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원칼럼] 먹는 피임제 이야기
[객원칼럼] 먹는 피임제 이야기
  • 경남일보
  • 승인 2018.09.02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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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준 (경상대학교병원 산부인과 교수)
생리불순, 생리통, 생리과다…. 여성들에게는 매우 심각하게 들리는 단어일지라도 대부분의 남성들은 관심이 없거나 혹은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부인과 내분비학을 전공하는 저자는 직접 경험해보지는 않았지만 얼마나 고통스러운 증상인지는 환자들을 통해 간접으로 느끼고 있다. 분명 심각하고 불편한 증상인데도 불구하고 피임약이 개발되기 전 지금으로부터 반세기 전에는 수술적인 치료 외에는 진통제 처방이 유일한 내과적인 치료였었다. 최근에는 월경 전 증후군, 생리불순, 생리과다 등에 미국 식품의학관리국 (FDA) 공인된 약들이 있으니 의사로서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외래에서 청소년에게 피임약을 치료제로 권하면 엄마들의 첫 반응은 ‘학생인데 피임제를 먹여도 되나요’이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피임제들은 대부분 여성 호르몬 즉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으로 구성되어있다. 피임약은 ‘포춘지’에서 뽑은 20세기 최고의 발명품이다. 피임약의 발명으로 인류의 반이 스스로 회임을 조절하고 성인으로서 자신의 삶을 조절하고 지배할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인구폭발로 인한 재앙에서 지구를 지켰기 때문이다. 또한 여성의 사회진출이 가능해졌고 여성의 인권 신장에 너무나 큰 역할을 하였기 때문이다. 먹는 피임약의 탄생은 미국의 과학자인 ‘그레고리 핀커스’가 피임약 ‘에노비드’를 개발하여 FDA의 공인을 받은 1960년을 기점으로 잡고 있으니 그 역사는 길지 않다. 피임약 보급에는 미국의 산아제한 운동가 ‘마거릿 생어’ 등이 일생을 바쳐 기여하여 왔는데, 그녀는 ‘여성이 임신을 조절할 수 있다면 여성의 삶은 물론 인류의 역사가 크게 달라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전 세계 인구 약 10억 명 이상의 여성이 사용하는 가장 안전한 피임방법으로 인정받고 있다.

물론 피임약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기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걸렸다. 미국에서도 여성의 순결을 위협한다며 기혼여성에게만 판매가 허용된 적도 있다. 우리나라에 경구피임약이 도입된 것은 1960년대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우리나라의 경구피임약의 복용은 3% 수준으로 선진국에 비해 매우 낮다.

피임약에 대한 오해 중, 특히 호르몬 변화로 인한 부작용, 특히 암에 대한 막연한 공포는 지식의 부족으로 인한 오해이다. 우리나라 초기 가족계획사업에서 사용하던 피임약은 에스트로겐 함량이 높아 피임약을 복용했던 환자에게서 메스꺼움 등의 부작용이 심하였고 유방암 발병이 증가한다는 보고도 있었다. 이런 이유로 피임약에 대한 좋지 않는 기억들이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피임약이 계속 개선되면서 많은 부분에서 부작용이 극복된 상태이다. ‘피임약을 장기간 복용하면 임신이 잘 되지 않는다’는 속설은 ‘피임약을 복용하는 기간만큼 나이가 들어 임신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으로 보는 견해가 옳다. ‘살이 찐다거나, 여드름이 생긴다’라는 속설은 과거 일부 피임약은 체내 수분을 축적시켜 체중을 증가시키거나, 합성 프로게스테론이 피지생성을 활발하게 하는 남성 호르몬 분비를 유도해 여드름이 생기는 경우 때문으로 여겨지나, 요즘에 개발된 약들은 그렇지 않다.

저자는 피임약 예찬론자는 아니지만 피임약 치료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미혼여성들의 삶의 질을 고려한 피임에는 먹는 피임약만 한 것도 없다. 피임약 복용률이 낮은 국가가 인공 임신중절률도 높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최근에는 연구개발이 많이 되어 생리불순 등에 맞게 치료제로 개발된 피임약들도 있다. 이제는 발명 후 50년간 귀중한 생명을 구하고 여성 건강을 지켜온 피임약에 대한 막연한 편견은 버리고 실리를 찾는 것이 좋겠다.
 
최원준 (경상대학교병원 산부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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