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 ‘위안부’ 기림일을 지나면서
[여성칼럼] ‘위안부’ 기림일을 지나면서
  • 경남일보
  • 승인 2018.08.15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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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문순 (진주평화기림사업회 공동대표)
8월 14일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다. 이 날은 2012년, 타이베이에서 열린 ‘제11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에서 매년 8월 14일을 세계 각지에 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기 위한 ‘세계 위안부의 날’로 제정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8월 14일을 기림일로 정한 것은 1991년 김학순 할머니가 위안부 생존자 중 최초로 기자회견을 통해 피해 사실을 증언한 날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해 11월, ‘일제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보호·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대한 법률’ 일부 개정 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으로써 국가 공식 기념일로 지정되었다. 그보다 앞서 경상남도에서는 지난 2015년 ‘경상남도 일제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생활안정지원 및 기념사업 조례’를 통과시킴으로써 8월 14일을 ‘위안부 기림일’로 지켜왔다.

따라서 올해 8월 14일은 국가 공식 기념일로 지정 된 후 첫 번째 ‘위안부’ 기림일이다. 이에 전국 각지에서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억하고, 그 분들의 고통을 마음에 새기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전쟁을 반대하고 세계 평화를 추구하는 그 분들의 정신을 기리는, 전시회, 강연, 시화 공모 등의 행사가 열렸다. 진주에서도 일본군강제성노예피해자진주평화기림사업회의 성명서 발표와 진주 박물관의 엽서쓰기, 관련 영화 상영이 있었다.

이렇게 8월 14일을 보내면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정부의 행보가 너무 느린 것 같아 많이 답답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정부도 민간에서도 이 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위한 노력을 저마다 하고 있다는 안도감을 가지게 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수사과정에서 ‘위안부’ 피해자들의 재판에 개입한 정황을 보여주는 문서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은 또 다시 무릎을 휘청거리게 만들었다.

정말 꼼꼼하게도, 재판과 관련하여 박근혜정권과 코드를 맞출 수 있는 것이라면 어느 하나 빠뜨린 것 없이 개입한 양승태 대법원의 행태는 과연 우리가 정의의 마지막 보루라고 믿고 있었던 사법부가 맞는지를 의심하게 만든다.

보도에 의하면, 2015년 법원행정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개입하는 계획을 짰다고 한다. 2015년 12월 28일 문제의 ‘한일 위안부 합의’가 발표된 이후 2016년 ‘위안부 손배판결 관련 보고(대외비)’ 문건을 만든 것이다. 이 문건에서 법관들은 ‘국가면제’ 나 ‘소멸시효’ 등의 논리를 찾아내어 이 소송을 각하나 기각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고 한다.

자국민이 외국 정부에게 피해를 당하여 그 피해를 보상받기 위해 소송을 한다면, 우리나라의 법관들은 자국민의 피해에 충분히 공감하고 그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도록 법리를 찾아내는 등의 노력을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양승태 대법원은 시쳇말로 ‘그 좋은 머리’를 가해국, 일본에 유리한 판결이 나도록 하는 데에 썼다는 것이다. 믿기가 어려운 일이다. 더욱 가슴이 아픈 사실은 소송이 제기된 이후 3년 동안 재판이 한 번도 안 열렸고 그 사이에 소송을 제기했던 열두 할머니 중 여섯 분이 돌아가신 것이다.

이처럼 끊임없이 드러나는 위정자들의 범죄들을 보면서 우리나라 위정자들의 머리 속에 사람, 국민, 피해자가 있는지 궁금해진다. 행정부든 사법부든 위정자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국민이며, 그 국민 속에 있는 피해자들이며, 결국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다. 마음속에서 사람을 놓치면 정치도, 재판도 헛것에 불과할 것이다.
 
강문순 (진주평화기림사업회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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