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대(수필가)
향신료나 음식은 일종의 문화다. 서부 경남 지역에서 유독 즐기는 방아는 독특한 향으로 전국적으로 대중적이지는 않지만 시골 밭둑이나 돌담 아래 흔하게 볼 수 있으면서도 추어탕이나 부침개에 넣으면 풍미가 대단하다.
연전에 공무로 미국 LA로 출장을 갔을 때 지인 소개로 어느 교포 집을 방문했었다. 그 집은 파란 하늘에 두둥실 뜬 흰 구름과 할리우드라는 커다란 입간판이 멀리서 실루엣을 만들어 주는 고급 주택지에 있었다. 흰색 기둥이 멋들어진 이층 테라스에는 몇 개의 대형 화분을 낯익은 방아 자주색 꽃이 뒤덮었다.
그는 거의 이십여 년 전에 이민 온 진주 사람으로 방아 맛을 잊지 못해 고향에 갈 때마다 친지에게 부탁하여 말린 방아를 가져다 먹다가 종내에는 방아 씨를 가져와 모종을 만들고 이웃에게도 분양하여 고향에서 이민 온 대부분 교포 집에 나눠준 방아가 심겨져 있다고 자랑했다. 그는 단순히 입에 맞는 허브 한 종류를 심은 것이 아니라 고향을, 자기 정체성을 옮겨다 심었단다.
염천 더위든 혹한의 엄동이든 있어야할 곳에서 꽃을 피우고 뿌리를 내린다. 음식한류의 바람을 타고 흔하디흔한 토종 허브 방아도 그 영역을 조금씩 넓혔으면 하는 바람과 영양학적 가치와 약리성분의 과학적 접근도 기다려진다.
특별한 조미료가 없던 시절 우리 할머니들도 방아로 식구들의 까다로운 입맛을 맞추었을 것이다. 된장이나 생선 조림은 물론이고 부침개나 추어탕 등에 방아가 들어가지 않으면 밍밍하다.
가을볕이 가늘어지면 풍성한 보라색 꽃을 피우는 방아를 전체로 말리거나 그대로 냉동보관하면 훌륭한 차나 조미료로 사용할 수 있다. 시골집을 들릴 때 마다 꼭 잎을 한줌이라도 따와야지 하면서도 쉬이 되지 않는다. 정작 고향에 가서는 방아 잎 따겠다는 생각을 못해서기도 하지만 그보단 전혀 다른 문화의 밥상으로 채워지는 식탁에 시골서 따온 방아가 어울리지 못해 괜스레 미안해질까 봐서다.
이덕대(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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