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칼럼] 나의 ‘쓸모 있는’ 하루
[대학생칼럼] 나의 ‘쓸모 있는’ 하루
  • 경남일보
  • 승인 2018.08.16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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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성 (경상대학교 신문사 편집국장)
친구네 강아지 ‘보리’가 무지개다리를 건넌지 2년이 지났다. 유난스레 소나기가 쏟아지던 날 문득 보리 생각이 떠올랐다. 그 누구보다도 슬펐을 친구는 보리가 떠난 다음 날에도 교수님의 부름으로 학교에 나가야 했다. 키우던 강아지가 죽어서 못 간다고 말하면 상처받는 말을 들을까봐 사실대로 말하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친구의 교수님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에 워크숍 들으러갔던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분이었다. 내가 친구였어도 입을 떼지 못했을 것이다.

세상은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할 때가 참 많다. 대학교에 3년동안 다니면서 느낀 것은 ‘하고 싶은 일을 못하는 것’과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못하는 것은 불행하다. 그런데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는 것은 불행도 느끼지 못하게 만든다. 하기 싫은 일만 하다보면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잊어버린다. 그래서 지금 누가 나에게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 할 것이다. 무릇 나만 이런 것은 아닌 것 같다. 언제부턴가 친구들 모두 쉬는 날이면 ‘집순이’를 자처한다. 집에서 혼자 특별한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다보면 하루가 빠르게 지나간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는데, 요즘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가 좋은 거 같다는 생각을 한다.

사회는 끊임없이 쓸모있는 일과 쓸모없는 일의 가치를 저울질 한다. 그러고는 쓸모있는 일을 할 것, 쓸모있는 사람이 될 것을 요구한다. 내가 하기 싫은 일들은 대게 누군가보기에 ‘쓸모있는’ 일들이다. 한국에서 20대들은 힘은 없어도 패기는 있어야하고 돈은 없어도 꿈은 있어야한다. ‘청춘’이라는 이름표 하나를 얻기 위해서는 짊어져야 할 짐이다.

강아지가 떠난 슬픔을 추스를 새도 없이 하기 싫은 일을 하러 가야 했던 친구는 여전히 그 슬픔을 곁에 두고 지내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에 근근이 만족하며 살고 있다. 누군가에게 이런 하루는 ‘쓸모없는’ 시간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하루가 있어서 다시 또 다른 하루를 살아가는 나에게는 그 무엇보다 ‘쓸모있는’ 시간이다.
 
이희성 (경상대학교 신문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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