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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산플러스 <202>금대산·백운산
최창민  |  cchangmin@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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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8.23  21: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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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대산 정상


‘잘 있느냐, 금대암아 송하문이 옛날 같구나. 송풍에 맑은 꿈 깨어 문득 잠꼬대를 하는 구나’

문장력이 뛰어났던 뇌계 유호인이 어느 한 시절 함양 금대암을 찾아 남긴 시(詩)다. 솔바람, 솔향기에 잠을 깼다고 하니 산사 주변에 어지간히 소나무가 많았던 모양이다.

그가 금대암을 찾은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도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가서 지리산을 한번 더 보고자 했을 것이다.

유호인(1445~1494)이 누구인가. 조선 전기 최고의 문장가인 그는 1474년 식년문과에 급제했고 1478년 사가독서(賜暇讀書)한 뒤 1480년에 거창현감, 1494년 합천군수로 재직했다. 28세 때인 1472년 늦가을, 스승 점필재 김종직을 따라 함양 임천을 건너 환희대, 중봉을 거쳐 지리산 천왕봉에 오른 적이 있다.

김종직이 남긴 유두류록에 유호인이 등장하는 걸 보면 그 위상을 가늠할 수 있다. 함양인인 그는 일찍이 산을 깨닫고 점필재를 지리산으로 이끌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세월이 또 흐른 어느 한가한 날에 과거 스승과 산행했던 지리산을 추억하며 지리산이 가장 잘 보이는 금대암을 찾아 시를 썼을 것이다.

북쪽에서 지리산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은 금대암 혹은 금대산이다. 삼봉산도 좋은 전망처이지만 상대적으로 금대산이 더 가깝기 때문에 리얼하게 보인다. 그래서 사람들은 ‘금대지리’라고 부르면서 함양 8경 중 2경에 넣었다.

600년 전 유호인이 찾았던 금대암·금대산(金臺山)을 뒤따라 가본다.

금대산은 함양군 마천면 창원리에 위치하는 산으로 그 옆 백운산과 연계 산행하는 것이 보통이다. 삼봉산에서 맥이 흘러 백운산과 금대산을 세웠다. 남서사면에 마천면 소재지가 위치하고 그 앞에 임천이 휘돌아 흘러 동북쪽으로 빠져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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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한 형상의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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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800m의 금대암 앞까지 차량이 올라간다.


금대지리 금대암, 천왕봉에서 왼쪽으로 중봉과 하봉이, 오른쪽으로 제석봉 장터목 연하봉 촛대봉 세석평전 영신봉 반야봉 등 1500m가 넘는 거봉들이 운무와 놀고 있다. 고맙게도 600년 전의 산이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다. 운무가 끼었어도 지리능선이 한눈에 들어오는 풍광이다. 유호인이 봤던 풍경 그대로일 것이다.

뇌계의 시대와 다른 정경이 있다면 바로 앞에 우뚝하게 서 있는 40m높이의 500년 된 전나무. 도 기념물 212호인 이 나무는 전국 최고령으로 금대암 명물로 회자하고 있다.

보살님 한분이 대웅전에서 나와 산을 향해 합장하며 허리를 깊히 굽혔다. 자세히 보니 거기에 나한전이 있었다. “혼자 계십니까” 합장한 후 걸어오는 보살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손짓으로 대웅전 반대편을 가리키며 “스님이 계십니다”라고 하고선 느릿느릿 걸어갔다. 그 뒷모습을 눈으로 쫓으니 낡은 당우가 눈에 들에 왔다. 비가 새는 것인지 지붕에 검은 천막을 씌웠는데 그 아래 금기선원(金基禪院)편액이 보였다. 진주인 은초 정명수 선생의 글씨였다. ‘금은 깨달은 사람, 기는 그 아름다움’을 말한다고 한다. 평생 비봉산 자락을 떠나지 않았던 그는 해인사 해탈문의 주련도 썼다.

금대암은 아담한 암자이다. 큰 건물 대웅전은 최근 현액을 무량수전으로 바꿔 달았다. 신라 태종 무열왕 3년에 창건하고, 조선 초 행호조사가 중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 사람인 행호조사 창건 설은 오류인 듯 보인다.

돌계단 중간 오른쪽에 부처님의 제자를 모신 정겨운 나한전, 그 앞 댐쟁이가 덮인 바위에는 나무아미타불 한자가 새겨져 있다.

대웅전 뒤편으로 등산로가 열려 있다. 등산로 직전, 큰 비럭바위 아래 하얀 3층 석탑은 경남도 유형문화재 제34호. 기단부 없이 암반 위에 1층 탑신을 세운 특이한 형식이다. 기법 상 고려 말, 조선 초 작품으로 추정된다는 기록이 있다.

5분∼10분 정도 산길을 따라 오르면 사찰 경내외의 경계지점을 지난다.

솔밭 길, 뇌계의 단꿈을 깨웠을 송풍이 불었다. 바닥에는 솔가리가 깔려 양탄자처럼 푹신하다. 솔지대를 지나면 작은 바위군이 나타난다. 이 바위는 산 아래 마천을 굽어볼수 있는 전망대 역할을 한다.

오른쪽 끝에서 흘러온 임천은 마을에 닿아 물을 나눠주고 좌측으로 빠져나간다. 강물이 빠져나가는 곳에 서너뼘 짜리 다랭이 벼논의 색깔이 노란빛으로 변해간다. 고된 노동의 흔적인데 지금은 정겨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정상 못 미친 지역, 높은 바위 밑을 지나고 또 한사람이 겨우 지날 수 있는 좁은 바위틈을 비집고 오른다. 기묘하게 얼키고 설켜 있는 석문도 통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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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석탑과 비럭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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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문



금대산(852m) 정상에 닿는다. 마사토 지대에 크고 작은 바위군이 형성돼 있다. 산불감시초소는 사람의 왕래가 없는지 빛이 바래고 낡아 흉물처럼 보였다.

해발 1300m가 넘는 거봉 20여개 등 올망졸망 봉우리 85개가 늘어선 지리산, 그러나 변덕스러운 여름 날씨 탓에 그 지리산이 보이지 않았다. 먹구름이 몰려와 금대지리를 무색케 했다. 일망무제는커녕 비에 쫓겨 내려가야 할 처지다.

‘달빛이 어렴풋이 비쳤다. 흙벽에 기대어 사방을 둘러보았다. 천지가 아득하였다. 마치 큰 바다 한가운데서 조그마한 배 하나를 탄 채 이리 기울고 저리 기울고 하여 곧 파도에 빠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웃으면서 세 사람에 말하였다. 비록 한퇴지(한유·韓愈)같은 정성과 왕저 같은 도술이 없을 지라도 다행히 그대들과 함께 우주의 근원을 타고 혼돈의 원시세계에 떠노니 어찌 위대하지 아니한가’

점필재가 지리산 천왕봉에서 느낀 소회다. 세 사람 중 한사람이 뇌계다. 선인의 표현으로 아쉬움을 달래본다.

백운산으로 발길을 옮겼다. 백운산 방향 중간에 시선을 끄는 특이한 형상의 바위, 6∼7m높이의 바위는 사람의 얼굴처럼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사자의 머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조금 더 옮기면 1970년대 대규모 조림사업으로 식재한 리기다소나무 숲, 미국 애팔래치안 산맥 변성암지대가 원산지인 이 소나무는 한국전쟁 등으로 산이 헐벗었을 때 우리나라에 들여와 공동 조림했다. 일부에선 외래종이라며 몹쓸 나무로 치부하지만 당시 헐벗은 산을 녹색으로 만든 효자목이다. 세력을 키워서 확산하지 않는다고 한다.

산소가 있는 산봉우리를 넘어서면 백운산(902m)이다. 맑은 날 금대봉 너머로 보이는 지리산도 아름답고 양옆에 산청 왕산, 함양의 크고 작은 산들이 실루엣을 형성하는 전망 좋은 곳이다. 옛날, 벽송사에 기거했던 응윤 스님(1743~1804)이 이곳을 찾았다. 그는 지리산 주릉을 화려한 병풍, 비단장막에 비유했다.

잔뜩 흐린 날씨는 결국 소나기를 뿌렸다. 폭포수처럼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35도를 넘나드는 무더운 날씨는 따뜻한 비를 내렸다.

등골을 타고 내려온 빗물은 온몸을 적시고 등산화까지 적셔버렸다. 등구치 갈림길을 지나 지리산 둘레길이 있는 창원마을까지 1시간이 더 걸린다.

최창민기자 cchangmin@gnnews.co.kr
 

   
▲등산로: 마천 천왕봉로(60번도로)금대암 입구→금대암→바위군→금대산→백운산→등구치→창원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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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랭이논
   
바위틈으로 난 등산로. 몸이 끼여 지나기가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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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와 소나무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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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고령전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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