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남저수지
주남저수지
  • 경남일보
  • 승인 2018.08.01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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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탁 (창원예총회장)
김시탁
주남저수지에 가면 버드나무 가지 위의 까치집에는 시린 햇살이 세 들어 살고 물속에 어리는 까치집에는 잉어가 새끼를 치고 산다. 고나니, 천동 오리, 노랑머리 저어새, 재두루미들이 유유히 저수지 뱃살을 긁으며 노닐고 철새들의 방향을 인도하는 관제탑 같은 나무가 저수지에 무릎을 담그고 등대처럼 서 있다.

햇살이 지면 서산 아래로 노을이 내려와 발을 씻고 발목이 시린 억새들은 낮 동안 서로 벌려있던 간격을 좁혀 어깨를 걸고 회색 물감을 듬뿍 찍어 서로의 허공을 붓질로 공유한다.

나룻배를 몰고 나간 늙은 사공이 그물을 걷어 장대로 저수지 바닥을 찌르며 돌아올 때면 덜 마른 동양화 같은 풍경 속으로 검불처럼 철새들이 날아오른다. 공중에 길을 내는 무리들은 흐트러지면서도 산란한 질서를 만드는 날개가 있어 아름답다.

온종일 서서 저린 무릎을 접지 못해 하지정맥류를 앓는 버드나무 종아리를 만져주던 자라풀이 고단한지 홑이불 같은 어둠을 덮고 눕자 물달개비 잎에 앉아 알을 까던 밀잠자리도 젖은 날개를 접는다.

주남저수지의 저녁은 느리게 와서 오래 머물다 새벽을 맞는다. 애기부들 이파리 위의 반딧불이 제 몸을 태워 불빛을 만들면 연인들이 서로 어깨를 걸고 사랑을 속삭이기 좋도록 바람은 실내화를 신고 억새둑길에 깔린 달빛만 살금살금 밟는다.

지친 하루를 내려놓고 쉬기 좋고 평화를 베고 누워 별을 헤아려볼 수도 있는 곳, 그중 아름다운 별 하나를 골라 이름을 지어 불러보면 그리움이 물풀처럼 번져 저수지가 슬며시 돌아눕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시인은 억새를 꺾어 물 위에 시를 쓰고 화가는 노을을 풀어 하늘에 그림을 그리면 새들이 건반을 두드려서 노래하는 곳, 까슬까슬하게 살아온 시간의 엉덩이를 두드리고 살아갈 세월의 건조한 민낯을 물빛에 비춰 살면서 묻은 때를 씻기 좋은 그곳이 바로 주남저수지다.

여백이 배경으로 걸리고 풍경이 풍경을 잉태할 때 돌아올 일 있으면 농로 길 시속을 사십 킬로로 맞추고 차창 밖으로 손을 내밀어 손안에 와 감기는 바람의 속살을 만져보라.

거기 세월을 거슬러가 어머니 젖가슴을 만지던 유년의 까까머리 사내 하나가 울고 있다.

그래도 차를 세우고 돌아보지는 마시라. 물빛 그리움은 고개를 돌린 쪽으로 하염없이 구부러져 척추까지 시리고 굳어버리면 그댄들 어찌하랴. 
김시탁 (창원예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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