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의 박물관 편지[16]
김수현의 박물관 편지[16]
  • 경남일보
  • 승인 2018.08.15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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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센호프
매년 4월 27일은 킹스데이로 네덜란드 국왕의 생일을 축하하는 전 국민의 축제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는 다양한 이벤트가 열리며, 축제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네덜란드 왕가를 상징하는 오렌지색 옷을 입는다.

 

‘오렌지군단’으로 잘 알려져 있는 네덜란드 축구대표팀의 유니폼은 오렌지색이다. 비록 이번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네덜란드 대표팀의 본선진출 실패로 오렌지물결을 보지 못했지만, 네덜란드인들의 오렌지색 사랑은 변함없다.

네덜란드 국왕의 생일을 축하하는 킹스데이에는 물론이고 네덜란드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오렌지의 향연에는 네덜란드인들의 자부심까지 느껴진다. 오렌지색이 왜 네덜란드를 상징하는 색이 된 것일까?

오렌지색이 네덜란드를 대표하게 된 까닭은 네덜란드를 스페인의 지배에서 벗어 나게 해 오늘날 네덜란드를 있게 만든 빌럼 판 오라녜(영어로는 오렌지공 윌리엄) 때문이다.

지금의 네덜란드는 중세시대까지도 작은 공국들로 이루어져 있는 지역에 불과 했다. 13세기 말 부르고뉴가문이 지금의 베네룩스3국(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을 지배했다가 이후 이 지역들은 합스부르크가의 영토가 됐다. 16세기 초,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네덜란드는 신교 국가가 되었지만 스페인의 국왕 펠리페 2세가 네덜란드의 통치권을 쥐게 되면서 가톨릭을 믿도록 강요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네덜란드는 종교의 자유를 위해 스페인에 대항하여 약 80년간 독립 전쟁을 벌였는데, 이 전쟁의 선봉장에 섰던 사람이 바로 빌럼 판 오라녜다.

 

빌럼 판 오라녜. 정식 이름은 나사우 백작 오라녜공 빌럼 이며 영어로는 오렌지공 윌리엄(William Ⅰ,Prince of Orange)라고 불린다. 빌럼은 합스부르크왕가에 대항하여 네덜란드의 독립을 주도 했다. 네덜란드인들의 오렌지색 사랑이 오랜 역사에서부터 비롯 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빌럼은 스페인 합스부르크에 대한 네덜란드 반란군의 지도자로써 80년 전쟁(1568~1648)을 이끌었다. 네덜란드 개신교의 박해에 불만을 품은 빌럼은 정치권력이 중앙으로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 반란에 합류하여 스페인에 대항했다. 이것은 단지 종교적 자유에 대한 갈망이라기보다는 한 인간으로 누릴 수 있는 자유에 대한 투쟁이었다.

빌럼이 이끄는 반란군의 초반 정세는 그들에게 매우 불리했다. 도움을 주기로 했던 지역들이 반란에 참여 하지 않았고, 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던 명실공히 알바공을 내세운 스페인 군대의 힘이 너무나 막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빌럼은 여러 지역들을 점차 점령해 갔고 빌럼을 따르는 백성들도 늘기 시작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본래 네덜란드의 당근 색깔은 흰색과 자주색이었는데 빌럼을 따르는 농부들이 오렌지색 당근을 많이 재배하기 시작하여 오늘날 보편적인 당근의 색깔이 오렌지색을 띄게 되었다고 한다.

한편 독립전쟁이 시작 된 지 5년이 지났지만 반란군과 스페인 사이에서는 결정적인 승부가 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독립전쟁의 양상은 의도치 않은 계기로 반전을 이끌어 냈다. 국가로부터 급여를 받지 못한 수 천명의 스페인 군이 벨기에 앤트워프를 약탈 하는 사건이 일어났고 이로 인해 반 스페인 세력이 늘어나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더욱 결속하는 계기가 된것이다.

이것은 1579년 스페인의 통치를 반대하는 네덜란드 북부의 7개 주 대표들이 위트레흐트에 모여 연합주를 만드는 것으로 이어졌고, 이 위트레흐트 동맹은 네덜란드 독립의 중요한 발판이 됐다.

 

총탄자국이 남아있는 프린센호프 내부 계단 입구. 빌럼은 이곳에서 총상을 입은 채 네덜란드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숨을 거뒀다.


그러나 네덜란드의 독립은 역사적인 큰 사건을 계기로 미뤄지고 말았다. 1584년 빌럼이 자신의 자택이었던 프린센호프에서 발타자르 제라르에 의해 암살당하고 만다. 펠리페 2세가 빌럼을 수배하는 현상금을 내걸자 가톨릭 광신자이면서 펠리페 2세의 지지자였던 제라르는 빌럼을 살해하기 위한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 프랑스 귀족으로 위장한 제라르는 저녁을 먹고 계단을 내려오던 빌럼의 가슴에 총을 쏘고 달아났다.

제라르는 얼마 지나지 않아 델프트에서 붙잡혔고 곧 사형 당했다. 총을 맞은 빌럼은 곧 숨을 거두었고,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이렇다고 전해진다.


'신이여 내 영혼을 가엾게 여기소서.

신이여 이 불쌍한 이들을 가엾게 여기소서’.
 

빌럼의 죽음으로 인해 네덜란드 반란군이 주춤거리는 상황에서 이웃나라 영국이 도움의 손길을 보내왔다. 네덜란드 반란군과 연합하여 스페인의 함대를 여러 번 격파한 영국은 네덜란드 독립에 다시 한번 힘을 실어 주었다.


결국 1648년 스페인은 네덜란드 독립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고, 각 군대의 대표들은 독일 북부에 모여 베스트팔렌 조약을 체결 했다. 이로써 네덜란드의 7개 연합 주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게 된 것이다.

이후 네덜란드는 그 어떤 나라보다도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암스테르담은 유럽 최대의 무역중심지가 되어 부와 번영을 누렸다. 상인들은 무역을 통해 막강한 부를 축적 했으며 상인과 귀족들의 후원을 받은 예술가들이 날개를 펼치며 문화예술을 꽃 피웠다. 자유를 얻은 네덜란드인들이 해내지 못할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프린센호프 입구 전경.


네덜란드 델프트(Delft)에있는 프린센호프(Prinsenhof)는 중세시대 때 수도원으로 지어졌던 건물로 종교 개혁 이후에 이 건물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사용됐다.

건물 일부는 개신교 교회가 되었고, 지금의 프린센호프는 빌럼의 거주지로 사용되었다. 프린센호프는 1911년 박물관으로 개관하며 네덜란드가 치뤘던 긴 독립전쟁의 역사와 그 정신을 고취시키고 있으며 네덜란드 왕가의 뿌리를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준다. 또한 이곳에서는 빌럼이 제라르에게 총을 맞은 자리와 함께 총탄이 벽을 뚫은 흔적을 볼 수 있다.

빌럼 판 오라녜는 네덜란드의 독립을 이끌어낸 조국의 아버지다. 오늘날 비단 오렌지색 뿐만 아니라 네덜란드를 상징하는 많은 것에서 빌럼 판 오라녜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먼저 오렌지가문의 문장(紋章)을 이루던 색들은 네덜란드 국기의 기반이 됐다.

원래 네덜란드 국기는 빨간색 대신 오렌지 공을 상징하는 주황,흰,파랑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오렌지색 염료의 특성상 햇볕을 받으면 빨간색으로 바뀌는 성질 때문에 17세기에 빨간색으로 교체됐다. 또한 네덜란드의 국가 빌헬무스(Wilhelmus)는 원래 빌럼을 찬양하던 선전 노래였다. 국가의 1절부터 6절까지의 첫 글자를 펼쳐보면 W-I-L-L-E-M, 빌럼이 된다.

오늘날 네덜란드가 자유와 관용의 국가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불굴의 의지로 투항했던 선조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노력은 인간의 자유와 존엄적 가치를 다시금 일깨웠고, 그들의 끈기와 강한 도전정신은 오늘날 네덜란드가 유럽의 선진강국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던 큰 밑바탕이 되었음이 분명하다.



주소: Sint Agathaplein 1, 2611HR, Delft 네덜란드
운영시간: 화~일요일 오전 10시~오후 5시(월요일 휴관)
홈페이지: http://prinsenhof-delft.nl/en/
입장료: 성인 12유로, 18세이하 6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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