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 원형 복원·현대적 가치 부여해야”
“진주성, 원형 복원·현대적 가치 부여해야”
  • 경남일보
  • 승인 2018.08.15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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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도시 진주의 향기, 창조적 실천 심포지엄
22일 오후 경남일보와 역사진주시민모임, LH가 공동으로 개최한 ‘천년도시 진주의 향기, 창조적 실천 심포지엄’에서 진주성 경관 보전과 창조적 활용 방안에 대한 심도있는 토론이 이어졌다. 심포지엄에서 참석자들은 진주성 원형 보존을 기반으로 진주지역 문화·역사·경제 등 가치 창출의 방향으로 가야한다는데 공감했다.

이날 심포지엄은 송영진 경상대학교박물관 학예연구사의 사회로 먼저 김덕현 경상대 명예교수의 ‘진주의 역사와 문화를 보는 눈’에 대해 기조발제, 첫번째 주제로 ‘진주성 보전 및 옛 모습에 대한 복원 방법론 모색’에 대해 토론했고 이어 두번째 ‘도시재생과 진주성 사적 지구 활용 방안’에 대해 토론이 이어졌다.


 
22일 오후 LH진주본사 1층 남강홀에서 고영훈 경상대학교 교수가 좌장으로 나서 진주성 경관 보전과 창조적 활용 방안을 위한 종합토론이 열리고 있다. 이날 행사는 경관보전 측면과 활용측면에 대해 주제발표를 가진 뒤 다양한 의견이 오갔다.

 

 

◇핵심 유적지 원형 복원 중심 되어야
김준형 경상대 역사교육과 교수

진주성은 일제강점기 들어 훼손됐다. 해방 이후 1969년, 1978년에 걸쳐 두 차례 진주성 복원·정화작업이 이뤄졌다. 오늘날 진주성은 모습을 갖추긴 했지만 조선시대 원형은 온전히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지금의 진주성은 조선 후기 진주성의 내성 부분만 복원한 것인데, 임진왜란 진주성전투를 회상하면 현재의 진주성을 전제로 해선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따라서 진주성은 보다 역사를 반영하는 형태로 복원될 필요가 있다.

진주성 복원은 진주성 성곽 전체의 복원과 성내 일부 시설의 복원으로 나누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진주성은 조선초기, 임진왜란 때, 조선후기 등 각 시기마다 성곽 전체의 모습이 달라지고 또 내부의 시설들도 다르게 배치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조선초기 진주성은 모습이 가장 불분명하여 복원도 쉽지 않다. 따라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광장 발굴 과정에서 이 시기의 성곽이나 주위 해자의 흔적이 나오면 성의 흔적과 남문터를 광장 바닥에 표시하면 될 것이라고 본다.

또 성 내부의 시설도 복원해야 하는데, 당시 진주성 내에 어떤 건물이 배치되고 그 규모나 모양 등이 어떠했는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조선후기 진주성에 대해서는 현재 20종 정도의 진주성도와 여러 관련 자료들이 남아 있어 복원하기가 유리하다.

조선 후기 성은 당시 진주 도심 경관과 연결하여 당시의 진주의 역사와 문화를 조명하는 데에는 매우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외성 북쪽을 두르던 대사지도 복원 되어야 의미가 있다. 아쉽지만 현재 발굴이 진행되고 있는 외성의 일부는 바닥에 그 흔적을 표시하는 형태를 취하는 것에 만족해야 할 것 같다.

우선 복원해야 할 시설은 경상 우병영 관아(관아·부속건물)이다. 이 시설은 구한말 이후 경상남도 감영, 일제시대 경상남도 도청과 경남 사범학교로 사용되기도 하여 역사적 의미가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이외에 우병사를 보좌하기 위해 중앙에서 파견된 우후(虞候·종3품)의 관아인 중영도 복원할 수 있으면 복원해야 한다. 진주성도와 발굴에 기초하여 해당 건물의 위치에 안내판을 설치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고려시대부터 존재했던 촉석루도 조선전기의 화려했던 모습을 재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16세기 촉석루에는 이 건물 이외에 부속건물이 양 날개처럼 동서로 배치되어 있었다. 조선후기 외성과 관련하여 성곽 전체를 복원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외동장대의 복원도 필요하다.

임진왜란과 관련해 무엇보다도 복원이 시급한 시설은 동문과 이를 둘러싼 옹성 부분이다. 이곳은 제 1, 2차 진주성전투 때 가장 치열하게 전투가 벌어진 곳이다.

원시가지에는 진주성 이외에 진주목 관아 구역(객사도 포함), 진주진 영장관아 구역이 있었다. 또 농민항쟁과 관련된 진주읍장 구역이 있고 형평사 창립과 관련된 장소, 봉양초등학교 구역도 있다. 그러나 현재 이와 관련된 핵심 유적지의 종합적인 경관을 복원하는 것은 쉽지 않게 됐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종합적인 장단기 계획을 수립해 나갈 필요성이 있다. 역사학, 고고학, 고건축 등 관련 전문가들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기관을 통한 교육과 홍보, 시민의 참여 방안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시민 지지 토대로 장기 과제 해결
조창래 진주성 연구회 회장

진주라는 도시를 상징하는 가장 근본적인 성격은 역사도시다. 진주는 구석기 시대부터 신석기, 청동기, 철기 중세, 근세, 근대, 현대까지 모든 문화유산을 함께 소유 하고 있다. 진주는 같은 크기의 신흥도시가 갖지 못한 역사적 자산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진주성은 진주의 역사를 지키고 증언해 온 상징이다.

현재 진주성은 조사와 발굴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고증이 부족하여 졸속으로 복원이 이루어졌다. 성벽의 성돌과 여장은 현대적 장비로 돌을 잘라 가공도 하지 않고 쌓았으며 촉석문과 공북문도 고증 없이 축조됐다. 내성 동북쪽 성벽 역시 축소해 원형이 훼손됐다.

내성 내부의 공원화도 문제다. 전국 대부분의 성지 복원사업이 마찬가지이지만 진주성도 예외 없이 잔디밭 정원만 있는 공원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우선 순위를 정해 복원해야 한다. 체계적인 조사와 발굴 및 연구가 필요하다. 범시민적 합의 역시 필요하다. 복원에는 많은 예산이 소요되며, 재산권을 침해당하는 시민들의 불만과 공사로 인한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함이며 또한 어디까지 복원할 것인지 합의가 필요해서이다. 더불어 이를 위한 진주성에 관한 전문가의 양성이 필요하다.

진주성 복원은 잊혀진 역사의 복원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는 곧 진주 사람들의 긍지와 자부심, 진주의 정체성이 될 것이다.

가장 우선적으로 살려내야 할 것은 400년 이상 경상우병영 병사의 집무실과 관찰사 집무실 역할을 했던 건물, 바로 운주헌(선화당)이다. 이는 우병영과 도청을 상징하는 건물이다. 중영은 영남포정사 동쪽 경사 면에 위치에 있어서 복원에 아무런 걸림돌이 없는 상태이다.

임진란 당시의 동문은 임진년과 계사년 전투의 최대 격전지이다. 역사적 의미가 깊은 곳이면서도 고층 건물이 적어 상대적으로 복원의 어려움이 적다.

1380년부터 존재하던 구북문, 1603년 경상우병영이 진주로 이전하면서 왜란 당시 진주성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설치된 동장대 역시 성의 위치를 알려주는데 필요한 시설이다.

대사지는 범위가 넓다. 남문과 신북문은 진주교와 중앙로타리에 걸쳐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당장은 어렵다고 본다. 시민들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장기적 과제로 가져가야 한다. 성벽의 복원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효율적 복원·자원화 고민 필요
강동욱 진주문화사랑모임 상임이사

진주성 복원방향으로 제시된 성곽 전체의 복원과 성내 일부 시설의 복원 등 방안 가운데 전체 복원은 현실적으로 어렵고 일부 시설 복원의 관점을 살펴보겠다.

우선 복원해야 할 시설은 경상 우병영 관아(觀德堂(運籌軒) 및 부속건물)라고 했는데, 이 시설은 구한말 이후 경상남도 감영, 일제시대 경상남도 도청과 경남 사범학교로 사용되기도 하여 역사적 의미가 남다르다.

그런데 우병영 관아인 운주헌, 경남도청 본관인 선화당(宣化堂), 경남의 첫 근대식 학교인 경상우도소학교 매월당(梅月堂)은 역사적 가치가 결코 가볍지 않고 운주헌의 모습과 선화당의 모습은 같지 않다. 만약 복원을 한다면, 편액을 달 때 방안이 필요하다.

역사적 고증에 근거해 복원을 해야 한다면 진양 하씨 시조사인 경절사와 진양 정씨 은열공파 사당이 이전 되어야 하는데, 반대가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이 된다. 이와 함께 진주 박물관의 이전 문제도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조선후기 외성과 관련하여 성곽 전체를 복원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외성의 동쪽 끝이 어디에 있는지, 그곳에 무엇이 있었는가를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동장대의 복원과 제1, 2차 진주성전투 때 가장 치열하게 전투가 벌어진 동문과 이를 둘러싼 옹성 부분이라고 하셨는데, 현재 장대동 놀이터 근처라고 여겨진다. 전에도 이 부분을 복원하여 관광자원으로 활용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다만 예산과 시간이 문제다. 가장 효율적으로 복원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현재 조성되고 있는 진주성 광장에 진주역사관이 세워져서, 이곳에서 진주의 역사를 종합적으로 이해한 후 관련된 다른 지역도 답사하는 코스도 개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는 진주시민 문화단체인 진주문화사랑모임의 주장과 일치한다. 하지만 이런 테마 관광 프로그램으로 진주를 찾는 관광객들의 관심과 흥미를 유발시킬 수 있을지 생각해 봐야 한다. 현재 전주, 나주, 군산 등 많은 지자체에서 이와 유사한 형태의 테마 관광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관광객의 입장에서는 비슷하다고 인식할 가능성이 높다.

 



◇문화적 자산서 경제적 가치 발굴
신상화 한국국제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

진주성과 도시재생은 뗄 수 없는 관계다. 진주대첩 기념광장 조성예정지 일대가 진주성 외성 성벽이 지나는 지역이다 보니 보존과 개발이라는 상충되는 개념으로 인해 다른 의견이 대두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정에서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발굴과정에서 절대보존의 가치가 있는 외성 성벽의 일부가 발굴되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진주대첩 기념광장의 발굴 유구 또한 발굴에 따른 원형이 유지되어야 할 것이고, 특히 외성 성벽유구는 향후 원도심으로 이어지는 외성의 선형 복원을 위해서라도 원형이 유지되는 현지보존의 필요성이 있다. 활용의 필요성에서 대두되는 복원과 관련해서는 추측의 가미가 없도록 해야 한다. 발굴된 외성 유구 위에 무리한 성벽복원 사업은 신중하게 생각을 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앞에서 이야기한 정확한 발굴조사와 문화재의 보존 관리 및 활용에 관한 원칙, 발굴조사의 보존조치에 관한 보존조치 방법, 그리고 복원에 관한 개념에 근거해서 진주대첩 기념광장 조성 방안을 꾸려야 한다.

세계적으로도 문화재를 비롯한 역사적 문화자산의 보존은 장려되고 있다. 보존으로 인한 경제적 가치가 매우 높기 때문이다. 진주대첩광장 또한 마찬가지이다. 애써 마련된 역사적 공간이 문화적 자산으로서의 가치가 높아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발굴 후 활용방안과 관련해서 예를 들어보면 그리스의 아테네는 도시전체가 유적지라 할 수 있다. 아테네의 뉴-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의 경우, 조성 당시 로마시대의 도시유구가 발견되어 진주대첩광장과 같은 보존과 개발의 갈등문제가 대두되었지만, 결과적으로 뉴-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은 로마시대 유구위에 필로티 형태로 건축되어 있다. 유구 발굴 후 유구의 원형을 현지보존으로 그대로 유지하면서 새롭게 요구되는 박물관의 기능을 유구 상부에 건축한 사례이다.

프랑스의 루불 박물관의 경우는 루불 박물관의 역사적 경관을 보존하기 위해 새롭게 요구되는 공간의 증축을 위해 지하공간을 활용하면서 유리피라미드를 통한 공간적 매력과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고 있다. 역사적 경관의 보존과 공간의 활용이라고 하는 보전의 개념의 대표적 사례이다.

진주대첩광장은 일차적으로는 먼저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통해 개발 컨셉을 제시하고, 제시된 컨셉은 건축적 발상을 통해 공간적으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주차장 건립은 외성성벽과 유구의 원형 에 대한 철저한 발굴을 전제로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고, 원도심 도시재생사업과 연계한 전체적인 틀 안에서 검토가 필요하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역사적 문화자산의 가치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 채 도시개발이 진행되어 왔다. 원도심에 산재되어 있던 역사적 문화자산들은 사유재산권의 침해 우려로 상당부분 훼손되어 왔다. 지금은 역사적 문화자산의 가치가 경제적 부가가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인식을 하는 시대가 되었다.

진주는 진주대첩광장 뿐만 아니라 역사적 문화자산의 가치가 도심 곳곳에 산재되어 있다. 진주대첩광장의 조성이 인문학이 살아있는 역사문화도 시로의 재생을 위한 소중한 단초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유적지 넘어 ‘진주성 문화’로 가야
신용민 창의도시추진위원회 부위원장

진주대첩광장 조성사업 과정에서 진주성의 옛 성곽이 발견되었다. 옛 성곽이 복원된 이후의 진주성 모습을 본다면 그 안쪽 광장의 이용 가능성 에 대한 시민들의 생각은 완전히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수 있다.

따라서 우선 옛 성곽을 복원하는 사업에 집중하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비울 것인가’ 또는 ‘채울 것인가’는 그 이후의 문제이다.

진주성 안에 사람들이 살았듯이 진주성은 조용히 잠자는 유적지가 아닌 살아 숨 쉬는 시민들의 문화 향유 공간으로 바꿔야 한다.

진주성은 도심 속에 있으며, 촉석루 남강과 어우러진 천혜의 입지 조건을 가지고 있다. 진주성의 경관을 훼손하지 않고 최대한 보존하면서 시민들과 외래 방문객들이 좀 더 가까이 하고 느끼고 싶은 ‘진주성 문화’를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진주성 내에 진주를 대표할 수 있고 국내 명물이 될 수 있는 야외공연장 설치를 제안한다. 문화행사가 열리면서 성주변의 서비스 업계를 비롯한 도시의 여러 가지 경제적 요소가 유기적으로 상생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각종 문화기획의 중심무대가 될 것이며 구도심 활성화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리라 사료된다. 위치는 박물관 앞 임시 야외공연장이 적합하다고 생각하나, 공북문 안쪽 공간도 고려할 만하다.

앞서 언급한 오픈에어 공연장을 이용한 정기적인 진주성 콘서트를 제안한다.

진주성 야외 공연장은 또 전통 극예술, 마당극 또는 민속예술의 상설 공연에도 적합한 장소가 될 것이다. 특정 예술 장르의 ‘오픈에어 페스티벌’을 개최할 수도 있다. 축제기간 행사무대 뿐만 아니라 야외활동에 적합한 계절을 선택하여 잘 기획된 진주성 콘서트는 시민들에게 색다른 문화적 경험을 제공할 것이다. 베를린 발트뷔네(Wald Buhne) 음악회 등 다른 도시의 성공적인 오픈에어 콘서트 사례는 많다.

영상문화제 일환으로 진주의 독립영화제와 드라마페스티벌을 연계한 오픈에어 씨네마를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것 또한 진주성문화를 창출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진주성 내 전망탑과 스카이라운지 설치도 방안이다. 촉석루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진주박물관 뒤쪽 언덕 위에 전망탑을 세우고, 최상층에는 스카이라 운지 형태의 휴게공간을 설치하는 것을 생각해 볼 만하다. 이외에도 진주성 주변 창의문화 예술인거리와 근대 역사문화거리 조성, 강변 여가문화 창출 등의 대안이 있겠다.

이상과 같은 계획들은 전체적으로 진주성 주변과 구도심을 창의·문화산업 중심으로 재편하고 육성 하는데 시너지 효과를 나타내며, 공동화 되어가는 구도심의 문화·경제적 활성화에도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옛 기능-현대적 의미 함께 활용해야
남성진 진주문화연구소 소장

도시재생 사업의 일환으로서 사적 진주성을 주목하겠다는 것인데, 여기서 현재의 필요성 즉 도시재생이 과거의 색채(진주성의 본디 기능)를 앗아가 버릴까 하는 염려가 생긴다. 도시재생을 위한 수단으로 사적 진주성이 활용된다는 점에서 목적과 수단이 전도되는 듯하여 우려스럽다.

결국 ‘사적 진주성’을 제대로 보존하고 관리하는 방법을 먼저 제시하고 현재 진행하고 있는 도시재생의 틀에서 창조적 활용의 갈피를 잡아야 할 것으로 본다.

진주시 도시재생전략의 계획에서 제시한 비전을 보면 ‘도시재생으로 진주성과 남강의 역사·문화적 가치와 활력을 찾겠다’는 것이고, 목표 가운데 하나를 보면 ‘진주성을 진주의 중심으로 삼아 역사문화 중심도시로서 진주의 활력을 제고’하겠다고 했다. ‘잠재된 역사문화자원’과 ‘방치된 역사문화자원’의 구분, ‘발굴’과 ‘재정비’는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진주성이라는 문화재와 그 주변의 역사문화환경을 보호할 방안을 찾는 것이 ‘경관 보전’의 측면에서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첫 째, 재맥락화 작업을 시도하여 진주성에 대한 현대적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재맥락화 작업은 과거에 대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방법이다. 진주성이 가지는 애초의 방호 기능과 시민 삶터로서 기능을 재맥락화를 통해 다시금 생각해본다. 임진왜란 최대 격전지로서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현대적으로 재생하는 일이다. 여기에는 우선 임진왜란 당시의 군사시설물이나 두 차례 전투의 자취를 들여다 볼 수 있도록 옛 모습을 재 구성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임진왜란이라는 큰 역사적 사건 당시의 현장을 복원·재현하여 유산적 가치를 드러내고, 스토리텔링과 같은 창조적 활용 방안을 모색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진주성은 사적지로 보존, 관리되기 때문에 오늘날 성안에 사람들이 다시 들어 가서 상시적으로 거주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민속촌이나 낙안읍성의 경우처럼 민가 건물 또는 관공서 등을 복원 또는 재현하여 일정한 사람들이 출퇴근하여 본래의 업무나 새로 부여된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둘 째, 진주성을 장소 마케팅 차원에서 활용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지역의 역사와 문화적인 요소를 상품화하여 고부가 가치를 창출하는 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진주성 중심으로 전개되는 원도심 재생사업이 지속가능한 도시 성장의 원동력이 되고, 역사문화도시로 재생되는 단초가 되기를 기대한다.

 

 

정리=김귀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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