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 정치후원금의 두 얼굴
[경일포럼] 정치후원금의 두 얼굴
  • 경남일보
  • 승인 2018.08.05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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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술 (국립경남과학기술대학교 교수)
노회찬 의원이 극단적 선택을 하도록 옭아 맨 현행 정치자금법의 취약점이 사회적 이슈화 되면서 그 묵직한 과제는 정치권이 풀어야 할 몫으로 남겨졌다. 정치자금과 관련하여 2002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의 이른바 ‘차떼기’ 불법 대선자금 비리사건을 계기로 정치자금법이 2004년에 대폭 개정된 바 있다. 영화에서나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현실에서 벌어지자 성난 국민들은 정경유착 퇴출과 돈 정치 중단을 강하게 요구했고 거센 비난의 여론에 정치권은 화들짝 놀라 정치자금법을 개정했던 것이다. 고비용 정치구조의 개선 차원에서 정치자금의 규제가 대폭 강화되었고, 선거비용보전제도와 정당국고보조금제도를 통한 선거공영제와 함께 소액다수기부주의가 중요한 원칙으로 채택됐다. 그 결과 금권정치와 같은 여러 가지 악습을 근절하는 계기가 되었다.

정치자금법상 정치자금은 당비, 후원금, 기탁금, 국고보조금으로 나누어진다. 이중에서 정치후원금은 금전 기부를 통한 유권자의 정치적 지지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의의를 가진다. 이와 관련한 소액다수기부주의는 금권정치와 결부되는 고액기부는 제한하고 다수 유권자에 의한 소액기부로 정치자금을 조달하자는 것이다. 고액기부 제한을 위하여 중앙당 및 시·도당의 후원회를 폐지하고, 고액기부의 주요 공급자였던 법인·단체의 정치자금 기부를 원천적으로 금지하였으며, 1억 2000만원이던 후원금 연간 기부한도를 2000만원으로 대폭 하향조정했다. 또한 개별후원회에 일정금액 이상 기부한 자의 인적사항과 금액을 공개토록 했다. 국회의원 개별후원회의 모금한도는 종전 3억원에서 1억 5000만원으로 축소되었다. 다만, 선거가 있는 해에는 여전히 3억원까지 모집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의 취지는 정치자금의 적정한 제공과 정치자금에 관한 부정 방지라는 다소 상충될 수 있는 정치자금법의 두 핵심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자는 것이었다.

정치자금법상 후원금을 모집할 수 있는 자격은 국회의원이나 국회의원 예비후보, 지방자치단체장 후보, 대통령 후보 및 예비후보 등이다. 선거를 준비하는 예비후보 같은 경우에는 선거 120일 전부터 등록을 하고 그때부터 비로소 최대 1억 5000만원의 후원금을 모집할 수 있다. 이는 신인·원외정치인에겐 불리한 제도로 평소엔 관행적으로 불법정치자금을 수수토록 방치하는 부작용이 크다는 지적들이 그동안 있어 왔다. 노 의원처럼 인지도가 높은 경우가 아니면 정치신인을 포함한 원외정치인은 짧은 기간에 그나마 보장된 후원금마저도 모금이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정치권에서는 보수·진보를 가리지 않고 정치자금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특히 현역정치인과 신인·원외정치인 간의 격차 해소 문제를 우선 다루자는 의견도 있다. 신인·원외정치인에게 불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아주기 위해서는 모금과 집행의 투명성 확보를 전제로 해서 후원금 창구를 제대로 열어줘야 공정한 게임이 된다. 선거전 120일로 제한하고 있는 최소한 선거운동 기간을, 외국의 사례처럼 그 제한을 조정해 신인·원외정치인의 후원금 모금 한도나 후원회 구성 기간을 현실화 해 주자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다만, 이러한 대안에 따른 예비정치인의 개별후원회가 또 다른 부작용을 야기할 여지도 있으므로 보완책이 함께 강구되어야 한다. 이와 같이 신인·원외정치인에게 불리한 정치후원금 관련 법규범의 객관성과 현실성을 높일 필요는 있지만 이를 빌미로 고비용 정치구조의 개선 차원에서 진행되었던 2004년의 정치자금법 개정의 본질적인 취지를 훼손시키는 개정은 곤란하다. 고비용의 정치문화를 바꿔 나가는 게 더 중요한 아젠다이기 때문이다.

윤창술 (국립경남과학기술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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