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 호화, 거품 빼는 ‘작은 결혼식’돼야
[경일시론] 호화, 거품 빼는 ‘작은 결혼식’돼야
  • 경남일보
  • 승인 2018.08.01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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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기 (논설고문)
과다한 혼수·예물·예단·억대식사비용 등 호화결혼식의 혼인문화는 분명히 문제가 크다. ‘작은 결혼식’은 말 그대로 가까운 친인척 등 적은 하객만을 초청, 소박하게 치르는 것이다. 서로 30여년 간 다른 환경에서 자란 남녀가 평생의 반려자가 되겠노라고 약속하는 일생일대의 신성한 의례가 바로 결혼식이다. 뜻깊은 결혼의식이 우리에게는 허례로 찌든 사회 병폐가 된 것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오죽했으면 ‘결혼으로 깨가 쏟아지는 게 아닌 빚이 쏟아진다’는 말도 한다. 결혼식은 많은 사람에게 축복이 아니라 고통이 된 지 오래다. 간소한 결혼식을 원하면서도 남의 시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호화 결혼식을 치르는 경우도 있다. 잘못된 결혼식 관행을 누군가 끊어주길 바라고 있다. 고위 공직자, 재벌, 정치인들이 ‘작은 결혼식’에 앞장 설 때 지금 같은 많은 비용이 드는 호화 결혼식의 고리를 끊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간 ‘힘 있는 권세가의 결혼식은 축의금 명목으로 뇌물을 상납 받는 행사’라는 오명(汚名)을 씻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깨 쏟아지는 게 아닌 빚 쏟아져

결혼식이 물질만능주의와 자기 과시의 마당으로 변질된 것에 너나없이 개탄한다. 호화 결혼식에 지출하는 비용이 예비부부 한쌍당 많을 때는 1억원이 넘는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한국소비자보호원이 결혼식을 치른 결혼당사자 및 혼주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주택 마련 비용을 빼고 결혼비용으로만 1인당 평균 5000만원을 지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호화결혼식에 문제가 있지만 자성론 보다 체면치레와 물질만능의 사회풍조를 걷어내기에는 아직 역부족인 것 같다. 고비용의 결혼문화를 청산하려면 국민의식부터 바꿔야 한다. 혼사 비용이 겁나서 결혼 자체를 엄두도 내지 못한다는 청년들도 부지기수라니 안타까운 일이다. 결혼은 남녀가 사랑으로 만나 험한 인생길을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동행하겠노라고 약속하는 신성한 의식이다. 언제부턴가 물질만능 풍조가 확산되면서 결혼식이 부를 과시하고 지위를 뽐내는 ‘경연장’으로 변질돼 버렸다. 혼수 때문에 결혼이 깨지는 사례도 있다.

하객 한 사람에 얼마짜리 호텔 뷔페를 하느냐에 자존심을 거는 호화 결혼식이 여전히 많다. 거품 혼례의 뿌리 깊은 관행을 벗어나기가 그만큼 쉽지 않은 것이다. 결혼비용이 크게 늘어난 것은 우리 사회에 겉치레와 체면을 중시하는 문화가 깊이 뿌리박혀 있기 때문이다. ‘누구네 집은 자식 결혼식을 어느 호텔에서 했다는데 우리도 그 이상은 해야 한다’는 쓸데없는 경쟁의식과 한번 하는 결혼식인데 최대한 아낌없이 해줘야 한다는 빗나간 자식사랑이 호화판 결혼식을 양산하고 있다. 요즘은 주례도 없이 혼주의 덕담으로 결혼식을 진행하거나 예식장의 비싼 사진 촬영 대신 평소 친하게 지내는 사진작가를 부르기로 한다.



빗나간 자식사랑이 호화결혼

20·30대 미혼 남녀 10명 중 8명은 ‘작은 결혼식’을 할 생각이 있으나 실제는 아직 5%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가 큰 셈이다.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기에 형편에 비해 과도한 혼수를 마련하게 되고 무리를 해서라도 화려한 혼인식을 하고 있다. 검소한 결혼식이 가치 있는 혼인 문화다. 지도층부터 호화 결혼식 문화의 거품을 빼는 ‘행복한 작은 결혼식’이 해야 한다. 면식만 있으면 청첩장을 뿌리고, 고인이 누군지도 모르면서 상주 얼굴만 보려고 장례식장에 가는 경우가 많다. 유력 정치인 자녀의 결혼식에 국희의원 수십여명이 북적였고, 축의금 줄이 50m를 넘었다는 보도도 있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세 자녀에 대해 ‘작은 결혼’을 시킨 미담의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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