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진실을 읽는 시간'…고흐는 정말 자살했을까
신간 '진실을 읽는 시간'…고흐는 정말 자살했을까
  • 연합뉴스
  • 승인 2018.08.26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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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년만의 법의학 분석

한번 잘못 든 길을 되짚어 나오기는 쉽지 않다. 멀리 갔을 경우는 더 그렇다.

혼자가 아니라 여러 명이 함께 잘못된 믿음을 갖게 됐을 때는 바로잡기가 훨씬 더 어렵다.

신간 ‘진실을 읽는 시간’(소소의책 펴냄)은 의문사라는 예사롭지 않은 사례들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쉽게 진실이 아니라 스스로 믿고 싶은 것을 믿는지를 보여준다.

저자는 45년간 9000건 이상의 부검을 하고 2만 5000건 이상의 죽음을 조사한 미국 법의병리학자 빈센트 디 마이오와 베스트셀러 범죄작가 론 프랜셀이다.

책은 마이오가 직접 담당하거나 자문에 응한 의문사 사건들의 퍼즐을 맞춰나가는 과정을 박진감 있게 펼쳐 보인다.

 

사건 중에는 정신질환을 앓다 37세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것으로 알려진 네덜란드 천재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죽음도 있다.

고흐는 1890년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뒤 파리 근처 작은 마을 여인숙에 머물며 그림에 매진하던 어느 날 권총으로 자기 옆구리를 쏴 자살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하지만 책은 설득력 있는 법의학적 추론을 통해 고흐의 죽음이 타살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타살설은 하버드대학 출신 변호사인 스티븐 네이페와 그레고리 화이트 스미스가 2011년 출간한 저서를 통해 본격 제기됐다. 마이오는 이후 논란이 일자 과학적 증거가 필요했던 두 변호사의 자문 요청을 받아들이면서 123년 전 일어난 고흐의 죽음에 관한 미스터리를 푸는 일에 관여하게 됐다.

세계적인 총상 전문가인 저자에게는 고흐가 스스로 총을 쏘지 않았다는 법의학적 근거가 뚜렷하다.

우선 고흐의 총상 부위가 스스로 총을 쏘기 어려운 지점이라는 것이다. 사건 발생 직후 고흐를 직접 진찰한 두 의사 기록에 따르면 총상은 왼쪽 옆구리 부근에 있었다.

만에 하나 지극히 어색하지만 어렵게 총구를 해당 부위에 갖다 대고 쏘았다고 가정한다면, 옷에 그을음이 묻거나 피부에 적지 않은 화상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고흐의 총상은 깨끗했고 이로 미뤄보면 총이 적어도 50㎝ 이상 떨어진 곳에서 발사됐다고 추론할 수 있다.


그 밖에도 고흐의 타살 가능성을 보여주는 다양한 정황 증거들이 제시됐다.

저자는 그러나 미술계 인사들은 물론 많은 사람이 법의학적 증거들이 가리키는 진실을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무미건조한 진실보다는 천재 화가에게 걸맞은 극적인 죽음을 믿고 싶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고흐의 타살설이 제기된 직후 한 네덜란드 일간지에 실린 논평은 이 같은 세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빈센트 반 고흐가 두 귀를 모두 갖고 명예를 누리며 1933년 80세 노령으로 죽었다면 결코 오늘날처럼 신화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사이프러스와 밀밭보다는 고흐의 정신질환, 우울증, 실수, 귀 절단, 자살이 훨씬 더 그의 내러티브, 신비감, 불가해함에 잘 맞아떨어진다.”

책에는 고흐의 죽음 외에도 1963년 존 F.케네디 미국 대통령을 암살한 리 하비 오즈월드에 얽힌 음모론, 1980년대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 간호사 지닌 존스 사건, 2012년 미국 인종 갈등의 불씨가 된 마틴 트레이본 총살 사건 등 최근까지 사회적 논란을 야기한 사건들의 실체를 파헤친다.

이야기는 시종 속도감 있고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면서도 교훈적이다.

저자는 사람들이 실체가 드러나기기도 전에 먼저 각자의 편견과 언론의 프리즘을 통해 결론을 내리지만, 성급한 결론은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한다.

윤정숙 옮김. 380쪽. 1만 7000원.

연합뉴스



 

반 고흐.
신간 ‘진실을 읽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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