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용복의 세계여행[6] 알 카즈네
도용복의 세계여행[6] 알 카즈네
  • 경남일보
  • 승인 2018.08.05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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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아 사막 끝자락 세계의 불가사의


진시황이 북방 유목민의 침입을 저지하기 위해 쌓은 만리장성, 해발 2430m고원에 우뚝 솟은 사라진 문명 잉카의 수도 ‘마추픽추’, 또 다른 잃어버린 문명 마야의 중심지 멕시코 ‘치첸이트샤’, 글래디에이터들의 삶과 죽음이 피로써 배어난 로마의 ‘콜로세움’, 무굴왕조의 샤자한 황제가 왕비 마할의 죽음을 애도하며 만든 인도의 신비 ‘타지마할’ 요르단 ‘페트라’ 등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세계 7대 불가사의이다. 인류의 작품이라기엔 상상하기 어려운 문명사의 걸작들이다. 하지만 이 가운데 나는 신이 빚어낸 유적지인 페트라를 최고로 꼽는다. 물론 페루의 우루밤바강을 휘감은 계곡 위로, 스페인 정복자들의 눈을 피해 ‘세상의 중심에서 싸우리라’며 하늘을 뚫을 만큼 높은 산꼭대기에서 최후까지 저항의 기치를 내세운 마추픽추도 장관이지만 이곳만큼 자연과 절묘하게 어우러지진 못했다고 생각한다. 영화 인디아나존스, 트랜스포머 그리고 인기 드라마였던 ‘미생’에 배경이 되었던 곳. 눈으로 보고 있어도 믿기지 않는 곳이 페트라이다.



요르단은 시리아,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랍계와 이스라엘 사이에 낀 작은 국가다. 분명 아랍의 일원이긴 하지만 이스라엘과 국교를 수립하고 국경도 열어 ‘국제적인 화약고’에서 유일하게 이슬람과 유태교가 소통하는 완충지대 역할을 하고 있다.

아라비아의 보물인 석유라도 묻혔으면 다행이겠는데 그런 축복마저 허락받지 못했다. 게다가 먹을 물까지 부족해 이웃 시리아로부터 얻어 쓰는 형편이다. 석유도 없고 물도 없고 사방은 사막으로 가로막힌, 어찌 보면 ‘자연이 외면한(?)’ 이 땅의 국민들에게, 그러나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랑거리가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땅 밑에 깔린, 세상의 자동차들에 100년 연료가 될 만큼 많은 석유를 준다고 해도 결코 바꾸지 않을 보물, 그것이 바로 페트라다.

요르단은 페트라를 통해서 먹고 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많은 관광객들이 비싼 입장권을 구매하는 반면 내국인은 2000원도 내지 않는다. 페트라를 가는 가장 쉽고 저렴한 방법은 최근 공격적인 저가 마켓팅을 선보이는 중동 항공사를 이용하여 카타르 혹은 두바이를 거쳐 요르단 암만에 도착하여 버스로 이동하는 것이다.

오일머니를 앞세운 중동국가의 관광 인프라 투자 행보는 오지탐험가인 나에게 유럽, 중동, 아프리카를 여행하는 교두보를 마련해 주었다.

처음 여행을 시작할 26년전에는 이틀은 각오해야할 여정도 이제는 절반으로 줄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또한, 다양한 중동 패키지 여행상품들도 속속 개발되고 있어 많은 여행자에게 반가운 소식이다.

암만에서 버스로 약 4시간쯤 남으로 달려 도착한 요르단 아라비아사막의 끝자락. 사막을 얼마간 가로질러 언덕굽이로 내려가다 산허리를 돌자 멀리 노을에 물든 거대한 바위산이 신기루처럼 눈앞을 가로막았다.

원래 붉은색 사암이 노을빛에 반사되어 황토색 뭉게구름이 하늘에 걸친 듯 했다. 안내인에 따르면 그 옛날 바다 속 대륙붕이 지각변동에 의해 땅 위로 솟구친 것이라 했다.

바위산은 올라가는 입구부터 ‘신의 조화’다운 장엄함이라 할 만큼 자연 그대로의 비경이 펼쳐진다. 수만년에 걸쳐 바다 밑을 흐르던 해류가 바위산에 조그만 구멍을 뚫었고 마침내 산 전체를 관통하는 기나긴 협곡을 만들어냈다. 최초엔 몇 ㎜에 불과하던 틈새가 해수의 흐름으로 차츰 넓어지다가, 또 그 세월의 흐름위로 켜켜이 쌓인 공덕이 어느 날 융기라는 거대한 땅의 변화와 어울려 사막 위로 치솟은 것이었다.

원래 물살이 드나들던 폭 4~5m의 그다지 넓지 않은 곳이었다. 반면 높이는 100여 m에 이를 만큼 높았다. 양쪽으로 암벽이 2㎞나 이어진 천연 그대로의 바위 터널이었다.

기원전 7세기, 이곳에 정착한 ‘나바테아’ 인들은 페트라 왕국을 세우고 이 협곡 터널을 지나는 대상들로부터 통행료를 받아 갖은 영화를 누리며 인공의 유적들을 가미했다. 세월이 흘러 그 많은 조각들이 부서지고 유적들 또한 이제는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훼손됐지만 당시의 융성함을 짐작하기엔 충분했다. 터널을 나서는 순간 마주하는 ‘알 카즈네’는 높이 45m의 바위산 전체를 하나로 조각한 페트라 최고의 유적이다. 전면에 35m의 돌기둥이 6개 서 있는데 각각 그리스 신을 상징하는 식물과 여인의 조각이 좌우에 새겨져 있다. 또한 제일 윗부분에 놓인 항아리 형태의 조각은, 나바테아인들이 그곳에 보물을 숨겼다고 하여 ‘알 카즈네(보물창고)’라고 이름 붙였다.

페트라는 그리스어로 ‘바위’라는 뜻이다. 나바테아인들은 절벽의 바위산을 통째로 깨서 사원을 만들고, 왕의 무덤과 집을 만들었다.

건물들도 대부분 암벽을 파서 만들었으며 극장과 목욕탕, 상수도가 갖추어진 도시구조를 이룩했다. 붉은 빛이 감도는 사암으로 만들어진 이 도시는 앞서 설명한 거대한 바위산 협곡 터널과 이를 활용해 만든 왕가의 무덤, 유적 등이 만들어내는 장관이 보는 이의 눈을 압도한다.

특히 해질녘의 페트라는 보는 방향과 햇빛의 각도에 따라 붉은 색과 노란색이 환상적으로 섞이며 자연과 인공이 어우러진, 결코 현실에서는 경험할 순 없는 천상의 컬러를 엮어낸다. 감탄사가 절로 나지만 그 장관을 잘라 말하기엔 나의 글재주가 부족함을 통감한다.

그동안 페트라는 6세기에 있었던 지진에 의해 사라진 것으로 알려져 왔다. 서기 106년 로마에 점령되면서 요르단에도 돌을 쌓아 건물을 짓는 양식이 도입되었으며, 그후 천연 바위를 이용한 건축 양식은 사장된 것으로 보인다가 1812년 스위스의 젊은 탐험가에 의해 발굴되면서 다시 세상에 알려졌다. 발굴 이전까지 페트라는 소수의 베두인족만이 아는 그들만의 보물창고로 남아 있었다.



 
베두인족은 팔레스타인족과 함께 요르단 인구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민족이다. 수천년 동안 오아시스나 강을 찾아다니면서 낙타, 양, 염소 등 가축을 키우는 유목생활을 해온 탓에 간이텐트 생활은 그들의 일상이 되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해 시리아, 이란, 북아프리카까지 광범위하게 흩어져 사는 베두인족에게는 고향이 따로 없다. 단지 풀과 물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고향인 셈이다. 역사적으로 베두인족은 호전적이어서 타종족들에겐 경계의 대상이었다. 전사들이 낙타나 말을 타고 사막을 질주하며 농경민족이나 대상들을 상대로 공물을 받거나 약탈을 해가며 한때 세력을 떨치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베두인족이 무례하거나 타민족을 무시하는 건 아니다. 되레 그 반대로 친절을 타고난 사람들이다. 사막을 지나다가 물 한 모금 얻어 마시려 말을 건넸는데, ‘압둘’이란 그 사람은 나를 천막 안으로 안내하곤 카펫이 깔린 응접실에서 물뿐 아니라 커피와 차까지 대접했다.

처음엔 ‘각별히 친절한 사람이구나’ 생각했는데 만나는 사람들마다 모두 그랬다. 다만 남자 없는, 여자나 아이들만 있는 텐트 속으로 들어갔다간 죽음(?)을 각오해야 할 만큼 봉변을 당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페트라의 유적에 반하고 베두인족의 친절에 취해서 무슬림의 사막임을 잊고 함부로 행동했다간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당신의 실종이 추가될 수 있음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사막을 여행하면서 무엇보다 조심해야할 것은 여자와 술이다. 절대로 잊지 말아야한다.

페트라를 여행하며 느낀 아쉬운 점은 무분별한 호객행위이다. 입구에서부터 말이 끄는 마차와 당나귀 등을 타고 이동할 것을 끊임없이 권하고 이들의 배설물이 다니는 곳곳에 있어 잘 피해 다녀야 하며 냄새 또한 심했다. 세계 171개국을 여행하고 자신있게 페트라를 권하고 싶을때 잠시 주춤하게 되는 이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르단의 페트라는 세계 최고의 불가사의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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