어린 시절 늦은 오후 쇠죽을 끓이며 가마솥 부뚜막을 지키던 라디오에서 가슴 졸이며 듣던 어린이 연속극 ‘태권동자 마루치’ 주제가다. 악당 두목 파란 해골은 그 부하 팔라팔라 사령관과 함께 지구를 지배하려는 야욕으로 악행을 저지르나 마루치와 아라치는 ‘말 잘하는 개’ 점박이의 도움과 뛰어난 태권도 실력으로 결국 이들을 물리친다. 이 드라마는 1974년부터 문화방송 전파를 타서 전국 어린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꼬마들은 학교에서 배운 하모니카와 피리로 주제가를 연주하며 골목을 누볐다. 1977년에는 임정규 감독의 영화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가 개봉되었다. 어린이용으로 씩씩하게 작곡된 이 음악은 만화영화 음악의 거장 정민섭(1940~1987)의 작품이다.

‘미래소년 코난’, ‘개구리 왕눈이’, ‘빨간머리 앤’, ‘그레이트 마징가’, ‘우주소년 아톰’, ‘엄마찾아 삼만리’, ‘요술공주 밍키’, ‘금발의 제니’, ‘전자인간 337’ 등 주옥같은 만화영화의 음악들도 모두 그의 손에서 빚어졌다. 그의 딸 정여진은 올해 46세로서 어릴 때 귀여운 목소리로 ‘요술공주 밍키’ 등 아버지 작품을 불렀고, 포카리스웨트 CM송도 불렀다. 여진의 남동생 재윤은 싱어송라이터이고 TULA라는 이름으로 SBS판 드래곤볼의 오프닝과 엔딩곡을 불렀다. 특히 애니송을 부를 때는 뜨거운 보컬로 압도적인 가창력을 보여 한국 애니송계의 황태자라 불린다. 정민섭의 부인은 미녀가수 양미란(1945~1980)으로서 이들은 잉꼬부부로 소문났다. 그는 남편의 도움으로 가수로 데뷔하여 ‘당신의 뜻이라면’, ‘범띠 가시네’, ‘흑점’, ‘휘파람’ 등을 남겼고 파월장병 위문공연을 많이 다녔으나 병마를 이기지 못해 너무 이른 나이에 골수암으로 남편보다 먼저 요절했다.

정민섭은 고려 인종 때 무신 쿠데타의 주인공 정중부의 후손인 해주정씨다. 임진왜란 북관 의병장 농포(農圃) 정문부(鄭文孚)도 해주정씨인데 그는 억울하게 옥사하기 전 “자손들은 벼슬할 생각말고 경상도 진주에 내려가 은거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자손들은 그의 유언에 따라 상복을 입은 채 진주에 내려와 세거(世居)하게 되었다. 이반성면 가호서원(佳湖書院)은 농포를 모시기 위해 1970년 설립되었다.

정민섭의 조부 정태석은 진주여고, 진주고 설립 당시 크게 기여하고 많은 선행으로 적선비가 몇 개 세워졌다. 진주시 귀곡동에서 태어난 정민섭은 진주사범학교 2학년 때 ‘관악5중주’를 작곡하여 문교부 주최 경연대회에서 특별상을 받았다. 제주 오현학교에서 악대부를 지도하고 있을 때 4.19를 상징하는 ‘혁명행진곡’를 발표하였으나 ‘혁명’이라는 제목으로 인해 큰 곤욕을 치렀다. 경희대 음대에 진학하여 작곡가 김희조 교수의 지도를 받고 그의 추천으로 문화방송에서 음악 일을 하면서 대중음악의 길로 접어들었다. 대학졸업 직후 작곡가로서의 능력을 발휘해 1966년 ‘뜨거워서 싫어요’가 가요대상을 수상했다. 그는 많은 만화영화음악과 함께 약 900여곡의 대중음악과 400여편의 영화음악을 남겼다. 그가 작사·작곡하여 박경애가 부른 ‘곡예사의 첫사랑’은 1978년 문화방송 국제가요제 금상을 받았다. 그는 음악부문 대종상도 3번 받았다.

폐암으로 짧은 생을 마감한 정민섭은 대중음악에 그야말로 주옥같은 명곡을 남겼다. ‘억울하면 출세하라’, ‘아니 벌써’, ‘목석같은 사나이’, ‘육군 김일병’, ‘여자가 더 좋아’, ‘무교동 이야기’, ‘고향 아줌마’, ‘이정표 없는 거리’, ‘대머리 총각’, ‘생각이 나면’, ‘여고 졸업반’ 등은 지금도 중년들의 노래방 애창곡이다. 김상진, 김상희, 김인순, 정종숙 등이 그의 작품으로 한 시대를 풍미(風靡)한 것이다.

정민섭은 왜색가요가 휩쓸던 60~70년대 가요계에 독자적인 리듬에 한국적 정서와 애환을 담아 대중에게 깊이 파고들었다. 진주 출신 선배 이봉조의 재즈 스타일 음악과 같이 일본식 트로트를 거부하고 한국식 발라드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민섭을 비롯한 이재호, 손목인, 이봉조는 음악도시 진주를 빛낸 대중음악 작곡가 사대천왕이라 할 수 있다. 이 분들의 음악 한 곡 한곡은 개발연대 한국인들의 애환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한국 대중음악의 고향 진주, 매년 10월초 KBS 가요무대 정기 녹화장소가 되었다.



최임식(LH지역발전협력단장)

경남일보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