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암 투병 허수경 시인, 산문집 개정판 펴내
말기암 투병 허수경 시인, 산문집 개정판 펴내
  • 연합뉴스
  • 승인 2018.08.15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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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할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
독일로 건너가 꾸준히 ‘시작(詩作)’ 활동을 하는 허수경(54) 시인이 말기 암으로 투병하는 가운데 옛 산문집 개정판을 펴냈다. 2003년 나온 ‘길모퉁이의 중국식당’을 15년 만에 새롭게 편집해 ‘그대는 할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라는 제목으로 냈다.

진주에서 태어난 시인은 대학을 졸업하고 상경해 방송국 스크립터 등으로 일하다 1987년 ‘실천문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이후 시집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와 ‘혼자 가는 먼 집’을 낸 뒤 1992년 돌연 독일로 건너갔다.

그곳 뮌스터대학에서 고대 근동 고고학을 공부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독일에서도 꾸준히 시를 써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등 4권의 시집을 더 냈다. 또 다른 장르의 글도 열정적으로 써 산문집 ‘모래도시를 찾아서’, ‘너 없이 걸었다’, 장편소설 ‘박하’, ‘아틀란티스야, 잘 가’, ‘모래도시’, 동화책 ‘가로미와 늘메 이야기’, ‘마루호리의 비밀’, 번역서 ‘슬픈 란돌린’, ‘끝없는 이야기’, ‘사랑하기 위한 일곱 번의 시도’, ‘그림 형제 동화집’ 등을 펴냈다.

김민정 난다 대표는 “시인이 말기 암을 앓고 있다고 알려오면서 단단한 당부가 있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세상에 뿌려놓은 글 빚 가운데 손길이 다시 닿았으면 하는 책들을 다시 그러모아 빛을 쏘여달라는 것이었다”고 이번 개정판을 내게 된 배경을 밝혔다.

이어 “시인이 머물고 있는 그곳, 독일의 뮌스터에서 홀로 제 생을 정리하고 싶다며 아주 단호하게 그 어떤 만남도 허락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아주 간간 어렵사리 시인과 통화를 하며 책을 만들어나갔다”고 덧붙였다. 시인은 현재 위암 말기로, 암이 다른 곳으로 많이 전이돼 힘겹게 투병 중이라고 한다.

그는 이번 산문집 개정판 서문을 이렇게 한 편의 시처럼 썼다. “내가 누군가를 ‘너’라고 부른다./내 안에서 언제 태어났는지도 모를 그리움이 손에 잡히는 순간이다.//불안하고,/초조하고,/황홀하고,/외로운,/이 나비 같은 시간들.//그리움은 네가 나보다 내 안에 더 많아질 때 진정 아름다워진다./이 책은 그 아름다움을 닮으려 한 기록이다./아무리 오랜 시간을 지나더라도…”

이 산문집에는 시인이 쓴 139개 짧은 산문과 지인들에게 쓴 9통 긴 편지가 담겼다. 오래전에 쓴 글들임에도 ‘죽음’을 사유하는 문장들이 눈에 띈다.

“사는 힘도 힘이지만 죽음으로 가는 힘도 힘인 것을.” (139쪽, ‘죽음을 맞이하는 힘’ 중)

“지상의 삶과 지하의 삶이 그렇게 맞닿아 있다.” (141쪽, ‘호상’ 중) “그때, 나는 묻는다. 왜 너는 나에게 그렇게 차가웠는가. 그러면 너는 나에게 물을 것이다. 그때, 너는 왜 나에게 그렇게 뜨거웠는가. 서로 차갑거나 뜨겁거나, 그때 서로 어긋나거나 만나거나 안거나 뒹굴거나 그럴 때, 서로의 가슴이 이를테면 사슴처럼 저 너른 우주의 밭을 돌아 서로에게로 갈 때, 차갑거나 뜨겁거나 그럴 때, 미워하거나 사랑하거나 그럴 때, 나는 내가 태어나서 어떤 시간을 느낄 수 있었던 것만이 고맙다.” (131쪽, ‘고마웠다, 그 생애의 어떤 시간’ 전문)

연합뉴스



 
허수경 시인.
‘그대는 할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 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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