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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산 플러스 <200>지리산 노고단
최창민  |  cchangmin@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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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7.26  22:4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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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궁전’이라는 신비한 이름을 가진 달궁(達宮)은 지리산 노고단 기슭 작은 마을로 오래된 과거 삼한 중 하나인 마한의 피란도성이 있던 곳이다. 마한 효왕(孝王)이 진한의 공격을 피해 남원시 산내면 덕동리 지리산 심원으로 들어와 도성을 쌓고 왕국을 건설했다. 그 궁이 있었던 자리가 달궁터다. 이 왕은 도망을 온 처지라 지리산이라는 거대한 천연 철옹성에도 불구하고 불안에 떨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정씨 성을 가진 장군과 황씨 성의 장군을 전략적 요충지에 배치했는데 이것이 훗날 정령치와 황령재가 됐다. 또 다른 능선인 팔랑재엔 8명의 장수를 배치했고 성삼재(姓三峙)에는 성이 다른 3명의 장수를 두어 외세침략에 대응했다. 3인의 장수를 둔 것은 서로 견제토록 해 달궁 왕조의 안위를 도모한 전략이다.

천년이 두세번 흐른 오늘날까지도 달궁과 정령치, 성삼재, 노고단은 하나의 고리처럼 연결돼 있다.

노고단(老姑壇·1507m)은 전남 구례군 산동면과 토지면 경계에 있는 지리산 영봉(靈峰). 부족을 수호하려던 장수들의 피맺힌 전장이었으며 백성들의 애끓는 소망이 모인 기원처이자 피난처이다. 때로는 뼈아픈 동족의 비극이 발생한 곳이기도 한 그야말로 우리민족 희로애락이 함께했다. 근세에 와서는 이러한 아픔들을 다 물리고 한국알프스로 불리며 고산 휴양지의 메카, 힐링처로 각광받고 있다. 특히 성삼재∼노고단코스는 일반인들도 쉽게 접근이 가능한 꿈의 길이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사계절 특유의 심미적인 풍광을 발산하며 세상사람들을 불러들인다.

 
   
 

무더위가 절정이던 지난 20일 ‘경남일보 명산플러스 팀’은 200회 특집산행으로 성삼재에서 출발해 지리산 영봉, 노고단에 올랐다. 2008년 무자(戊子)년 새해 1월 1일 아침 천왕봉에서 일출을 맞이하면서 1회차 산행을 시작한 지 10년째 되는 여름날의 산책이다. 이날 트레킹에는 벽안(碧眼)의 영국신사와 부인을 비롯 호주에서 온 석학 부부, 본보 회장, 직원 40여명이 동행해 의미를 더했다.

 
   
 


달궁의 신비를 품은 노고단 산행은 성삼재에서 출발한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출발한 백두대간은 반야봉, 노고단 주능선에서 고도를 낮춰 무넹기→성삼재휴게소를 기준으로 도로를 따라가다 산길에 붙은 뒤 만복대 정령치로 북진, 지리산과 이별한다.

지금은 버스와 승용차 등 250여대가 동시에 주차할 수 있는 대형 주차장을 비롯해 휴게소, 국립공원 탐방지원센터가 위치하고 있다.

성삼재·정령치도로는 일제 때 일본인들이 지리산의 풍부한 목재를 빼가려고 개설했다. 이후 1985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차관을 들여와 도로를 넓히고 포장했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지리산을 편하게 찾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일제의 목재수탈용 도로가 관광도로가 된 것은 아이러니다.

 

   
 


성삼재 탐방지원센터를 넘어서면 초록 잎으로 치장한 나무들이 거대한 터널을 이룬다. 산 아래 35도를 웃도는 폭염에도 고산지인 까닭에 체감온도가 10도 이상 낮아 청량감을 느낄 수 있다. 그늘 아래 흐르는 개울에 들어가면 가을날 우물가처럼 찬 기운이 돈다. 실제 중간지점에 올랐을 때 오른쪽 산 쪽에서 실개울을 만날 수 있는데 온몸이 시원해진다. 바위를 들추면 꼬물거리는 물벌레와 가재를 볼수도 있다. 이러한 숲터널은 첫 갈림길이 있는 나무계단 앞까지 30여분동안 이어진다.

첫 갈림길에선 오른쪽 코재로 우회하는 편한 길과 바로 올라가는 계단 길로 나눠졌다가 무넹기에서 합류한다. 무넹기는 ‘물을 넘긴다’는 뜻. 1929년 전남 구례군 마산면에 큰 저수지를 준공했는데 물 유입량이 적어 가뭄이 들었다. 주민들은 이듬해인 1930년 해발 1300m지점에 올라 전북 남원 달궁 쪽으로 내려가는 물줄기 일부를 전남 구례 화엄사계곡으로 돌리는 도수로를 개설했다. 이 물이 풍농수가 되고 있다.

물이 떨어지는 곳 화엄사 방향으로 열린 전망은 맑은 날 아스라이 광주 무등산이 보인다. 무넹기∼노고단대피소 구간 양옆 수목의 끝 하늘에는 여름 열매 다래와 머루가 자라고 있다. 계곡 언저리엔 노고단 특산종 원추리가 자태를 뽐냈다.

   
 

출발 50여분만에 노고단 대피소에 닿는다. 건물 앞에 이 산의 상징인 마고할미 형상이 세워져 있다. 대피소 주변에 눈여겨볼만한 것은 1925년 미국 교회의 선교사들이 지은 주택과 수양관. 이들은 풍토병을 피하기 위해 주택 등 50동을 지었다. 1948년 여순 반란때 빨치산이 입성, 그들의 근거지가 되는 것을 우려한 국군이 건물을 불태웠다. 지금은 한 동이 겨우 남아 있지만 이도 붕괴위험 때문에 접근할 수 없다. 1947년 2월 제1회 동계스키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한다.

대피소에서 숨을 잠시 고른 뒤 돌계단을 오르면 노고단 고개 갈림길, 직진하면 돼지령 임걸령 노루목 반야봉 삼도봉 지리산 주능선길이다. 오른쪽으로 틀어 노고단까지는 15분이면 올라갈수 있다. 탐방예약제를 시행중이다.
   
산상화원

노고단은 최근까지 남아 있던 군 시설이 철수하고 훼손지는 복원됐다. 과거의 상처 때문에 큰 나무가 별로 없고 관목 초목류가 대부분이다. 아고산지대의 독특한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꽃들의 고향, 산상화원이다. 근심 걱정을 없애줘서 망우초라고 불리는 황금빛 원추리, 진분홍빛꽃이 매혹적인 한국특산종 지리터리풀꽃, 오렌지 빛이 아름다운 동자꽃, 신비한 보라색이 일품인 비비추가 강렬한 색 대비를 보여준다. 이 외 괭이눈, 처녀치마, 은방울꽃, 둥근 이질풀 등 야생화가 때맞춰 차례대로 핀다.

중간쯤 오르면 우리나라 특산종인 구상나무 한그루가 외롭게 자라고 있다. 수령 100년이 채 안됐는데 주변 환경 때문에 키도 작고 몸뚱이도 작다. 미국으로 반출된 뒤 크리스마스트리로 많이 쓰인다.

드디어 노고단이다. 기이한 모양의 정상석이 눈길을 끈다. 그 뒤로 신의 고향을 대변하는 듯 원뿔형의 거대한 기원탑이 서 있다. 가족의 평안 마을의 안녕, 나라의 평화 등 수많은 사람들의 소망과 염원들이 모인 곳이다. 지치고 상처받은 이들의 고뇌와 번민을 덜어 내주고 아픈 상처를 어루만져 자유로운 영혼을 꿈꾸게 해준다.

천왕봉 반야봉과 함께 지리산 3대봉의 하나다. 단(壇)이라고 한 것은 과거 산신제를 올렸기 때문. 우리말로 ‘할미단’이라는 뜻을 지녔다. 할미는 국모신 선도성모(仙桃聖母)를 일컫는다. 신라 시조 박혁거세 어머니로 지리산 산신으로 받들고 나라의 수호신으로서 모셔 매년 제사를 올렸다고 전해진다. 할미단의 한자표기가 노고단이다.

가까운 곳에 제 2봉 반야봉이 특유의 하트모양을 반쯤 드러내었고 멀리 천왕봉은 신비함을 감추기라도 하는 듯 구름 속에 갇혀 있었다. 동행인과 취재팀은 노고단 정상에서 현수막을 펼치고 간단한 기념촬영을 했다. 이어 기원탑 앞에서 100년 신문 경남일보의 발전을 기원하는 세리머니를 펼쳤다. 수고하고 고생한 동행자들의 이마에 굵은 땀방울이 살짝 보였다. 휴식시간, 꽃향기가 나는 그늘 아래 삼삼오오 모여 앉아 나누는 얘기 속에 웃음꽃이 활짝 피어났다.

최창민기자 cchangmin@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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