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도
40도
  • 경남일보
  • 승인 2018.08.08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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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탁 (시인·창원예총회장)
김시탁
안동소주 얘기가 아니다. 요즘 날씨 온도다. 며칠 전 111년 만에 41도의 폭염을 기록했다고 한다. 그 날 할아버지 한 분이 손주 주려고 사온 크레파스를 차에 두고 내려 이튿날 가보니 크레파스가 차 안에서 녹아내려 뒷좌석 시트에 화려한 풍경화를 그려 놓았다.

문을 여는데 차체가 달아 손을 델듯하니 보닛에 계란을 깨트리면 바로 프라이가 되고도 남겠다. 아궁이 앞에서 군불을 지피는 형국이다. 어디를 가든 폭염을 피하는 건 에어컨 바람밖에 없다. 밥집도 술집도 찻집도 사무실도 집안도 에어컨, 주야장천 오직 에어컨 바람만 맞으니 냉방병이 도져 머리가 아프고 입맛도 달아났다. 먹는 음식조차 냉면, 밀면, 물회, 냉커피, 팥빙수 모두 찬 것들이니 속인 들 편할까.

소화 장애에 장염에 배탈에 아토피 피부염까지 겹치니 총체적 위기가 따로 없다. 시간은 엿가락처럼 늘어지고 일상조차 녹아내려 뭐하나 제대로 되는 일이 없다. 땀내를 풍겨가며 사람을 만나는 일도 부담스럽고 할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데 찾아 해야 할 일은 엄두도 나지 않는다.

습도가 높으니 덩달아 오르는 불쾌지수로 사소한 일조차 역정을 유발한다.

지난달 달력 좀 넘겨달라는 아내의 말에 짜증이 묻으니 넘겨야할 달력을 쭉 찢게 되고 다시 아내의 역공이 이어져 설거지하던 그릇이 깨어질 듯 요란하다. 30년을 거실에 걸려 울던 뻐꾸기시계도 너무 더워 탈진했는지 아홉 시에 네 번 만 울고 만다. 농장에 가보니 심각성에 말을 잃겠다.

영양실조에 걸린 곡식이 꽈배기처럼 꼬여있다. 상추는 땅바닥에 수취인 불명 우표처럼 붙어 있고 부추는 성질 고약한 영감탱이 새치 수염과 흡사하다. 고추와 가지는 시들고 쪼그라들어 언제 다시 살이 차오르고 탱탱하게 발기될지 기약 없이 고개를 숙였다.

경제가 어려워 사람살기도 벅찬데 폭염까지 더하니 기진맥진이다. 이럴 때일수록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는 지혜가 필요한데 기우제를 지내고 피서를 간다 하여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마음을 다잡아 내공으로부터 시원한 바람을 일으킬 근본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한 방법으로 문화예술과 바람나는 일은 어떠한가.

문화예술과 바람난다고 집안 망할 일도 아니니 가족과 영화 보고 성산아트홀을 찾아 잦은 공연과 전시회를 관람하는 것이다.

마음속 시원한 빛줄기가 바람처럼 스며들어 폭염에 지친 영혼을 식혀줄지 누가 아는가. 이우걸 시조시인이 쓰고 필자가 읽는다. 가파른 곳에는 반드시 샘물이 있다.



김시탁 (시인·창원예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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