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칼럼]진주대첩광장
[경일칼럼]진주대첩광장
  • 경남일보
  • 승인 2018.08.06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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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명영(수필가·전 명신고 교장)
촉석문 앞에 넓은 터를 마련하고 진주대첩광장 조성 작업이 한창이다. 전쟁은 예방이 최선, 전투에 임하면 적을 물리치거나 이겨야 하는데 진주대첩이 그 모델이다. 보고 싶고 다시 찾는 광장이 되도록 지혜를 모아야겠다.

1592년 임진년 음력 10월에 진주성에서 혈전이 벌어졌다. 전력의 약세에도 불구하고 수성군이 승리하여 임진왜란 대첩이 되는 1차 진주성 전투이다. 개략적으로 정리하면, 10월 5일은 탐색전, 김시민은 성가퀴를 지키며 조용히 감시만 하라! 깃발을 많이 세우고 여인들까지 남장을 시켜 군사가 많은 것으로 위장한다.

10월 6일, 적은 동서북으로 쳐들어온다. 다리를 걸쳐 성벽으로 기어오르자 수성군은 비격진천뢰, 화약을 넣은 짚 뭉치를 날려 보내 교란시키고, 끓는 물을 쏟아 붓고, 돌을 던져 저지한다. 수시로 연지사종을 울려 착한 마음을 일깨우고, 각지에서 의병들이 모여들어 적의 전력을 분산시킨다.

10월 7일, 적은 종일 조총과 화살을 쏘아대고, 민가를 부수고 불태웠다. 밤이 되자 적은 산대 등으로 성벽과 같은 높이로 언덕을 만든다.

10월 8일, 적은 언덕 위에 올라 조총을 쏘고, 아군은 현자총통을 발포하자 적은 산대를 포기하고, 수천 개의 사다리를 동원하여 성벽을 넘으려 시도하고, 아군은 비격진천뢰와 질려포를 쏘고, 화약에 불을 붙여 적진으로 집어던졌다. 밤이 되자 의병들은 망진산에 올라 횃불을 켜고 북을 치며 함성을 질러 위협을 가하고, 김시민은 악공들을 성루 위에 올려 피리를 불게 하여 적을 심란하게 한다.

9일,10일에도 전투는 계속되어 동이 틀 무렵까지 이어졌다. 적의 기세가 두드러지게 약해진 순간, 김시민이 왼쪽 이마에 탄환을 맞고 쓰러졌다.

작전 지휘권을 받은 곤양군수 이광악은 동문 북격대를 맡아 그곳에 있는 큰 느티나무 둥치에 의지해 군사를 지휘한다. 왜장의 동생 장강현번지윤이 쌍견마를 타고 날뛰는 지라 대궁을 잘 쏘는 궁수에게 은밀히 명을 내려 명중시키니 적은 물러갔다.

역사는 반복성이 있다. 생활 유형이 흡사하기 때문이다. 진주대첩광장 조성은 당시의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였고, 예고된 2차 진주성 전투에 대한 대비는 어떠하였으며, 민관군 6만명 순의를 예방할 수 없었는가, 오늘날에는 진주성 전투 같은 기미는 과연 없으며, 대비를 잘하고 있는가를 되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함이다.

진주대첩 요인은 지휘자의 뛰어난 전략, 생사를 함께한 민관군 단결력, 의병의 외곽 지원, 지형지물을 이용한 진주성 구축 및 신병기 개발, 특히 비차의 활약을 꼽을 수 있겠다. 일본 역사서 왜사기에 전라도 김제 사는 정평구가 비차를 발명하여 진주성 전투에서 사용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한산도대첩은 인류 최초 철갑선이라는 거북선이 있어 돋보이며, 진주대첩에는 비차가 있었다. 재현하면 우리나라는 플라이어호 보다 311년 앞서 비행기를 날린 나라가 된다.

진주대첩을 이해할 수 있는 조형물, 부조 및 설명문 제작에 전문가 지도를 거쳐야 한다. 전시물은 고정식이 아니라 교체가 가능하여 단계별 심화 학습이 가능한 생동감 있는 야외학습장의 모델이 되도록 하자. 그리고 일본 창고에서 잠자고 있는 연지사종을 되돌려 받아 안치하자!

진주대첩의 후예답게 세계적인 발명품인 비차를 시민 정성으로 재현하자. 이미 그 바램은 유등축제 가장행렬에 비차를 선보이고, 점차 실제에 가까운 비차로 변모하고 있다. 진주대첩광장에 비차 좌대를 설치하고 유등축제에 선보인 비차를 전시하면, 세게 최초의 비행기를 전시한다는 자부심으로 활기찬 광장이 될 것이다.

 
안명영(수필가·전 명신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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