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칼럼] 말은 인격이다
[경일칼럼] 말은 인격이다
  • 경남일보
  • 승인 2018.07.30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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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용환(전 사천경찰서장,법학박사·시인)
우리말에 사람이 금수와 다른 것은 말속에 인격이 있는 까닭이라고 한다. 한자로 語는 言(말)+ 吾(나)를 합친 글자로 말이란 곧 말하는 사람의 인격인 것이다.

말 때문에 빚어지는 불화가 많다. 말의 왼쪽에는 소리가 있고 오른쪽에는 말씀이 있다고 한다. 말이 말씀으로 옮겨가지 않고 소리로 추락하면 사이가 틀어지게 된다. 소리 중에는 잔소리도 있고 헛소리도 있고 험담과 악담도 있다. 그런 소리들은 귀에만 들어갈 뿐 마음으로 스며들지 않는다.

‘30초의 말 한마디가 30년 간다’는 이야기도 있다. 화가 나서 내뱉은 막말은 화해를 한다고 해도 가슴속에 30년 동안 머문다는 뜻이다.

반면에 ‘말 한마디가 긴 인생을 만든다’는 이야기도 있다. 서울 용산의 삼각지 뒷골목에 ‘옛집’ 이라는 허름한 국숫집이 있었다. 탁자는 달랑 4개뿐인, 주인 할머니는 25년을 한결같이 연탄불로 멸치국물을 우려서 국수를 말아낸다. 10년을 넘게 국숫값은 2000원에 묶어 놓고도 면은 얼마든지 달라는 대로 준다. 몇 년 전 이집이 어느 방송에 소개된 뒤 나이 지긋한 남자가 담당 PD에게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감사합니다”를 연발했다고 한다. 전화를 걸어온 남자는 20년 전 사기를 당해 재산을 들어먹고 아내까지 떠나버렸단다. 용산역 앞을 배회하던 그는 식당들을 찾아다니며 한 끼를 구걸했다. 음식점마다 쫓겨나기를 거듭하다 보니 독이 올라서 휘발유를 뿌려 불 질러 버리겠다고 마음먹었다. 할머니네 국숫집까지 가게 된 사내는 자리부터 차지하고 앉았다. 나온 국수를 허겁지겁 먹자 할머니는 그릇을 빼앗아갔다. 그러더니 국수와 국물을 한가득 다시 내주었다. 두 그릇을 퍼 넣은 그가 냅다 도망치자 할머니가 쫓아오면서 뒤에 대고 소리쳤다. “그냥 가, 뛰지 말구, 다쳐!!” 그 한마디에 사내는 세상에 품은 증오를 버렸다. 그 후 파라과이로 이민 가서 꽤 큰 장사를 하여 크게 성공했다고 한다.

말과 언어 선택도 잘 해야 한다. ‘저는 태어날 때부터 장님입니다’하고 팻말을 달고 구걸하던 사람이 ‘봄이 오건만 저는 그것을 볼 수 없답니다’라고 바꾸어 달았더니 깡통에 돈이 한가득 찼다는 얘기도 있다.

그러나 험담은 세 사람을 죽인다는 말이 있다. 어느 신부님이 젊은 여자 집에 자주 드나들자, 이를 본 마을 사람들은 좋지 않은 소문을 퍼뜨리며 신부를 비난했다. 그런데 얼마 후 그 여인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제서야 마을 사람들은 신부가 암에 걸린 젊은 여인을 기도로 위로하고 돌보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가장 혹독하게 비난했던 두 여자가 어느 날 신부를 찾아와 사과하며 용서를 빌었다. 그러자 신부는 그들에게 닭털을 한 봉지씩 나눠주며 들판에 가서 그것을 바람에 날리고 오라고 하였다. 그리고 얼마 후 닭털을 날리고 돌아온 여인들에게 신부는 다시 그 닭털을 주워오라고 하였다. 여인들은 바람에 날려 가버린 닭털을 무슨 수로 줍겠느냐며 울상을 지었다. 그러자 신부는 여인들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했다. “나에게 용서를 구하니 용서 해주는 것은 문제가 없으나, 한번 내뱉은 말은 다시 담지 못합니다”. 남의 험담을 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의 부족함만 드러내고 마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비방은 하는 쪽이나 당하는 쪽이나 말을 줄이는 것이 좋다. 말꼬리를 잡고 가지를 쳐서 끝까지 가게 되면 다 피를 흘려야 끝이 난다. 우리 사회도 서로간의 칭찬은 못할망정 비방과 헐뜯음은 없어야 할 것이다.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이기 때문이다.
 
주용환(전 사천경찰서장,법학박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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