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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75> 함양 문정리박종현(시인·경남과기대 청담사상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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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7.30  22:3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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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바위 쪽에서 바라본 문상마을 풍경.

◇선현들의 은거지, 엄천강변 문정리
올곧은 선비들은 지리산 유람을 성지순례처럼 귀히 여겼다. 함양 수동에 있는 청계서원에 잠깐 머물며 강학을 했던 김일손이 엄천강변을 유람하면서 가히 사람이 살 만한 이상향이라 경탄한 가거동(可居洞)이 곧 함양군 휴천면 문정리다. 고려말, 백련마을과 문정마을에서 이조년의 맏형인 이백년과 넷째 형인 이억년이 은거생활을 했다. 선현들의 삶과 그 세계관을 만나기 위해 엄천강 기슭의 백련마을과 문정마을에 남아 있는 유적지와 용유담 계곡을 탐방했다.

먼저 백련마을 앞 물레방아공원부터 찾았다. 함양의 랜드마크가 된 물레방아는 더위를 먹었는지 한여름 땡볕만 가득 안은 채 꼼짝도 않고 있었다. 물레방아공원 모서리엔 이조년 선생이 쓴 시조, ‘다정가(多情歌)’가 자연석에 새겨져 있다. 균형 잡힌 시조비가 꼿꼿한 선비의 모습으로 외롭게 서 있었다.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제
일지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이조년의 시조 ‘다정가’ 전문)


 

   
백련리 마을 앞에 세워놓은 이조년 선생의 시조비.


시조의 내용과 시조비의 외로운 신세가 서로 닿아있는 듯했다. 한참동안 시조를 읊조리며 서 있으니까, 자규(소쩍새) 소리는 들리지 않고 산기슭에서 뻐꾸기들이 신명에 찬 소리로 필자를 반겨 주었다. 경쾌한 뻐꾸기 소리가 무더위를 식혀 주는 듯했다. 뻐꾸기 소리가 들려오는 산기슭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우뚝 솟은 법화산의 산세가 예사롭지 않다. 백련마을 입구에 연화대라고 써 놓은 큰 바위가 하나 있었다. 백련마을이 세속에 오염되지 않은 청정무구의 공간임을 알려주는 연화대를 지나자 가파른 골짜기에 옹기종기 집들이 모여있는 백련마을이 보였다. 산세는 빼어났지만 삶은 무척 팍팍했을 것 같다. 이런 오지를 이백년(백련마을)과 이억년(문정마을)이 와서 살았단 말인가? 세속에서 멀리 떨어진 선비들의 은거지, 백련마을과 문정마을이 어쩌면 선비들이 머물고자 했던 이상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의좋은 형제가 꿈꾼 지상낙원

개성유수 이억년이 벼슬을 버리고 함양으로 떠날 때 그의 동생 이조년이 한강나루 건너까지 형을 배웅하기 위해 함께 길을 걸어가다 이조년이 금덩이 두 개를 주웠다. 형제가 하나씩 나누었는데 배가 강 중간쯤 이르렀을 무렵, 동생 이조년이 금덩이를 강물에 던져버렸다. 형이 던진 까닭을 묻자, 동생이 말하기를 평소 형님을 공경해 왔는데 금덩이를 나누어 가진 순간부터 갑자기 형님이 안 계셨더라면 금덩이를 모두 내가 차지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삿된 마음이 생겨 강물에 던져버렸다고 하니, 형인 이억년 역시 나 또한 그런 감정이 일었다며 금덩이를 강물에 던졌다고 한다. 형제간의 우애에 금이 가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 고매한 인품을 지닌 두 사람이다. 후세 사람들이 형제가 금덩이를 던진 여울을 투금탄(投金灘)이라고 불렀는데 지금의 한강 방화대교 근처다.

 

   
이억년 선생의 묘소 전경.
   
문상 마을 뒷산에 있는 망바위.


이조년에겐 다섯 형제가 있었다. 백년, 천년, 만년, 억년, 그리고 막내인 조년이다. 고려 충렬왕 때, 이인임 등의 권신들이 조정을 문란케 하고 백성들의 삶을 도탄에 빠트리자 개성유수(지금의 서울특별시장)였던 이억년은 벼슬을 버리고, 이곳 엄천강변으로 내려와 형인 이백년은 백련마을, 아우인 이억년은 문정마을에서 은거생활을 했다. 백련마을은 원래 이백년의 이름을 따서 백년마을이었지만 후대에 와서 백련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백련마을을 둘러보고 이억년 선생의 묘소와 억년대 등이 있는 문정리로 내려왔다. 문정리는 문하, 문상, 도정마을로 이루어져 있는데, 폐교가 된 문정초등학교가 있는 문하마을에 와서 마을 이장을 했던 김영준 할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묘소부터 찾았다. 문하마을 동쪽 다랭이논에 다다르자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이억년의 묘소가 있었다. 묘소 왼쪽 귀퉁이엔 성산이씨 후손들이 1925년에 처음 세웠던 낡은 비석과 망주석이 있고, 묘소에는 최근 문중에서 묘소를 새롭게 조성하면서 비석과 석물을 다시 세워놓았다. 이억년 묘소에서 내려와 억년대가 있는 문상마을로 올라갔다. 문하에서 문상까지는 한참이나 올라가야했다. 문상마을 이장 강인규 씨께 여쭤보니 억년대는 도정마을 쪽에 있고, 문상마을 뒷산에는 망바위라 불리는 돌이 있다고 했다. 고사리밭과 길도 없는 풀숲을 헤치고 가파른 산비탈을 올라가자 큰 바위 하나가 위엄있는 자세로 필자를 반겨 주었다. 망바위 쪽에선 숲이 시야를 가려 아래 세상이 잘 보이질 않았고, 망바위 조금 아래쪽 고사리밭에선 마을과 엄천강이 한눈에 들어왔다. 옛 선비들이 이곳에서 세상을 굽어보며 호연지기를 키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북이 한 마리가 노니는 용유담.


◇무릉도원이 된 은거지

망바위에서 내려와 이억년 선생이 후학들을 가르쳤던 도정정사와 억년대를 찾기 위해 도정마을로 향했다. 표지석이나 안내문이 하나 없는 상황인데다 문상마을 이장이 일러준 곳에는 풀숲이 우거져 한 발자국도 옮길 수가 없었다. 억년대와 도정정사 찾기를 포기하고 도정마을과 법화사를 둘러보았다. 천상의 세계가 바로 이곳인가 할 정도로 내려다보는 세상은 절경이었다. 함양군에서 유적지 안내판이라도 세워두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을 안고 용유담으로 향했다. 계곡 가운데 돌거북 한 마리가 등에 태울 신선을 기다리는 듯 산을 향해 머리를 치켜들고 있었다. 맑고 깨끗한 용유담에 잠깐 속된 마음을 씻고 다시 엄천강을 따라 내려오니 길옆에 선 복숭아나무들이 뙤약볕 아래 열매를 키우고 있었다. 이른 봄 복사꽃들이 온통 골짜기에 꽃잔치를 벌여놓으면 여기가 바로 옛 선현들이 꿈꾸어온 무릉도원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러운 세상을 피해 숨어들어온 은거지가 지금은 무릉도원으로 바뀌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엄천강 흐르는 물빛에 필자의 마음을 헹구며 내려왔다.

박종현(시인·경남과기대 청담사상연구소 연구원)

이조년 선생 시비 옆에 있는 물레방아
이조년 선생 시비 옆에 있는 물레방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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