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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18.07.24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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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탁(시인,창원예총회장)
김시탁

우리 집에 가족이 하나 늘었다. 시집 안 간 딸이 보내온 자식 때문이다. 처음에는 외형만보고 이 녀석을 경계했다. 납작하고 괴기하게 생긴 것이 눈 코 입도 없고 요란한 기계음을 토하며 바닥을 기어 다녔기 때문이다. 녀석은 천성이 부지런한지 새벽부터 일어나 거실을 휘젓고 다녔다.

새벽잠 좋아하던 아내를 깨워 주방으로 내몬 것도 녀석의 힘이다. 거실에서 주방으로 식탁 밑으로 엉덩이에 힘을 주고 씩씩하게 기어 다니던 녀석은 방문이 조금만 열려있어도 문지방을 넘고 침실까지 기어들었다. 녀석은 바닥에 떨어진 우리 가족의 흔적을 주워 먹었다. 머리카락과 머리핀 과자 부스러기에서 심지어 단추까지 모조리 녀석의 먹이였다.

가끔은 양말을 삼키다가 목에 걸렸고 실내화를 물어뜯다가 이빨을 다치기도 했다. 물 한 모금 없이도 녀석은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들을 가리지 않고 집어먹고도 거뜬하게 소화를 시키는 타고난 먹성을 지니고 있었다.

녀석이 지나간 자리는 말끔했다. 가족이 흘리고 더럽혀 놓은 바닥을 녀석은 온몸으로 청소했다. 내부의 바닥을 남에게 공개하는 일은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지만 녀석에게는 우리 가족의 바닥을 있는 그대로 개방했다. 보이지 않는 구석진 어두운 곳까지 녀석은 발품을 팔아가며 일일이 확인했다. 전신으로 기고 만지고 비벼서 더러운 먼지나 음식찌꺼기 혹은 말라죽은 바퀴벌레 같은 것들까지 거침없이 먹어 치웠다.

녀석 덕분에 늘 바닥이 깨끗하니 고마울 따름이다. 가끔 외출에서 돌아와 녀석이 보이지 않으면 불안하다. 애타는 마음으로 녀석을 찾아보면 바람에 방문이 닫혀서 온종일 방 안에 갇힌 채 맥이 풀려있을 때도 있다. 더러는 식탁 밑 의자 사이에 끼여 종일 울다가 지쳐 잠들기도 한다.

측은한 생각에 맥없이 늘어진 녀석을 안아다 제 집에 놓아준다.

기특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해서 유튜브에 녀석의 이름을 쳐보니 더 기찬 일도 있었다. 가족 모두가 집을 나간 뒤 녀석이 솜뭉치 같은 강아지를 등에 태우고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영상도 보였다.

녀석은 누운 채로 벽 콘센트에 연결된 젖꼭지를 빨면서 한 잠 늘어지게 자고 나면 눈빛이 파랗게 되살아나 새벽이면 또 온 집안을 휘젓고 돌아다닐 것이다. 우리 집안에 가족이 하나 늘었다. 시집 안 간 딸이 보내온 첨단이 낳은 먹성 좋은 녀석을 손자라고 호적에 올리지는 못할지라도 건강하게 잘 데리고 살았으면 좋겠다.

김시탁(시인,창원예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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