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원칼럼] 바람이 불어오는 곳
[객원칼럼] 바람이 불어오는 곳
  • 경남일보
  • 승인 2018.08.20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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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만진 (경상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여름이 덥다고 해도 어쩌면 이렇게 더울 수 있을까? 요즘 만나면 제일 많이 듣는 푸념 인사말이다. 올여름 더위는 그냥 폭염을 넘어 우리를 다 죽일 수도 있다는 살인적 위기감까지 느끼게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더운 도시 중 하나로 알려진 대구광역시를 보더라도 시민들이 매일 거의 40도를 넘나드는 고온에 시달리고 있다. 이 같은 대구는 한국의 아프리카라는 의미의 ‘대프리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를 당혹하게 하는 것은 대구보다 위도가 더 높은 서울도 찜통더위를 이어가며 더 높은 체감온도를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TV 생방송에서는 앵커가 세종로 현지에서 온도를 측정하였는데, 놀랍게도 섭씨 55도를 상향하는 수온계를 보여주었다. 그래서 이제는 ‘서프리카’라는 단어마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때에 제일 반가운 것은 바람이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이번 찜통더위에는 바람마저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대구 출신의 가수였던 고 김광석씨는 ‘바람이 불어오는 곳’ 이라는 노래를 불렀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는 특유한 산들거리는 목소리로 ‘덜컹이는 기차를 타고서 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 가고 싶어 했다. 하지만 노랫말처럼 일상을 버리고 도시를 마냥 떠나버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실제로 할 수 있는 것은 죽어버린 바람을 다시 살려내는 것이 아닐까 싶다.

도시에 바람길을 최초로 고안한 사람들은 독일의 슈투트가르트 도시계획가인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슈투트가르트는 세력이 원래 미미했던 도시인데 1900년대 이후 자동차와 정밀기계 등의 첨단 산업이 발달하면서 세계적인 공업도시로 부각하게 된다. 이로 인해 부는 급격히 얻었지만 공장과 자동차가 뿜는 매연은 도시를 지옥 같은 곳으로 만들었다. 더구나 도심이 높은 구릉지의 삼면에 둘러싸인 분지 속에 있다 보니 혼탁한 공기가 빠져나가지 못하고 머물러 있게 되는 최악의 경우를 맞이하게 되었다. 세계 제2차 대전이 끝나고 폐허가 된 도시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슈투트가르트 사람들은 우연히 바람길을 만드는 방법을 발견하게 된다. 핵심적인 것은 구릉지의 나무와 숲을 통해 무거운 찬 공기를 유입하여 도심 내의 뜨거워지고 오염된 공기를 밀어낸다는 것이었다. 특히 바람길 확보를 위해 숲, 녹지 그리고 공지를 만들고 건축물의 배치와 형태도 조절했다. 이를 통해 도시는 경제적 부강을 누리면서도 살기 좋은 세계 최고의 도시로 변모하게 되었다.

이와 유사하나 에너지 절약과 정주환경 쾌적성을 위해 바람길을 조성한 대표적 사례는 역시 독일의 ‘림’을 들 수가 있다. 이 도시는 뮌헨 근교에 있는 구 비행장 부지를 재생하여 만든 것인데, 친환경적인 기능 도시를 만들기 위해 바람길을 일으키는 배치를 기본 개념으로 삼았다. 우선 남쪽에 바람을 담고 있는 호수를 설치하여 이용하였다. 그 뒤에 조성한 넓은 녹지는 호수와 함께 바람을 만들어 북쪽의 도시로 실어 나른다. 연이어 있는 띠 형태의 긴 녹지와 도로 그리고 공지는 도시 곳곳으로 바람이 들어가게 한다. 심지어 건축물의 높이, 형태 그리고 간격 등 까지도 적절하게 조절하여 신선한 바람이 도시 전체에 넘치게 만들었다.

진주는 남강이 있어 노래하지 않아도 바람이 잘 불던 곳이었다. 여름의 남풍을 타고 원도심으로 들어온 바람은 배면의 비봉산을 만나 상승기류로 변하여, 그 속도가 빨라져 매우 신선하였다. 하지만 먹고 살기 위해 가파르게 달려온 우리는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그 시원했던 바람을 진주에서도 없애버리고 말았다. 아스팔트 위에서 계란이 익을 정도의 찌는 더위를 보며 우리는 진주를 떠나기 위해 ‘바람이 불어오는 곳’ 노래를 불러야 할지 모른다. 폭염을 누그러뜨리는 핵심은 전기 누진세 감면이 아니고 도시 내에 사라진 바람을 되살리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최만진 (경상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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